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바이러스가 묻는다, 인간 집단은 이대로 괜찮은가?" 김승섭 사회역학자

입력 2020.04.04 07:00 | 수정 2020.05.13 18:19

‘우리 몸이 세계라면' 쓴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
"바이러스도 차별적… 사회적 약자 더 많이 죽어"
"사회적 거리두기? 장애인 ‘사회적 거리좁히기’ 절실"
"코로나19 이후... 건강 불평등 더 심해질 것"
"백신, 최단기간에… 전 세계 제약 회사 경쟁"

사회역학의 개척자,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 ‘우리 몸이 세계라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 두 권의 저서를 쓴 스타 학자다./사진=남강호 기자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중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세계의 중심가 뉴욕 맨해튼이 비현실적으로 텅 비고, 항구엔 대형 의료선박이 들어서 있다. 시체를 채운 냉동 컨테이너 행렬이 도로에 즐비하고, 임시 시신 안치소 천막이 바람에 휘날린다. 며칠 전 SNS에 현장 사진을 올린 의료진이, 오늘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중국산 마스크를 차지하려고 선진국 국가 간에 얼굴을 붉히고, 주가는 폭락했다. 어떤 리더는 거짓말로 화를 키우고, 어떤 리더는 굳은 얼굴로 재난을 직시한다.

바이러스는 동시에 지구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인간의 움직임이 멈추자 지구가 깨끗해졌다. 중국의 탄소 배출이 25% 이상 줄어들면서 대기질이 깨끗해졌고,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던 베네치아 운하에는 60년 만에 물고기가 돌아왔다. 시리아, 예멘의 전투가 중지됐으며, 각국의 사회 보장이 강화됐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의 개척자인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는 ‘아픔이 길이 된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라는 두 편의 저서를 통해 그간, 우리 사회 약자들의 질병의 사회사와 공중 보건의 역사를 통찰해 냈다.

사회역학자로서 김승섭의 언어는 통증의 언어인 동시에 데이터의 언어였다. 그는 세월호 생존 학생, 천안함 생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소방공무원, 성 소수자 등을 연구해서 글을 썼다. 우리가 몰랐던 사회적 약자의 언어를 건져 올렸고, 고통을 수치화했으며, 그들이 처한 건강 문제를 사회에 알렸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나의 몸과 타인의 몸이 동일한 아픔의 길이며, 우리 몸이 곧 세계라는 육체성을 자각했다. 그의 책은 14개의 출판상을 수상했다.

어제와 오늘이 임시 천막의 나날처럼 느껴지던 어느 날, 고려대학교를 찾았다. 김승섭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학생 없는 텅 빈 교정에 봄꽃만 가득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것 같은’ 해사한 얼굴의 교수가 가장 낮은 자리의 언어로 치열하고 튼튼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시인이 될 수도, 철학자가 될 수도, 의사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사회역학자가 된 듯했다.

재난 앞에도 계급이 있으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가 더욱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김승섭./사진=남강호 기자
그가 인터뷰 중에 가장 많이 쓴 말은 ‘더 나은 언어'와 ‘질문했다'였다. 김승섭은 연세대 의대,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로나19가 글로벌 팬데믹으로 갈 거라고 예상했나요?

"아니요. 못했어요. 역사적으로 스페인 독감이 5천만 명이 사망했는데, 실제 팬데믹을 몸으로 겪은 건 처음이에요.

-전 세계는 마치 ‘폭탄을 돌리듯' 빠른 주기로 혐오와 낙인을 주고받았습니다.

"감염원이 누구인가? 확진자가 어디에 몰렸나? 이걸로 ‘혐오 돌리기’를 했어요. 중국, 대구, 아시아, 미국과 유럽으로. 초창기엔 맨해튼에서 한국인이 폭행당하기도 했고, 일본은 조선인 유치원에 마스크를 주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 한 인간, 하나의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낙인은 그런 비용을 치르지 않아요. 특정 인구 집단 전체를 매도해버리면 쉽고 짜릿하죠. 그 비과학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단기간에 극적으로 펼쳐진 거예요."

