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보면서 실무자는 아무도 없구나 생각했어요."

지난달 31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교사는 동료 교사 30여명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 발표한 뒤 걱정하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할지 감이 안 온다" "지역마다 교사들 지원 방침이 다르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모른다" "계획 중이라는 답변 뿐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을 결정했지만, 갈 길이 멀다. 방학동안 준비했던 수업을 온라인 수업으로 바꾸는 문제부터 출석 평가 등 정해진 것이 없다. 현장의 교사들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개학이 불가피한 점은 이해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발표하기 전 현장과의 대화가 너무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1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서강고등학교에서 오는 9일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하는 초중고 온라인 개학에 대비해 교사가 온라인 시범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저학년 개념 사라졌는데… "보충수업 결정, 쉬운 게 아냐"
초등학교 교사들은 '개학 시기'를 나눈 방식부터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4~6학년은 오는 16일, 나머지 1~3학년은 사흘 뒤인 20일 개학하기로 했다. 고학년과 저학년으로 나눠 개학시기를 조정한 것이다.

그러나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학년과 저학년 개념은 사라졌다. 현재 초등학교는 △1~2학년 1744시간 △3~4학년 1972시간 △5~6학년 2176시간 등 두 학년씩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교 3학년은 2학년보다 최소 146시간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데 개학 시기가 1~2학년과 묶이면서 보충 수업 등이 불가피해졌다.

교사들은 현실적으로 보충 수업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파구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학기 초에 1년 교육과정이 짜여지고,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따라 방과후 수업 일정도 정해진다"며 "부족한 수업 시간을 나중에 교사 재량에 따라 보충해야 하는데 학생과 학부모 개개인 상황 등을 고려해 이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교사 김모(37)씨는 "아직 학교에 공문조차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며 "재택 근무를 하는 교사들도 많아서 내용 공유도 잘 안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온라인 강의 수업이 진행될 경우 ‘도시와 지역’, ‘학교와 학교 간’의 수업의 질 차이가 굉장히 클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원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쌍방향 원격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강의 가이드라인 없어… "출석 확인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
교사들은 특히 온라인 강의와 관련해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충남 아산시 초등학교 교사 C씨는 "교육부에서 e학습터, EBS 등 온라인 강의 플랫폼 선택지는 줬지만, 이를 어떻게 운용할지는 전적으로 학교 책임으로 미뤄뒀다"며 "당장 출석 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했다.

온라인 강의 사이트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일부 사이트는 학생이 로그인 후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사실상 출석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업 결손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중3·고3 담임들은 학생들의 상급학교 입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1학기 중간고사는 사실상 치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말고사가 내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송파구의 한 중학교 교사 D씨는 "1학기 중간·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 성적 등 3개 시험의 평균을 갖고 평점을 냈는데 이번에는 2번 밖에 시험을 못 본다"며 "안 그래도 민감한 시험출제 등이 더 골치 아파졌다"고 했다.

동대문구 고등학교 교사 E씨도 "시험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또 입시 기간 조정에 따라 수업시수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등 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에서 1일 오전 교사가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실시간 모의 화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 장비는 신경쓰는데… "주변 동료 교사들 사비로 웹캠 등 구매"
온라인 수업과 관련, 학생들의 기기 부족 문제도 있지만 교사들 역시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 노원구 고등학교 교사 F씨는 "지난 27일 교육부에서 학생들들의 장비 소지 여부를 조사하라는 공문이 와서 어제까지 학생들에게 조사를 했지만, 교사들은 어떤 상황인지 아직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며 "당장 우리 학교도 장비가 아무것도 없는데 개학까지 제대로 준비가 될지 걱정이다"라고 했다.

이런 문제를 교육당국이 각 학교에만 미루고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성북구 초등교사 G씨는 "학교 컴퓨터 중에는 학생들과 쌍방향 소통이 어려운 사양의 것도 있다"며 "동료 교사들은 사비로 마이크, 웹캠 등 장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왜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은 신경을 안 쓰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교육부는 이날 학교 현장의 원격수업용 상용사이트 접근 허용, 교실 내 WiFi(공유기) 활용 등에 대한 교육청 보안 정책을 점검하고 각 교육청과 함께 교사의 원격 수업시 필요한 기자재 등이 즉각 지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사들은 말보다 정보 공유라도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어제 ‘교사들이 재택근무를 해서 원격 수업 조사 관련 공문이 늦었다'는 말 들었어요. 지금껏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소통’만 이야기하는 것은 어이가 없습니다. 일단 벌어진 일이니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발 모르면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교사 F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