"EU, 美·中 IT 공룡에 더 엄격한 잣대 적용해 자국산업 보호"
"韓 데이터 산업, 글로벌 기업에 종속 우려"
미국, 중국 등 IT 대기업들이 데이터 기반 산업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구가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자국의 데이터 경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저항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데이터 3법’ 개정안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보호주의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한국데이터진흥원(NIA)이 발간한 'EU 데이터 경제의 떠오르는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제도·기술 표준화 등 역내 역량 극대화에 총력을 기울이며 미국과 중국의 데이터 패권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EU 내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 중국 등 역외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데이터 경제란 2011년 가트너 보고서에서 유래된 단어로, 아직 완벽하게 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데이터 활용이 경제활동의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는 경제 구조를 뜻한다. 데이터 경제에서는 저가 원유가 정제 과정을 거쳐 고가 석유로 바뀌는 것처럼 데이터가 분석 및 가공 과정을 거처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데이터는 단순 데이터 만으로의 자체 가치는 크지 않지만 상황적 맥락에 따라 가공·분석·결합됨에 따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결국 양질의 데이터가 정보·지식·상품·서비스로 전환되고, 경제·사회적 편익을 창출하게 되는 구조다. 데이터는 속성상 다양한 분야에서 재활용할 수 있고, 실물자본과 달리 무한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자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EU가 최근 데이터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클라우드,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사용자 데이터를 축적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EU는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한 GDPR, 비개인데이터규정 등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이같은 법제도를 기반으로 EU 기업과 미국 기업에 대해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프라이버시 방패(EU-US Privacy Shield)라는 조항을 통해 역외 기업, 특히 미국의 IT 기업이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다룰 때 더 엄중한 의무를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올 2월에는 세계 데이터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에 필적할 유럽 기업을 육성한다는 데이터 경제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EU가 강대국인 미국과의 분쟁의 여지를 감수하면서도 이와 같은 적극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데이터 경제가 향후 단순히 데이터 기반 산업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로봇, 양자 컴퓨팅 등 국가의 과학 역량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최근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EU의 정책과 같은 가상의 국경에 세워지는 추세"라며 "이는 미국 및 중국 서비스 제공업체의 데이터·클라우드 시장지배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으로, 유럽의 데이터와 데이터 흐름 및 스토리지를 유럽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8월31일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에서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잘쓰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힌 이른바 '8·31 데이터경제 선언' 이후 최근 데이터 3법 시행령 개정안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재해 있다. 데이터 수요자가 원하는 쓸만한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며, 국민 관심이 높은 분야에 대한 데이터 기반 혁신 서비스 발굴 필요하다.
우창완, 김규리 한국정보화진흥원 정책본부 정책기획팀 선임은 해당 보고서에서 "데이터 저장·활용의 필수 인프라인 AI·클라우드 시장이 확대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IT기업에 종속되거나 협력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특히 한국의 데이터 주권 확보 방안과 관련해 EU의 GDPR 모델 등을 벤치마킹해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고 국내 클라우드 산업 등을 육성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