-코로나 이후에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까요?

"아니요. 어떤 현상이 배움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아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과적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후 과적이 단속되고 중지됐나? 아니에요. 낙인의 비합리성을 경험했다고 바로 바뀌지 않아요. 낙인은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합리적 태도는 복잡하고 어렵죠.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정확하게 모르는 것은 판단을 유보해요. 정치인은 불확실성에서 판단할 수 있어요. 나는 학자이고 공부하는 사람이라 임무가 다르죠. 사회적 약자의 삶을 기술하는 더 나은 언어를 발견하려고 해요."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21세기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더 나은 언어’라는 게 뭐지요?

"문학을 예로 들면, 힘든 상황을 겪더라도 책 속에서 정확하게 설명된 문장을 만나면, 내 상황도 좀 견딜 만 하잖아요. 제가 하는 공부도 그래요. 어떤 상황을 구체적인 언어로 내놓으면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요. 제 언어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언어로 가닿을 수 있도록, 삶에서 건져 올린 데이터로 설명하려고 해요."

그의 스승인 폴리오 프랭크 교수(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는 그에게 가르쳤다. ‘질병을 피할 수만 있다면 경제학, 심리학, 통계학… 모든 학문을 가져다 쓰라’고.

-데이터 과학으로 ‘더 나은 언어’를 건질 수 있습니까?

"내가 가진 데이터를 최선을 다해 분석하면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명확하게 나와요. 데이터는 힘이 있는 만큼 한계도 명확해요. 힘들지만 이 학문으로 더 나은 언어를 추출할 수 있어요. 가령 성 소수자는 국가 데이터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은 집단이에요. 저는 그들의 건강에 관해서 묻고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을 수치화하죠.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하는 화장품 판매 노동자에게도 물었어요. 혼자 서서 일하면 생리대를 갈지 못한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동안 노동자 건강 연구에 이런 질문은 없었어요. 저는 이런 걸 묻고 데이터화하는데 자부심을 느껴요. 예민한 문제일수록 큰 저널에 실어야 하는데 다행히 국제 학술대회에 발표해서 관심을 받았어요.

어떤 데이터도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내놓지 않아요. 묻지 않으면 컴퓨터도 답할 수 없어요. 질문하고 분석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은 시간과 돈이 들어요. 그래서 권력이 있는 집단의 질병은 널리 알려져요. 돈 없는 사람은 아파도 비명을 못 질러요."

-그런 종류의 질문은 사회적으로 어떤 답을 끌어낼 수 있지요?

"그분들이 고객용 화장실을 쓸 수 있도록 해야죠. 건물 내에 직원용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들어 놓고, 규칙을 강요하면 질병이 생겨요. 미국 호텔 노동자도 자신이 청소하는 객실 화장실 사용이 금지돼 있어요. 그런 식의 사례가 보여주는 함의가 커요. 질문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아요."

그는 가난하고 탄압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벗으로서 의사가 되고 싶었다. 연세대 의대 재학 시절, 산재 노동자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거나, 공단 지역에 가서 왜 노동자가 하루에 10명이 죽고 200명이 다쳐야 하는지 그 현실을 체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사진=남강호 기자
-공동체의 질병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누구의 언어에 영향을 받았습니까? 수잔 손택? 아툴 가완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에이즈를 연구하면서 읽었어요. 제가 영향받은 사람은 플라톤과 백석이에요. 미국 유학 갈 때 들고 간 책도 플라톤의 ‘국가론'과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어요. 그분들은 가장 깊은 세계를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죠.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다 죽음에 이르렀지만, 플라톤은 그 상처를 복수로 풀지 않고 철학으로 풀어냈어요. 칸트나 헤겔은 감당이 안 되는 문장을 쓰지만...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로 만든 노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들어보세요.

차마 닿을 수 없는 존재라도, 저는 백석과 플라톤의 방향이라도 닮고 싶은 거죠.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자세, 그 언어의 결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언어의 결이라는 말에서 진실함과 섬세함이 읽혔다. 말하지 못하는 차별 경험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고 김승섭은 책에서 썼다.

