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ELS 너무 찍어 금융시장 혼란일으킨 증권사들

조선비즈
  • 안재만 증권팀장
    입력 2020.04.09 04:00 | 수정 2020.04.09 10:41

    금융시장에 '회색 코뿔소'라는 용어가 있다. 회색 코뿔소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어서 계속 경고는 나오지만,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가 무시하는 위험요인을 뜻한다. 파티장 한구석에 회색 코뿔소가 있지만, 사람들은 "저 코뿔소는 날뛰지 않아. 무시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회색 코뿔소가 날뛰기 시작하면 파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코뿔소가 달려오면 투자자들은 몸이 얼어붙어 제때 마땅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위험을 뜻하는 ‘블랙스완’의 대비 개념으로 2013년 만들어진 용어다.

    금융당국이 여러 번에 걸쳐 과도하다고 지적했던 100조원이 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회색 코뿔소였음이 드러났다. 모든 전문가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지만, 증권사는 괜찮다고 항변해왔다. "기초자산이 가입시점보다 반토막 나지 않으면 손실이 발생하지 않으니 투자자들에게도 좋다"는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ELS가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일으킨 혼란은 우려했던 것 이상이었다. 해외 선물거래소들은 기초자산 가격이 떨어지자 국내 증권사에 추가 증거금 납부를 요청했고, 이 규모가 조(兆)단위에 이르다 보니 증권사들은 허겁지겁 여신전문금융회사채를 팔아대고 기업어음(CP)을 찍었다. CP 91물 금리가 동일 신용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를 뛰어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유동성 경색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4월 회사채 위기설까지 나왔다.

    환율은 또 어땠나. 증거금 납부를 위해 한꺼번에 환전하다 보니 원화값이 추락했다. 가뜩이나 금융위기는 설(說) 자체만으로도 환율 급등 요인인데, 증권사들 때문에 그 폭이 더 커졌다. 다행히 최근 환율은 진정됐지만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은 조마조마한 3월을 보내야 했다.

    증권사들은 사고를 친 후 기획재정부에 SOS를 쳤음에도, 또다시 ELS를 대규모로 발행하고 있다. 1분기 ELS·DLS 발행 규모는 약 29조원이다. 예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조기상환이 잘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꽤 많이 찍어낸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수 변동성이 커지면서 ELS 목표 수익률이 연 10%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경쟁률이 3~4대 1에 이르는 상품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금융회사가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쏠림 현상이다. 100조원이 넘는 ELS는 분명 과도했다. 금융시장에 큰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눈으로 확인했다. 최근 개인 투자자가 계속 늘고 있으니, 이들을 간접투자시장으로 이끌기 위한 매력적인 상품을 더 발굴해야 한다.

    헤지(hedge) 능력도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ELS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원이 되어야 한다. 지수가 밀린다는 이유로 큰 손실을 기록하면, 고이율로 돈을 빌려서 해외 주식 선물에 투자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증권사들의 이번 1분기 실적은 ELS 헤지를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한다. 증권사들도 이제 3조~8조원의 자본금을 갖춘 대형 금융회사가 됐다. 고객은 물론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든든하게 운영되는 대형 증권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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