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기관 "올해 신흥국 GDP 1.5%감소 전망" 69년 만에 처음
우한코로나, 해외 의존도 높은 신흥국 경제 직격…재정여력 부족
아르헨티나 9번째 채무불이행 위기…올해 만기 채권만 220억弗
높은 해외 의존도, 부실한 재정 여력, 해외 투자자들의 불신.
신흥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부각 되며 국내총생산(GDP)이 69년 만에 감소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왔다.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등 일부 남미국가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 시장조사업체 캐피탈이코노믹스를 인용해 올해 신흥국의 GDP가 1.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 회사가 신뢰할 만한 자료를 토대로 집계를 시작한 195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친 1990년대에도, 리먼쇼크 이후인 2009년에도 신흥국 경제는 플러스 성장을 했다.
올해 신흥국 경제가 금융위기 때 보다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①대외 충격에 취약한 자원이나 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 ②금융위기 때보다 어려워진 재정여건 ③신흥국 경제의 구원투수였던 중국과 인도의 경기 침체 때문이다.
신흥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집약시켜놓은 국가가 바로 멕시코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멕시코 GDP가 8% 감소해 대공황 이후 최악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대미(對美) 수출 감소, 정부 수입의 5분의1에 달하는 석유 수입 급감, 관광 수입 감소, 미국과 유럽에서 일하는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 감소 4중고로 멕시코 경제는 휘청이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모두 중단하고, 한정된 자원을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쓰겠다고 했다. 국회 하원의장은 선진국에 멕시코의 채무를 감면해달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세수 감소로 GDP 대비 재정적자가 2.6%에서 올해 말에는 4.4%로 급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멕시코보다 경제구조가 더욱 단순한 국가들도 있다. 수출 수입의 86%가 석유에서 나오는 나이지리아는 지출 확대는 커녕 예산 삭감에 나섰다. 자메이카는 관광산업이 경제의 34%를 차지하며 직업 3개 중 1개가 관광업에서 나온다. 엘살바도르 국민 상당수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해외 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데 국가 봉쇄 조치에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이 국가는 해외 송금액이 GDP의 20%를 차지한다.
신흥국 금융시장에선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가며 자국기업과 국민들의 차입비용을 증가시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월 21일 이후 약 2개월 간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820억달러(101조2000억원)가 유출 됐다. 신흥국 증시는 최근 6주 간 20% 하락해 2017년 이후 상승 폭을 반납했다. 주요국 통화 가치는 급락했다. 올 들어 멕시코 페소, 러시아 루블, 남아공 랜드 값은 미 달러화 대비 20% 떨어졌다.
상당수 신흥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재정 여력이 부족해 우한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을 감당할 수 없다. 브라질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작년 말 75.8%에 달했는데 이는 2008년 58.6%에서 급증한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강등 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 연기금이 더이상 이 국가 채권을 살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위기 때 신흥국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중국과 인도 마저도 경제 둔화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8%에서 2.3%로 대폭 낮췄다. 주요 투자은행은 최악의 경우 1%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도 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인도 경제가 올해 0.5% 위축되고 실업률은 30년 만에 가장 높은 6.5%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르헨티나는 무려 9번째 디폴트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디폴트를 1827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8번 선언했고 현재도 1150억달러(141조9000억원)에 이르는 해외 채무를 도저히 갚을 수 없다며 재조정 하기 위한 협상을 채권단과 진행중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외국통화 표시 채권만 220억달러(27조2000억원)에 이른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3일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Caa2에서 디폴트 바로 윗단계인 Ca로 두단계 강등했다. 우한 코로나로 경제를 지탱하던 관광산업이 위태로워졌고 그나마 낙관적 전망을 갖게 했던 세계 2위 셰일가스 보유국이라는 지위도 국제유가 급락으로 오히려 위험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워싱턴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남미 전문가 벤자민 게단은 "아르헨티나가 디폴트를 피하는 건 어려워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