-스스로에겐 어떤 질문을 하죠?

"저는 측정하고 말하는 게 직업인 사람이에요. 내가 충분히 그분들을 알고 있나? 그 질문에서 오는 긴장이 힘도 되면서 부담도 커요. 내 몸에 언어를 가지런하게 비축해두면 어느 시점에 쏟아져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도 또 묻죠. 내 몸이 그 글을 쓸 자격이 있나? 내 삶에서 타자를 쉽게 판단하고 개념화할까 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수 밖에 없겠군요.

"타인의 고통은 내 것이 될 수는 없어요. 다만 저는 그 거리를 잘 아는 거죠. 인간 고통의 개별성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제 경우는 공부예요. 그렇다고 사회가 바뀌나? 그건 제가 답할 수 없어요.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죠."

흑사병으로 인구의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을 때 부동산 양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자보다 여자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코로나 이야기를 해보지요. 역사적으로 인류는 전염병 앞에서 어떻게 대응했나요?

"인간이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게 150년 정도예요. 그전까지 역병이 돌면 정체도 모르고 당했어요. 그런 상황이 닥치면 한 사회가 지켜오던 예의가 무참하게 무너졌어요. 기원전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 그리스는 장례식이 매우 중요했는데 역병으로 시체가 거리에 널려있어도 새조차 건드리지 않았대요.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한 흑사병이 돌았을 때, 1348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버리고 집도 재산도 버리고 다른 토지를 찾아 떠났어요. 1525년 중종 때는 역병으로 2만5천 명이 사망했어요. 평안도 전체가 텅 비었죠. 그 시절에도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중종은 큰 불확실성 속에서도 행동지침을 내놨어요. 사망자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지역 관리를 크게 나무라는 기록도 있어요."

모든 재난에서 지도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재난 규모를 축소하는 노력이라고 했다. 측정이 안 되면 분석할 수 없고 현황을 모르면 대책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사회적 계급에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덮쳐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이러스에도 차별이 있다고요.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아요.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진 않지만, 바이러스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사람마다 차별적이기 때문이에요. 더 많이 더 가까이 노출되고 치료가 늦어지기도 하죠. 바이러스가 의도하지 않아도 재난 속에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은 차별적이에요.

흑사병으로 인구의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을 때 부동산 양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자보다 여자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어요. 그전엔 물론 남성 사망률이 높았어요. 에볼라 바이러스로 서아프리카 사람들 수천 명이 죽어 나갈 때도 세계는 긴장하지 않았어요. 미국인 2명이 감염되고 나서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재난으로 선포됐죠.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사회적 비용이라, 약자의 소리는 확장되지 않아요."

뉴욕항에 도착한 해군 병원선 컴포트호가 허드슨강의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가고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상황을 보면 처참합니다. 미국은 확진자가 20만 명이 넘고 의료진 감염이 심각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체 운반을 위해 군인이 동원됐고, 뉴욕시에는 시신을 실은 냉동 컨테이너 트럭이 즐비합니다. 시신 안치 가방 10만 개를 긴급 요청하기도 했어요.

"(한숨을 쉬며)콜레라가 유행하면 마을 전체가 증발하는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에서만 보던 모습이죠. 높은 GDP를 가진 나라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에요. 미국의 경우는 코로나로 그동안 부실해진 공공 의료 시스템이 세상에 까발려지고 있어요.

아픈데 병원에 못 가고 검진받지 못하는 숫자가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지식과 기술은 압도적인 톱인데, 실제 감염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안타깝지만, 위기 상황에서 리더와 국가의 능력이 드러나고 있는 거죠."

-AI와 우주 탐사로 미래를 준비하던 인류가 바이러스 공격에 우왕좌왕하며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놀랍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생명 연장으로 신이 될 미래 사회를 염려했지만, 공상일 뿐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미소 지으며)학자는 학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의료 현장에서 적용 중인 AI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게 더 급박할지도 몰라요. 피부암을 진단하는 AI 알고리즘도 판단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논문이 나왔어요. 그거 아세요? 항생제가 개발된 지도 100년이 안 됐습니다. 120년 전, 그러니까 1880년대 논문에 이르러야 균이 나와요. 항생제 치료가 시작됐을 때, 이제 감염병은 끝이라고 환호했죠. 하지만 그 뒤로 무수한 바이러스가 새로 나왔습니다."

