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가장 감사한 일은 두 딸 가슴으로 낳은 것...그것이 나의 달란트" 신애라

입력 2020.04.11 07:00 | 수정 2020.05.13 18:18

"배우자는 내 결과물… 25년간 차인표는 좋은 사람"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 입양 말고는 닮은 점 없어"
"교육, 과잉보다는 방치가 낫다… 재능 발견해 줘야"
"입양한 두 딸 ‘버려지지 않고 지켜진 것'으로 이해"
"입양 뒤늦게 말하면… 생모 원망, 출생 저주할 수도"
"예수님이 내 스승…달란트는 남에게 쓰라고 받은 것"

“나의 인생 스승은 예수님이에요.” 신애라 부부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고 ‘착한 임대료 캠페인'에도 동참했다./사진=박상훈 기자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백화점 판매원 ‘진주’로 등장해 백화점 소유주인 재벌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신애라. 꼭 끼는 유니폼을 입고 로비를 종종거리던 여자와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트럼펫을 불던 여피족의 사랑은, 소비 시대의 밝은 분위기를 타고 대중의 환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트렌디 드라마가 낳은 이 낭만적인 커플은 순식간에 전 국민의 부러움을 받는 TV 시대의 마스코트가 됐다. ‘국민 스타'였던 차인표는 미국 영주권자 신분을 버리고 씩씩하게 입영 영장을 받았다. 신애라는 사파리 점퍼에 검은 모자를 쓰고, 군대 가는 차인표를 배웅했다. 남자는 거짓 없이 믿음직스러웠고 여자는 다부지고 현명했다. 군 복무 휴가 중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사랑은 환타지 동화의 한 장면이었으나, 이후 두 사람의 삶은 땀에 젖은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졌다. 누가 누구를 더 큰 곳으로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선 굵은 삶은 일반인들의 예측을 벗어났다.

작품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차인표는 종종 가뭄과 지진으로 고통받는 제 3세계 어딘가에 있었고, 신애라는 아프리카 극빈국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NGO 활동가들의 카메라에 잡힌 차인표의 눈은 밝게 이글거렸고 신애라의 눈은 물빛으로 촉촉했다. 그들은 한 아이를 낳고(1998년) 두 딸을 입양했고(2005년, 2008년) 극빈국 50명의 아이를 양육 후원하고 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연예계에 선순환을 일으켰고, 지금은 많은 스타가 봉사와 기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2010년 부부는 포니정 혁신상을 받았다.

신애라는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이후로 자신이 26년 동안 일곱 번 쓰러지면 여덟 번 일어나는 똑순이로 살았다고 했다.

지난 2014년 미국에 가서 교육과 상담학을 공부하던 그녀가 5년 반 만에 돌아왔다. 오랫동안 이들의 성숙한 사랑의 방식에 매료됐던 나는, 7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애라에게 만남을 청했다.

‘감독 차인표’라는 검은 명패가 놓인 청담동 사무실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개나리색 스웨터에 수트를 입은 키 큰 여성이 뛰어 들어왔다. 비타민C 레모나를 눈으로 흡입하는 것 같았다. 피비 케이츠도 안젤리나 졸리도 울고 갈 만큼 힘과 상냥함, 품위가 흘러넘쳤다.

생일날엔 아이들이 써준 긴 편지를 선물로 받는다는 신애라./사진=박상훈 기자
인터뷰 중에 가장 많이 한 말은 ‘달란트'와 ‘누구를 살릴 것인가'였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시원스레 웃었고, 그때마다 뾰족한 윗입술 아래로 하얗고 고른 치아가 빛났다. 때로 사는 게 고되도, 소명이 있어 좋아죽겠다는 표정... 저런 여자가 엄마라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도 아이들과 함께 보육원에 종종 가나요?

"큰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은 안 가요. 미안하대요. 아기들 있는 영아원엘 가죠. 예은이(15살) 예진이(13살)는 대한사회복지회에 있었는데, 거기 가면 애들이 처음 있던 자리를 꼭 찾아가요. "니가 여기 누워 있었다!" 하면서요(웃음)."

