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말 결정을 앞둔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우려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이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다, 최소 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경영계와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극한 대립도 예상된다. 9명에 이르는 근로자 위원 구성 비율을 두고도 양대노총이 눈치싸움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1일 내년 최저임금을 정해 달라는 공문을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공문을 받은 최저임금위는 90일 이내에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용부에 통보해야 한다. 그 시한이 6월 28일까지다. 이후 재심의와 이의제기 기간을 거쳐 고용부 장관은 오는 8월 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최종 고시해야 한다.

◇ 코로나로 모이기 힘든 최저임금위…근로자 위원 구성에도 양대노총간 이견

최저임금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현장 방문과 공청회 등의 일정을 정하고, 전원회의를 소집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공문이 도착한지 20일이 지난 현재 시점까지도 최저임금위는 아무런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로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등이 한 곳에 모이기가 쉽지 않아서다. 최저임금위 전원회의가 열리면 통상 각 분야 위원 9명 총 27명에 관계자, 고용부, 취재진 등 한번에 50~60명이 모인다. 또 사람이 몰리는 현장 방문이나 공청회 등도 진행이 어렵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수십명이 한곳에 모이는 회의 개최가 어렵고, 같은 이유로 현장 방문이나 공청회를 열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아직 일정과 관련해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논의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공익위원 전원을 정부가 위촉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와 전원 사퇴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는 새 공익위원 구성을 마친 5월 말에나 본격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올해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추천 근로자 위원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지난해 양대노총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2.87%)이 역대 세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결정된 것에 반발해 모두 사퇴했다.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근로자 위원의 재위촉 과정도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양대노총은 근로자 위원의 구성 비율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조합원 수가 많은 한국노총은 5명을, 민주노총은 3명을 최저임금위에 보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조합원 수 1위를 기록, 민주노총 몫 근로자 위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동결이냐, 인상이냐… 노사간 동상이몽

최저임금의 동결이냐, 인상이냐를 두고도 노·사간 대립이 예상된다. 우선 경영계는 ‘동결’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 관계자는 "코로나로 경제 위기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삭감이 아닌 최소 동결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노동계도 이같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제시한 ‘대량실업 방지를 위한 10대 정책과제’에도 ‘최저임금 동결’이 들어있다. 한경연은 "코로나로 실업자가 33만 3000명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영계, 특히 코로나로 타격이 큰 중소기업·소상공인 업계는 지난해 무산된 ‘업종별 차등적용’도 다시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업종마다 경기 민감도가 다른 만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입장이 다르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고용안전망 바깥의 특수고용직 근로자나 프리랜서 등을 보호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를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코로나로 인한 소득 충격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결정된 올해 최저임금 8590원(사용자안).

지난해 경영계는 당초 전년(8350원)대비 4.2% 삭감된 8000원안을, 노동계는 19.8% 인상한 1만원안을 제시했다. 이어 경영계는 한발 물러 2% 삭감된 8185원으로 제시액을 수정했고, 노동계는 14.6% 인상한 9570원을 제시했다. 마지막 협상에서 경영계는 8590원안(2.75% 인상), 노동계는 8880원(6.8% 인상)을 내놨고, 이를 표결해 859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소모적 논쟁으로 매년 법정시한 못지켜… 위원회 구성 개정안 국회 계류 중

최저임금은 법정시한을 지켜 결정된 일이 오히려 드물다. 1988년 이후 법정시한을 지킨 해는 8차례에 불과하다. 여러 이유로 노사가 각자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 파행이 반복해 일어났던 것이다.

지난해에도 6월 27일이었던 법정시한이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사용자 위원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업종별 차등적용안’이 전체 표결에서 부결되자, 법정시한 당일 개최된 최저임금위 전원회의를 보이콧했다. 그 전해에는 근로자 위원들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에 반발해 법정시한일이었던 6월 말까지 회의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선하는 안을 지난 2018년 말에 내놨다.

정부 안은 다음 년도 최저임금 인상 범위를 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을 설치하고, 여기서 정해진 인상 범위에서 금액을 최종 결정하는 ‘결정위원회’를 두는 방식이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전문가 집단으로, 결정위원회는 현행과 같은 노·사·공으로 구성한다. 또 공익위원들은 정부가 단독으로 위촉하지 않고, 국회 추천권을 만들어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이 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계류 중이다.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오는 5월 29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20대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며 "혹시 통과되더라도 올해에는 적용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