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들여 훈련 받고 조종사 됐는데... 코로나에 항공업계 파일럿 채용 올스톱

조선비즈
  • 최지희 기자
    입력 2020.04.08 06:10

    작년 조종사 자격증 취득자 894명… 채용은 548명뿐
    항공사서 조종사 키우는 ‘先선발 후교육’ 제도에도 471명 ‘적체’
    코로나 칼바람에 이스타항공 수습 부기장 80여명 해고
    해외 이직길도 좁아져… 작년 해외 이직자 26명 불과

    국내 항공사에서 4년차 부기장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 김재훈(가명)씨는 지난달 초부터 비행 스케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여객 운항 노선이 90% 이상 감편 되면서 김씨가 주로 조종하던 보잉777 등 여객기들이 주기장에 발이 묶여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휴직도 답답하지만, 올해 비행 심사에서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인력 조정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 동료는 지난주 직장을 잃었다. 김씨는 "동료가 조종사 자격증을 따고도 6년간 취업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신입 부기장으로 합격했다고 좋아했는데, 항공사가 어려워져 몇 달 만에 바로 실직자가 됐다고 지난 주말 펑펑 울며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16개월째 조종사 자격증을 준비 중인 황모(34)씨도 요즘 진로 고민에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는 대형항공사 취업을 목표로 대출을 받아 총 1억2000만원을 투자해 조종사 교육을 받아왔다. 황씨는 "자격증 취득자는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덮쳐 희망이 안 보인다"면서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포기한다고 남들은 혀를 찰지 몰라도, 적은 나이도 아닌 내가 과연 파일럿이 될 수 있을지 답이 안 나와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한다"고 했다.

    대한항공 운항승무원들. /조선DB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이 조종사를 포함한 인력 조정에 나선 가운데 지난해 조종사 자격증 취득자가 9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증 취득자는 크게 늘었지만, 코로나발 경영난으로 올해 운항승무원(조종사) 채용 계획이 있다고 밝힌 항공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2~3년 동안 1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이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비행 낭인(浪人)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8일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종사 자격증(다발 비행기) 취득자는 2017년 781명, 2018년 857명, 2019년 894명 등으로 계속 늘었다. 반면 이들 중 항공사에 취직한 인원은 2017년 590명, 2018년 635명, 2019년 548명에 불과해 조종사 수급 불균형은 심화하고 있다.

    여기에 각 항공사가 지원자를 뽑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교육시키는 ‘선(先) 선발 후(後) 교육’ 제도를 이수한 뒤 채용을 무기한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2018년 처음 실시된 이 제도에는 작년까지 총 471명이 선발돼 조종사 양성 교육을 받았다. 항공사들은 조종사 채용 정원의 30%가량을 이 제도를 통해 뽑는다. 2년여간의 교육을 이수한 지원자들은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조종사에 정식 채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마저 코로나 사태로 전면 중단됐다.

    그래픽=정다운
    한 항공사 관계자는 "올해는 이미 뽑은 인력도 최대한 정리하려는 분위기라 조종사 수요는 사실상 제로(0)"라며 "고용 위협을 받는 조종사들은 다른 항공사로 이직을 고민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은 올해 조종사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비행기가 뜨지 못해 조종사들이 휴직에 들어간 데다 신규 항공기를 들여올 여력도 되지 않아 조종사를 충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영난에 빠진 이스타항공은 지난 1일 자로 1~2년 차 수습 부기장 80여 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취업에 성공한 조종사들마저 직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이직 길도 좁아져 조종사 적체 현상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로 이직한 조종사 수는 2017년 145명, 2018년 80명을 기록한 데 반해 지난해 26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형항공사의 한 기장은 "항공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중국 등에서 한국인 조종사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몇 년 전 얘기"라며 "요즘은 오히려 중국에서도 조종사 규모를 줄이려 하고 있고, 올해는 특히 코로나로 전 세계 항공사가 타격을 입어 이직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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