왜 신애라가 이야기하면 상처, 편견 같은 뾰족한 단어도 구르는 공처럼 부드러워질까. 요란하게 꾸며내는 게 아니라, 원래 생긴 모습대로 불러주는 언어는 모난 데 없이 둥글고 깨끗했다.

‘입양’이라는 말. 생물학적 출산이 가늠할 수 없는, 크고 뭉클한 ‘낳음'의 원형질을 간직한 말. 태어났다는 사건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기뻐 울게 되는 말.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 과정을 듣는 걸 좋아하더군요.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 반복된 이야기인데도 늘 처음 듣는 것처럼 표정이 상기돼요.

"맞아요. 우리 아이들도 내가 자기들을 발견했을 때 이야기를 참 좋아해요. 거의 외우고 있어(웃음). 그게 자기 정체성이에요. 귀하게 받아들여졌구나… 그런데 입양 얘길 쉬쉬하면, 그건 아이들이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을 비밀로 묻어두는 거죠. 그게 얼마나 미안한 일이에요. 만약 내가 입양됐다면 ‘엄마가 안 낳았다'는 것보다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에 분노할 것 같아요."

대한사회복지원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영아들.
-그래도 아이 입장에선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와 나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 같아, 충격이 있을 텐데요.

"나중에 알면, 그 뒷감당이 더 무서워요. 사춘기 때 무심코 알게 되면 부모에게 못되게 굴고 생모를 저주하는 일까지 있어요. 출생 자체가 원망이 되는 거예요. 얼마나 속상해요. 초기에 반드시 감당해야 해요. 어릴 때부터 ‘생모가 힘든 가운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네 생명을 지켜줬다.’ ‘너는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거다' 해석해주면, 버틸 힘이 생겨요. 오히려 생모에게 고마워하죠.

우리 아이들이 그래요. "와! 세상에 내가 못 나올 뻔했는데, 나온 거네!" 저도 아이들한테 신나서 그러죠. "난 너희들 생모 진짜로 존경해. 엄마한테 너희들이 오도록 해줬잖아." 세상사 다 생각 한 끗 차이잖아요?"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정말 몸으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자기가 있던 영아원에 가서는 뭐라고 하나요?

"예은이 예진이는 자기 침대 자리에 가서 그래요. "내가 정말 여기 있었어? 근데 엄마, 내 옆에 있던 아이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그 애들이 될 수도, 그 애들이 내가 될 수도 있었잖아. 그치?" 그러고는 집에 와서 많이 울었어요.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해외로 시설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 ‘그때 옆에서 함께 울던 너희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니?’ 엄마와 딸은 동일한 그리움으로 삶과 사랑의 신비에 다가갔다.

헌신과 환희로 빛나는 신애라의 얼굴. tvN새 드라마 ‘청춘 기록'의 럭셔리 엄마 역할을 준비중이다/사진=박상훈 기자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는 일일교사로 가서 ‘입양'에 대해 반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그날 친구들이 그랬대요. ‘너 입양 돼서 좋겠다'고(웃음)."

아이들도 최선을 다해 어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렸다. "우리 엄마는 배가 작아서, 저는 왼쪽 가슴으로는 낳고 동생은 오른쪽 가슴으로 낳았대요(웃음)."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을 아이들은 그렇게 제 식대로 귀엽게 ‘오해’했다. 정답은 아니지만, 오답도 아닌 채로. 탯줄보다 강한 건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애틋함이라고. 큰딸 예은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길고 긴 감사의 편지를 썼고, 그 편지에 엄마의 답장과 아름다운 삽화를 입혀 ‘내가 우리 집에 온 날'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했다.

“엄마, 나를 데려와주서 고마워요.” 그림책 ‘내가 우리 집에 온날'. 신애라와 딸 예은 양이 함께 한 결과물이다.
-세 아이를 어떤 양육 철학으로 키웠습니까?

