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단일 금융지주사 내 2개 이상의 계열사에 동시에 마이데이터(MyData·본인신용정보관리업)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인 우리은행과 우리카드가 동시에 마이데이터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지주의 마이데이터 사업은 카드사가 책임지는 분위기였는데 무한 경쟁이 가능해지면서 은행과 보험사 등도 마이데이터 사업 준비에 나서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달 중 발표할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산업 허가방향'에서 단일지주사 내 2개 이상의 사업자가 마이데이터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했다.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것이 금융위의 공식 입장이지만, 마이데이터 허가 기준을 마련하는 워킹그룹에 참여하는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중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산업 허가방향을 발표한다. 사진은 2018년 7월 열린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산업 간담회.

마이데이터는 은행 입출금 및 대출 내역, 신용카드 사용 내역, 통신료 납부 내역 등 개인이 보유한 다양한 개인 신용정보를 한곳에 모으거나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소비자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개인은 각 기업과 기관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정보를 한 곳에서 확인하고 이 정보를 업체에 제공해 맞춤형 서비스를 추천 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마이데이터 산업이 본격화되면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 맞춤형 금융서비스가 나오고 은행과 카드사, 보험사, 핀테크의 구분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마이데이터 사업은 핀테크사 위주로 허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카드수수료 인하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된 카드업계가 신사업 진출의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면서 카드사도 마이데이터 사업에 참여할 길이 열렸다. 이후 카드사가 마이데이터 사업에 사활을 걸면서 핀테크와 카드사의 대결구도로 굳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금융위가 카드사뿐 아니라 다른 금융사에도 마이데이터 허가를 내주기로 하고, 단일지주사 내에서 여러 사업자가 동시에 허가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무한경쟁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미 금융지주사 내 은행들은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을 위한 TF를 구성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달 중에 금융위의 공식 발표가 나면 본격적으로 사업 준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작년말 오픈뱅킹이 시작되면서 은행간 계좌정보를 공유하게 됐지만, 마이데이터는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서 고객의 모든 신용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오픈뱅킹만 하고 마이데이터는 포기하는 건 맛보기 음식만 먹고 본식은 먹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도입되면 금융소비자는 자신의 신용정보를 한 곳에서 편하게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금융지주도 카드사나 은행 한 곳에 마이데이터 사업을 몰아주는 교통정리를 하기보다는 일단은 계열사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마이데이터 산업이 본격화되면 어차피 기존 금융업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만큼 더 잘 하는 곳에 자원을 몰아주겠다는 계획이다. 한 금융지주사의 디지털 담당 임원은 "고지에 먼저 오르는 쪽에 지주 차원의 역량과 자원을 몰아준다는 방침"이라며 "지금은 은행과 카드사가 제각각 디지털 플랫폼을 키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마이데이터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쪽이 지주 차원의 디지털 플랫폼 사업에서도 주도권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마이데이터 사업을 놓고 대형 금융회사와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대형 금융회사에는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한 금융지주사에 하나의 사업자만 허가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마이데이터 산업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업종의 금융사가 참여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마이데이터는 활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특정 업권에 국한하기보다는 모든 금융회사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다"며 "업종이나 규모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결정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금융위는 마이페이먼트(My Payment·지급지시서비스업) 사업에 카드사가 진출하는 것을 허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마이페이먼트는 소비자가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지급지시업자’ 자격을 받은 결제업체가 은행에 '지급 지시'를 하고, 지시를 받은 은행은 소비자의 계좌에서 가맹점 계좌로 바로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는 일반 계좌이체 수수료와 동일하기 때문에 신용결제 방식보다 저비용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마이페이먼트는 카드사 위주의 신용결제 서비스를 뒤흔들 새로운 결제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당초 금융위는 핀테크업체 위주로 마이페이먼트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최근 카드사에도 마이페이먼트 사업을 허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마이데이터와 마이페이먼트 같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핀테크 업체에만 허가하지 않고 모든 금융권에 개방하기로 하면서 앞으로 1~2년 동안 미래 금융업의 패권을 누가 쥘 것인지를 놓고 무한 경쟁이 펼쳐지게 됐다"며 "10년 뒤, 20년 뒤에 2020년을 돌아보면 한국 금융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된 시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