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살리자고 목숨 걸 수야"...트럼프 '부활절 정상화' 선언에 쏟아진 비난

조선비즈
  • 유진우 기자
    입력 2020.03.26 13:53 | 수정 2020.03.26 14:00

    우한 코로나(코로나19)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와중에 고작 보름 정도 남은 부활절까지 ‘경제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정계, 학계, 의료계를 망라해 ‘불이 번지는데 불 끌 생각은 않고 돈 벌 생각부터 한다’는 거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속되는 주가 폭락과 대량 실업의 발생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과 과학적 근거 없는 한낱 희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통령의 독단 때문에 우한 코로나 확산 위협 속에서도 일터에 나가야 할 처지에 놓인 근로자들은 ‘#월스트리트를 위해 죽지 않겠다(#NotDying4WallStreet)’는 문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제 2의 ‘월스트리트 시위(Occupy Wall Street·OWS)’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5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본인 트위터에 뉴욕시 병원 의료진이 밀려드는 우한 코로나 환자로 고생한다는 취지의 뉴요커지(紙) 기사를 공유했다. 오바마는 "미국 의료 영웅들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며 "광범위한 검사를 진행할 수 있을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썼다.

    25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공유한 ‘뉴욕시 병원 의료진이 밀려드는 우한 코로나 환자로 고생한다’는 내용의 뉴요커지 기사. /트위터
    바로 전날 "부활절(4월 12일)까지 이 나라를 다시 열고 싶다"며 "부활절에 전국에 (신도로) 가득 찬 교회를 보길 원한다"고 말한 트럼프를 넌지시 비난한 셈.

    오바마는 바로 다음 트윗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범 사례로 캐나다를 꼽은 워싱턴포스트(WP) 칼럼을 공유하며 "이번 기회에 공동체 정신을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끔 하자"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 기독교계 표심(票心)을 노려 부활절을 재개 시점으로 정한 것을 겨냥해 ‘따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례를 제시한 것.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난 후 별다른 정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선정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성’ 1위에 꼽힐 정도로 파급력이 큰 미국 범야권 세력의 거두(巨頭)다.

    오바마 재임 시절 두 차례 부통령을 지낸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조 바이든도 이날 자택 지하실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연 원격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 모두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려면 먼저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현명한 방법을 택해야지 임의적·상징적 시간표에 맞춰선 안된다"고 했다.

    코로나 대응팀 브리핑에서 '왜 하필 부활절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저 (부활절이) 아름다운 날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위대한 날이다"라고 답한 트럼프를 정조준한 말이었다.

    미국 신종 코로나 사망자 수가 9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 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주당인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제 정상으로 돌아갈지는 과학·의료적 조언에 기반해 결정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맞길 바라지만, 우리가 확보한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주지사는 연방법이 정한 각 주의 행정수반이다. 자신이 맡은 구역에 대해선 치안과 사회 안정을 이유로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뉴저지 외에도 뉴욕주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처럼 미국 주요 주(州) 주지사들이 모두 민주당 소속임을 감안하면, 보름 내로 '사회적 거리 두기', '재택근무 권고' 같은 연방정부 지침을 완화해 경제활동을 제 자리로 돌려놓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이 생각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미국인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반(反) 트럼프’ 지지자들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전문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월스트리트를 위해 죽지 않겠다’는 태그가 늘고 있다. 국민 목숨보다 경제·주가만 생각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강한 저항을 표출하는 것.

    실제로 트럼프가 돈과 얽힌 경기 침체 문제로 안절부절하는 사이, 미국인들은 일상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뉴욕주를 중심으로 인구 밀집 지역에 우한 코로나가 빠르게 퍼지면서 젊은이부터 고령자까지 유언장을 작성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보건 전문가로 꼽히는 톰 잉글즈비 미 존스홉킨스대학 보건안전센터장은 이날 트위터에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를 끝내자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한다"며 "코로나가 더 널리, 더 빨리, 더 지독하게 퍼져 한 해에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썼다.

    경제 살리기에만 집착하다가는 자칫 수백만명에 달하는 막대한 인명 손실이라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측마저 나온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트럼프는 경제에 대한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칼럼에서 "조급하게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폐기하거나 완화하면 경제와 보건 양쪽에 모두 재앙이 될 것"이라며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온다. 신규 확진자가 더 늘어나지 않는 때가 바로 그 때"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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