"잘하는 것을 하며 남들과 더불어 사는 것, 이게 생의 전부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아이들 이야기를 공감하고 수용해주려고 했어요. 부모와 관계가 좋아야 사회 나가서도 관계가 좋으니까. 그다음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줘야죠. 부모가 재능을 읽어주지 못하면, 아이에게 안 해도 되는 걸 무리해서 시키게 돼요. 불안하니까 공부 시간만 늘리죠. 부모의 욕구가 개입되면 아이들과 관계가 아주 나빠져요."

-큰 아이인 차정민 군은 가수로 데뷔했더군요.

"네. 그 아이는 노래를 좋아했어요. 뱃속에서부터 제가 라디오 하는 걸 들어서 그렇대요(웃음).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가서 그곳에서 자기 길 갈 줄 알았더니, 실용음악과에 편입하더라고요. 유튜브로 음악 발표하고 착착 알아서 제 길 갑니다. ‘네 인생이다’ 존중하면서 가끔 슬쩍 몇 마디 조언해 주면, 또 은근슬쩍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하면서 따라오기도 하고요. 감사하죠.

두 딸은 경기도의 기독교 대안학교(동탄기독학교)에 보냈어요. 시설도 규모도 무지 소박한 데, 교육 철학이 잘 맞았어요. 인스타, 틱톡, 유튜브 못하게 하고 독서를 많이 시켜요. 규정상 스마트폰을 못 하게 하니 애들이 심심해서, 안치던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어요(웃음)."

청소년에게 담배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제한하는 정치인이 나오면 당장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마트폰 최대한 늦게 주기’ 같은 사회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알아요. 힘들죠. 식당에서 아기 엄마들한테는 스마트폰이 주는 잠깐의 평화가 얼마나 달콤한데요. 하지만 그렇게 습관화된 아이들의 미래는 더 감당하기 힘들어요."

국내 위탁 가정 분야에서도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는 신애라./사진=박상훈 기자
-실리콘밸리의 최상위 리더들도 자기 자녀들에게만큼은 디지털 환경을 완벽하게 차단하더군요. 그런 맥락에서 ‘아이들의 재능 찾아주기’도 그만큼 여유 있는 부모들에게 유리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제가 미국 가기 전에 스카이 대학의 신입생들에게 강연한 적이 있어요. 학생들에게 ‘원하는 전공을 찾은 사람?’ 물었더니 10명도 손을 안 들었어요.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온 사람?’하니 다 들어요(웃음). 4년 동안 비싼 돈 내고 공부하는데, 자기 미래와 연관을 짓지 못해요. 슬픈 현실이죠.

저희 부모님도 먹고사는 게 바빠서 저희 재능을 못 찾아줬어요. 감사한 건 당신들도 알아서 했으니(아버지는 서울대 작곡과, 어머니는 서울대 국어교육과 출신이다),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셨어요. 공부 안 한다고 혼난 적은 없어요. 거짓말하면 혼이 났죠. 무엇이든 강요하신 적이 없고, 그래서 감사하게도 저는 제 길을 찾았어요."

-핵심이 뭐지요?

"과잉보다는 결핍이 나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어떻게든 자기 길을 찾아가요. 경계선을 크게 치고 아무 풀이나 뜯도록 놓아주면 돼요. 끌고 가서 이 풀 먹으라고, 심지어 풀을 다 짓이겨 씹어주면 아이들은 일어설 힘이 없어져요. 혼자 나가서 살 수가 없어요. 학습만 놓고 보면 과잉보다는 차라리 방치가 나아요."

-미국에서 교육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달리 깨달아지는 게 많던가요?

"참고로 저는 영어 수업보다 한국어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오해하실까 봐(웃음). 히즈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고 이어서 가정 사역을 공부했어요. 심리학은 사람들을 알아가는 학문이었고, 상담학은 그렇게 알게 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학문이었죠. 관계를 잘 맺게 해주는 공부랄까요.

