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TALK]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거대 ‘현미경’ 방사광가속기

조선비즈
  • 황민규 기자
    입력 2020.04.04 09:00

    1조 투입해 4세대 방사광 가속기 추가 건립 결정
    단백질 결합구조 연구 활성화… 신약개발 기여

    정부가 기초연구와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방사광 가속기를 추가로 건립하기로 결정하면서 각 지자체의 유치경쟁이 본격화 됐다. 지난달 24일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대형가속기 장기로드맵 및 운영전략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에 설립되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립에는 약 1조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돼 과학 기초연구와 첨단산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전경. /포항시 제공
    방사광가속기는 쉽게 말해 일종의 거대한 현미경이다. 주로 대규모 과학 실험 등에 활용하기 위해 입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켜 방사광(放射光)을 방출하는 시설을 말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35개의 방사광가속기가 운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994년 최초로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준공한 바 있다. 2016년에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준공해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갖춘 국가가 됐다.

    방사광가속기의 원리는 빛의 속도로 가속한 전자에서 나오는 방사광으로 물질의 미세구조와 현상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 단백질이 세포막을 뚫고 침투하는 모습,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해되는 순간 등을 방사광가속기로 관측할 수 있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물이 만들어지는 화학식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원자 결합 과정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건립되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경우 3세대보다 최대 1억배가 밝고 파장은 0.1나노미터에 불과하다. 물질의 구조와 현상을 무려 1000조분의 1까지 분석할 수 있다. 이때문에 3세대와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아예 다른 종류로 보기도 한다.

    포스텍 관계자는 "3세대 가속기와 4세대 가속기의 경우 아예 건물의 구조 자체가 다르며 분석 가능한 물질의 범위, 활용도 크게 차이가 난다"며 "사실상 다른 종류의 시설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도입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물의 비밀’을 밝혀내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지난 2017년 포항공과대학교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세대 방사공가속기의 첫 실험그룹으로 선정된 앤더스 닐슨 교수팀이 물 분자구조 변화를 밝혀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에는 김경환 스톡홀름대학 박사가 제1저자로, 이재혁 포항가속기연구소 박사가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신약 개발 등 의학 분야에서의 성과다. 실제 미국에서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신종 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 등이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단백질 결합구조를 밝혀낸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미국은 지난 2008년, 일본은 2010년부터 이미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운영해왔다.

    특히 지금까지 해석된 구조가 5%에 불과한 단백질 연구분야에서 방사광가속기를 적극 활용하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세포, 질병구조를 연구할 수 있어 완전히 새로운 신약 개발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바이러스 단백질의 움직임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내부 모습. /포스텍 제공
    지금까지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던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가령 펨토초인 1000조분의 1단위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그동안 초고속 화학반응으로 인해 연구 분석이 불가능했던 식물의 광합성 현상 등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에너지, 반도체, 자동체 등 산업기술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이산화탄소 저감기술 개발과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용 촉매개발 등 신소재 개발에도 적극 활용될 수 있다.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도 도약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네덜란드의 ASML이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극자외선(EUV) 레이저 광원개발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진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포항에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있긴 하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다양한 연구에 활용되기 어려웠고 가용 용량도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4세대 가속기 추가 건립을 통해 첨단산업 연구개발(R&D) 지원과 국민경제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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