균은 계속 나오고 그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의료현장도 다르지 않다. 1847년 산부인과 의사인 제멜바이스가 손 씻기를 강조하기 전까지, 의사의 손에 감염되어 죽는 산모 사망률이 20%였다. 멸균 장갑과 마스크, 세균 오염 방지를 위한 완벽한 준비가 이뤄지는 데만 140년이 걸렸다.

성실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김승섭 교수./사진=남강호 기자
-미국의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 아툴 가완디도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라고 했습니다.

"1900년대 기준으로 미국의 사망 원인 넘버 1 2 3이 전부 감염성 질환이었어요. 2010년에 이르면 심장병, 암, 만성 호흡기 질환 등으로 바뀌죠. 항생제와 백신이 나오면서 감염에 저항할 수 있게 되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세포 노화로 인한 암이 생긴 거죠.

암에 대한 연구도 100년이 안 됐습니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것 천지에요. 그래서 큰 줄기로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야 해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느끼는 요즘이죠. 우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코로나로 경제와 건강 불평등이 더 깊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어요. 가장 약한 사람이 위험에 더 자주 노출되는 세계죠.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옵니다. 낮게 날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도 비는 내려요.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 택배 노동자가 사고 위험에 몰리죠. 마스크가 없는 노인은 무료 급식소도 출입이 안 돼요. 나이 많고 기저 질환이 있는 노인이 죽음에 내몰립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저 질환도 다르죠."

-청도대남병원의 사례가 마음이 아팠어요. 정신병원, 요양병원으로 코호트가 발동됐던 그곳을 패쇄병동의 지리학으로 설명하셨어요. 외출기록은 아예 없고 면회 기록도 드물어서, 타인에게 전염을 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이 슬픈 아이러니였습니다.

"103명 중의 101명이 감염됐어요. 98%죠. 장기 입원 환자가 대부분이고 의료 급여를 받는 빈곤층이 84명이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어두워지며)이런 상황을 접하면 저는 데이터과학자가 아니라 다른 언어가 있었으면 싶었어요."

청도대남병원은 초기에 코호트가 발동되면서 그 의료 환경의 열악함이 알려졌다.
-우리에겐 안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미 고립된 사회적 약자들에겐 큰 위협으로 다가왔군요.

"맞아요. 지금 장애인에게 시급한 건 ‘사회적 거리 좁히기’예요. 그분들은 일상에서도 시민 범주에서 배제되고 고립된 채 있어요. 이미 격리된 분들이죠. 코로나는 위생이 중요한 데 혼자서 잘 씻지도 먹지도 못해서 생존을 위협받아요. 듣고 나면 당연해도, 그걸 건져 올리기가 어려워요. 공동체가 어떤 가치와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가가, 그렇게 언어에 녹아있어요."

-구로 콜센터 노동자가 집단 감염이 되기도 했습니다. 콜센터 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연구도 진행한 거로 아는데요.

"고용 불안에 있는 분들은 증상이 있어도 ‘잘릴까 봐' 말을 못 합니다. 애매한 상태로 있다가 전파자가 돼요. 그분들의 일터를 ‘닭장’이라고 하는데, 그런 표현도 조심스러워요. 콜센터 연구를 보면 흡연실이 많아요. 스트레스가 심한데 수다나 커피는 시간이 걸리니, 담배로 해결하는 거예요. 코르티솔 수치도 높아요. 그만큼 환경이 열악해요."

-콜센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어떻게 응대할까, 매번 고민했어요.

"주로 이런 질문을 하죠. ‘전화는 상냥하게 빨리 끊는 게 도와주는 걸까?’ ‘할머니들이 주는 전단지는 일단 받고 버리는 게 맞을까?’ 이 쳇바퀴 같은 질문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사회역학자지만 노동 삼권과 기본소득까지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불현듯 성경 이야기를 꺼냈다.