칼 로저스 이론까지 파지 않더라도, 공감과 수용을 공부하면서, 저는 저 자신을 많이 스캔했어요. 그동안 욕먹는 거 싫어해서, 진솔하지 못했죠. 누가 저에게 고민 상담하면, 따박따박 옳은 소리만 했어요. 공감이 부족했고 정말 부끄러웠어요."

5년 반 동안 자기반성만 하고 왔다고 했다.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또 무엇을 발견했나요?

"저에게도 통제 욕구가 있더라고요. 좋아서 권하지만 나에게 좋은 게 남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자신의 소명은 아이들과 사는 것이라는 신애라.
-위탁 가정 교육 프로그램도 이수한 거로 압니다. 미국엔 위탁 가정이 많고, 그만큼 수혜도 폐해도 많죠. 디씨 코믹스의 영화 ‘샤잠'이나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퀸'에서도 위탁 가정이 자연스럽게 등장해서 신기했어요.

"미국은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이는 위탁 가정이 맡아요. 장애가 있어도 일반 가정에서 돌보죠. 자격증 제도는 장점이에요. 위탁 아동이 생기면 리스트에 있는 가정에 맡겨요. 1인당 600~1,000달러를 받으니 5명 키우면 생활비가 나오기도 해요. 법적으로 검증된 됐다지만, 돈 때문에 여러 문제도 생겨요.

지금 저는 한국의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자문을 해요. 홍보대사도 맡고 있죠. 제 생각엔 위탁 가정은 순수 봉사로 정착됐으면 해요. 그래야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이 일을 해요. 그럼 어떻게 보상하느냐? 의료, 물품, 재능, 식품 등을 지원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에겐 모든 삶의 기준이 아이들이었다. 국제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의 홍보대사로도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캄보디아, 필리핀, 브라질 등에서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일대일 결연으로 양육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독립하면서 지금은 30~40명 정도의 아이를 지원하고 있다.

-한때 별명이 80년대 스타 피비 케이츠였는데, 요즘엔 입양과 난민 보호에 앞장서는 안젤리나 졸리가 떠올라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입양 때문에 그렇게 봐주시는데, 그것 말고는 졸리와 닮은 게 하나도 없어요. 하하하."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이런 인생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컴패션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차인표.
-무슨 말이죠?

"하나님이 제게 주신 달란트, 제게 맡기신 일이 이거였어요. 신은 모든 인간에게 남들과 함께 살기 위한 달란트를 주세요. 저는 그게 아이들이었어요. 배우는 제 적성에 맞는 좋은 직업이죠. 그런데 연기라는 업으로 영향력이 생기고, 대중들이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시니 아이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성경의 달란트는 우리가 아는 탤런트, 세속적인 재능과는 다릅니까?

"달란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고 받은 거죠.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그걸 땅속에 묻어두면 나중에 하나님께 ‘악하고 게으른 종아!' 소리를 들어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손에 달란트를 쥐고 나와요. 그걸로 자기가 살릴 대상도 정해져요. 저는 아이들이고, 어떤 분은 소수자나 싱글맘이죠.

받은 재능으로 누구를 도울 수 있나, 자녀가 그 대상을 찾도록 돕는 것도 부모예요. 공부는 나중에 해도 돼요. 춤추는 게 좋으면 안무를, 꾸미는 게 좋으면 디자인을 공부하면 돼요. 저희 막내는 동물을 좋아해요. 수의사가 되고 싶으면 공부 많이 하라고 해요(웃음). 아니면 애견카페나 동물 조련사도 좋다고 하죠.

대신 ‘조련사가 되려면 사랑이 많은 조련사가 돼라, 판매원이 되면 정직하게 잘 파는 판매원이 돼라’ 그래요. 대학은 필요하면 가도 된다고요. 큰 애가 실용음악과 편입한다고 했을 때도, 저는 ‘음악은 학교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게 낫지 않니? 돈도 벌고(웃음).’ 그랬어요."

