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반대한 안건 모조리 통과

조선비즈
  • 이경민 기자
    입력 2020.03.23 15:59 | 수정 2020.03.23 20:03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선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열린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모두 통과되면서 반대안건 부결률 ‘0%’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086790)BNK금융지주(138930)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은 통하지 않았다.

    23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월 말부터 이달 26일까지 예정된 정기 주총 안건 중 36건(16개사)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중에서 지난 20일까지 열린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26건(12개사) 모두가 원안대로 통과됐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국민연금 반대 안건의 부결률, 즉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이 영향을 발휘한 경우가 ‘0%’에 그친 것이다. 나머지 10건의 통과 여부는 26일까지 예정된 주총에서 결정된다.

    조선DB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반대한 안건이 가결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일 열린 하나금융지주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사외이사 선임 7건과 감사위원 선임 4건에 반대표를 행사했으나 해당 안건은 모두 통과됐다. 같은 날 열린 BNK금융지주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은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선임 총 2건에 반대 의견을 냈으나 안건이 가결됐다. 국민연금은 하나금융지주와 BNK금융지주의 지분을 각각 9.94%, 11.1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648건 중 11건만이 부결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연금이 반대해 부결된 11건 중 4건은 의결정속수 미달로 부결됐다. 부결된 나머지 7건은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003490)대표이사 연임안, GS리테일(007070)감사위원 선임안, 제이브이엠(054950)의 사외이사 선임안 등이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통하지 않은 것은 지분율이 압도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아세아(002030)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안건을 반대했지만 최대주주 지분(43.07%)이 워낙 많아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안건이 통과된 한미약품(128940), 현대건설(000720), 농심(004370)도 최대주주와의 지분율 차이가 컸다.

    현재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기업은 만도로 이 기업의 최대주주(30.26%) 지분율의 절반 수준인 14.34%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는 기업은 총 7개로 지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그래픽=이민경
    지난해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부각된 사례는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에 반대한 것이었다. 당시 대한항공 최대주주 지분율은 33.35%로 2대주주인 국민연금(11.56%)보다 약 세 배 많았다. 그러나 20%가량의 외국인과 소액주주가 반대표를 던지면서 국민연금은 캐스팅보트로 떠올랐고, 반대 의견을 내면서 안건이 부결됐다. 찬반이 팽팽한 안건에서 최대주주보다는 지분이 낮지만 개인이나 일반 기관보다 지분이 높은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부각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안건으로는 한진칼(180640)의 경영권 분쟁 건이 꼽힌다. 27일 한진칼 정기 주총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 우호지분은 37.1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 3자 연합 지분은 31.98%로 5.16%포인트 차이가 난다. 2.9%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한진가 경영권 분쟁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 실장은 "찬반 의견이 첨예하거나 최대주주 이외의 주주가 많이 관여하는 경영권 분쟁과 같은 안건에서는 국민연금이 낮은 지분율을 가져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실장은 매년 국민연금의 반대 안건 부결률이 낮은 상황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도 연기금의 반대 안건 부결률이 높지 않은 편"이라며 "안건의 부결 여부를 떠나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특정 기업의 안건에 반대하면 추후에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행사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기업입장에서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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