"요한복음 8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함정을 파고 질문을 던져요. "너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며? 그런데 구약에 따르면 (간음한)저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예수가 가만히 땅에 무언가를 긁적이다가 말하잖아요. "누구든지 죄 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치라." A냐? B냐?를 묻는 말에 예수는 "당신은 누구인가?" 되묻잖아요.

저도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저같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사회가 돈을 대주는 이유는, 그런 질문을 하라는 명령이라고 봐요."

-혼자서 외롭게 질문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외로워요(웃음). 성 소수자에 대한 연구는 네이처, 사이언스, 뉴잉글랜드 저널 같은 세계적인 학술지에서 관심을 크게 받아요… (잠시 생각하다)저는 제 에너지의 90%를 제자 교육에 써요. 진짜 멋진 삶은 절실한 사회 문제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푸는 전문가를 키워내는 거예요. 극강의 멋짐은 대단한 연구자들이 한 연구소에서 나왔을 때예요. 저는 그 팀의 지도 교수이고 싶고요(웃음)."

높은 이상이나 소명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묻고 있어요. 인간은 이대로 생존해도 괜찮은가?”/사진=남강호 기자
-이 와중에도 ‘부자들은 럭셔리 마스크, 개별 응급실, 제트기 서비스로 바이러스에 다르게 대처한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돈이 들어가면 예뻐지고 안전해지고 편리해져요. 빈부에 따라 위험성을 조절할 힘이 다르죠. 아직은 어떤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요. 저도 그 정치 경제 세상 어딘가에 있는 존재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거죠. 이게 현실이고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정확히 보고 기록해 두려고 해요."

-한편으론 마스크 기부와 재난 기금 등으로 사회적 기여를 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세상의 역동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선실은 달라도 풍랑에 흔들리는 한배를 탄 것처럼요.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는 말이 나와요. 일상적이고 직관적이고 깊은 언어죠.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적이고 긍정적인 언어예요. 지금과 같은 환경의 맥락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언제쯤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까요? 스웨덴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집단 면역 실험에 들어갔는데요.

"아무도 답할 수 없어요. 우리가 주요 변수를 측정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신천지라는 변수도 몰랐고, 미국이나 유럽의 변수도 몰랐어요. 그건 폐암 발생 예측하면서 흡연 측정을 못 하는 것과 같아요. 큰 변수가 들어오면 예측 모델이 순식간에 망가져요."

-백신 개발 시기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겠지요?

"2020년의 과학 기술 역량이 최단기간에 답을 찾을 거예요. 시점은 역시 몰라요. 상용화까지 최소 1년은 걸리겠지요. 에이즈는 지난 30년간 획기적인 치료가 가능해졌어요. 지금은 20살에 걸려도 70살까지 살 수 있죠. 유럽과 미국의 백인이 주소비층이었기 때문이에요. 결핵이나 말라리아는 최악이었어요.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가 소비층이라 오래 걸렸어요. 코로나는 현재 소비력이 높은 국가에 퍼져 있어요. 명백히 돈이 되는 일이라 과학 기술과 제약회사의 역량이 총집중될 거예요."

하루 빨리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는 김승섭.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요. 1백 명이 강의실에 있어도 저는 학생들 눈빛이 다 보여요. 그 눈의 감정적 반응에 따라 강의 내용을 바꾸기도 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까워요. 주말엔 세 딸과 등산을 가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바이러스는 의미를 주기 위해 오지 않아요. 그냥 오는 거죠. 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을 것인가는 우리 몫이죠.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을 연구해보면, 착하고 최선을 다했던 아이들이 죽었어요. 택배 노동자는 괜찮은가? 자가 격리 장애인은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 주위에 가장 약한 누군가가 치르는 대가를, 우리는 목격했죠.

역설적으로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묻고 있어요. 인간 집단은 괜찮은가? 이대로 생존 가능한가? 재난 때마다 많은 이들이 던진 질문입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고난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묻잖아요. 우리가 답하지 않았던 것들의 위험성을, 이제는 알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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