신애라의 에너지는 밝고 시원했다. 자기 사명을 삶으로 보여주는 부모에게 무슨 잔소리가 필요할까. 하는 족족 옳은 소리였으나 너무 무겁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곧 시작할 tvN 드라마 ‘청춘기록'에서는 오랜만에 금수저 럭셔리 엄마 역할 맡아, 생애 최초로 ‘연예인처럼' 주기적으로 피부 관리도 받고 손톱도 칠해봤다며 환하게 웃었다.

"목숨 걸고 자식에게 집착하는 역할이에요(웃음). 오십이 넘어서야 진짜 연기자가 된 것 같아요. 하하."

인생의 전환점은 하나님을 믿은 것. 아이들을 키운 것. 미국에서 5년 반 동안 공부하며 반 백의 삶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사진=박상훈 기자
-배우 인생에서 아쉬운 것은 없습니까?

"제 인생 목표가 ‘최선을 다하지 말자’예요(웃음). 너무 기를 쓰고 하면 나중에 ‘내가 다 했다’고 교만해질 수도 있잖아요. 정도껏 열심히 하고 어느 순간 ‘됐어. 괜찮아' 브레이크를 걸죠. 하하. 그렇게 생각해도 ‘연기는 좀 더 최선을 다해 볼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닮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나문희 선생님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우로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오드리 헵번, 참 좋아해요. 자기 길을 잘 걸어간 멋진 사람이죠.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잖아요. 헵번의 사진을 보면 눈이 막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하하."

-50대 여배우로 사는 건 괜찮은가요?

"(화사하게 웃으며)서른은 좀 아쉬웠지만 마흔 시절부터는 계속 더 좋았어요. 전 지금 나이가 항상 괜찮아요."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슬플 때는 언제인가요?

"온 가족이 편안하게 소파에서 수다 떨며 맛있는 것 먹을 때, 막 벅차고 기뻐요. 타향에서 혼자 아팠을 때, 딸들이 서로 싸울 때는 슬프죠(웃음)."

지구촌 가족을 이루며 사는 차인표 신애라 부부. 2010년 포니정 혁신상을 받았다.
-부부가 불화 없이 성숙하게 잘 지내는 관계의 비결은 뭐지요?

"다들 비슷하지 않아요?(웃음). 차인표 씨는 가정적이고 좋은 남편이에요.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보기 좋지요. 설거지는 자기가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3월 10일이 결혼 25주년인데, 그 긴 세월을 함께 하며 아내가 뭐 그리 계속 예뻤겠어요. 그래도 끝까지 ‘예쁘다 사랑한다' 해주는 게 정말 고마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의 내 배우자의 모습이 내 결과물이다. 내가 잘됐으면 배우자 덕이고, 배우자가 잘 못되어있으면 제 탓이겠구나… 요즘엔 진솔해지려고 싸움을 걸어요. 끝까지 진솔해야 같이 살 수 있어요. 싸우지 않고 묻어두면 문제가 생기죠.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려고요. 남은 인생이 더 기니까요(웃음)."

-어떤 부모로 남고 싶으세요?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좋았던 부모요. 많은 아이를 함께 살리는 데 노력했던 엄마요. 다행히 우리 아이들도 크면 입양하겠대요."

죽기 전에 가장 감사하게 떠올릴 사건은 두 딸을 입양한 것이라는 신애라/사진=박상훈 기자
-인생의 스승은 누구였나요?

"예수님이요! 성경에서 그 행적을 읽을수록 과부와 고아와 약한 이웃을 향한 그분의 사랑이 느껴져요. 닮고 싶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무엇에 가장 감사하게 될까요?

"두 딸을 입양한 거죠. 혼자 누리기 아까울 만큼 정말 감사하고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그가 쏟아낸 기쁨의 언어가 공기 중에 닿은 피톤치드처럼 싱그럽게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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