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경제관료 ⑧

끝없는 패싱 논란에 뿔난 기재부… "靑·政 리더십에 불만족"

끝없는 패싱 논란에 뿔난 기재부… "靑·政 리더십에 불만족"

입력 2020.03.28 06:00

기재부 “靑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제 역할 못한다” 63%
“경제수장, 정치인 출신이 낫다” 51%· “경제관료 선호” 43%

우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로 코스피 2000이 무너졌던 지난달 28일, 기획재정부 사무관급 이하 공무원 64명은 전국 곳곳의 마스크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32명씩 격일로 우체국, 농협 하나로마트, 약국 등을 찾아가 마스크 유통 현황을 점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기재부 공무원이 마스크 현장 점검을 나서게 된 계기는 지난달 2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문재인 대통령 주례 보고였다. 기재부가 마련한 마스크 수급 대책이 현장 목소리와 동떨어졌다고 질책한 문 대통령은  “마스크가 마트에 있는지 공무원이 직접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주례 보고 후 기재부는 국장급이 책임지는 마스크 TF를 구성하고, 각 국실에서 현장 점검 요원을 차출 받았다. 각 과의 막내급 사무관이나 주무관들이 차출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이들은 이달 초까지 백팩을 매고 전국 마스크 현장을 돌아다녔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마스크 특공대’로 투입된 것이다.

마스크TF의 현장 점검요원 차출 명령 이후 기재부 인트라넷의 내부 게시판에는 불만이 담긴 글이 다수 올라왔다. “기재부에 와서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기재부는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로 거시경제 정책과 외환정책 등 글로벌 시장 대응이 주요 업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인데, 우리는 약국에 가서 ‘마스크 얼마나 들어왔어요’라고 묻고 다녀야 한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보건용(KF) 마스크 생산, 품질 관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이고, 필터 등 원자재 수급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다. 마스크 업무와 상관없는 기재부가 대통령 한마디에 마스크 전선에 뛰어들면서, 본연의 업무인 위기 대응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 기재부 과장은 “평소에 마스크 관련 업무를 전혀 안 해본 사람들을 현장에 보내면서 뭘 기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이 시국에 공무원들에게 KF 마스크 대신 면 마스크를 끼라고 압박을 주는 것도 모자라 전국을 돌아다니게 하다가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靑 정책실장·경제부총리 리더십,  ‘불만족’이 ‘만족’ 두 배 이상

이달까지 이어졌던 마스크 특공대 소란은 ‘나라 경제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기재부 공무원들이 현재의 경제정책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조선비즈가 지난 1월 29일부터 2월 7일까지 7개 경제부처 과장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기재부 소속 과장은 총 38명이 참여했다. 단일부처로서는 가장 많은 과장이 설문에 응답했다. 

기재부 소속 응답자 설문을 따로 분석한 결과, 기재부 과장의 63%(24명)가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각 부처 장관 등 경제팀이 직위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등이 직위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10명)에 불과했다. 4명(10%)은 응답을 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등 정책 리더십에 불만을 나타낸 응답이 이번 설문조사 전체 응답률(50.5%)에 비해 10%P 이상 높았다. 만족감을 나타낸 응답은 전체 응답률(49.5%)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같은 흐름은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재부가 정책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실망감으로 풀이된다. 기재부 과장들은 ‘현재 경제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청와대를 지목했다. 청와대가 정책을 주도한다는 응답은 74%(28명)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경제부처(기재부)가 정책을 주도한다는 응답은 3명(8%)에 불과했다.

일상적인 정책 결정 프로세스에서 청와대뿐만 아니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김이 커진 것도 경제정책 엘리트 대접을 받던 기재부 관료들에게는 마뜩치 않은 점이다. 기재부 과장 71%(27명)가 ‘당정협의나 청와대 조율 과정에서 부처 의견이 바뀐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부처 의견대로 결정되는 편이다’라고 응답한 과장은 18%(7명)에 불과했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책 리더십에 대해 기재부 과장의 불만이 높은 것은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로 정책을 조정하는 역량이 과거와 비교해 취약해진 상황에 대한 불만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정치인 출신 경제수장 선호도, 다른 경제부처보다 높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제사령탑 역할을 하는 경제부총리들이 지속적으로  ‘패싱(passing·건너뛰기)’ 논란에 시달렸다는 점도 정책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쌓인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이었던 김동연 전 부총리는 법인세 인상, 종부세 강화 증세 문제에서 정치권 출신 장관, 여당 정치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수습하기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 도입 등 궂은일을 자처했지만, 고용대란으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김 부총리가 주도했던 혁신성장 이슈는 규제완화에 부정적인 집권 여당 주류의 정서적 거부감 탓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속도조절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등으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아야 했다.

홍남기 부총리 취임 후 청와대, 더불어민주당과의 마찰은 사라졌지만, 기재부의 존재감도 함께 사라졌다.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심의 과정에서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민주당 측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홍 부총리는 집권 여당 대표로부터 해임 건의 협박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기재부는 초유의 ‘추경 증액’을 피했지만, 2차 추경이라는 또 다른 난관에 마주했다.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전국민 대상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고, 이를 위한 2차 추경을 해야 한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기재부 관료들과 홍 부총리는 이런 주장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 후 언론 브리핑에서 “2차 추경에 대해서는 앞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같이 논의될 것“이라면서 입장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끊이지 않는 ‘경제부총리 패싱 현상’은 엘리트 관료인 기재부 공무원들 사이에 ‘장관은 차라리 정치인이 낫다’는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현재 정책 환경을 감안할 때 경제수장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기재부 과장 47%(18명)가 ‘정치인’을 지목했다. 경제관료 출신을 지목한 응답은 39%(15명)에 불과했다. 기업인을 지목한 응답은 2명(5%)이었다.

이는 설문참여자 전체 응답과 상당히 대비된다. 설문 전체로는 58.9%(56명)가 경제관료 출신을 경제수장 적임자로 지목했고, 정치인 출신은 34.7%(33명)에 그쳤다. 기업인 출신은 지목한 응답은 6.3%(6명)이었다.
 
한 전직 경제부처 관료는 “엘리트 관료로서 자존감이 강한 기재부 관료들이 정치인 출신 경제수장을 선호한다는 점은 뜻밖의 결과”라면서 “경제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정치인 출신이 장관으로 오면 시행착오가 적을 것이라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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