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위기에 드러난 정부의 실력

입력 2020.03.21 06:00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됐을 때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IMF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보다 10배나 많았다.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산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대기업의 부채비율도 낮았다. 그래서 한국이 제2의 IMF 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증시와 환율이 요동칠 수 있지만, 곧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MB(이명박) 정부는 최악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비관론에 귀를 기울였다.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은 편이지만, 위기 국면에서 경제 심리가 악화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는 ‘혹시나’ 하는 우려를 증폭시켰다.

MB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 통화스와프를 체결, 환율과 증시를 안정시키고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불신을 해소했다. ‘비상경제 정부’를 선언하고 28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 추경을 편성했다. 법인세를 인하해 기업 부담을 덜고 투자를 유도했다.

일각에선 MB 정부가 위기를 과장하고 과잉 대응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MB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충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09년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7개국(G7)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한국은 플러스 성장을 했다. 당시 정부의 대응이 실제 위기에 비해 과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제2의 IMF 사태 같은 파국을 맞지 않고 위기를 넘겼다.

중국발 코로나19가 한국에 퍼지기 시작했을 때 전문가들은 방역의 기본 원칙은 ‘감염원 차단’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중국발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지 않았다. 2주간 격리 조치도 없었다.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면서 마스크 수출을 막지 않았고, 유사시 공급능력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대신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 "집단 행사를 취소 연기할 필요 없다"는 말로 혼란을 키웠다.

예상과 달리 확진자가 늘어나자 국립의료원을 찾은 문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는 선제적 조치들이 조금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발 빠르게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국민들은 정부가 곧 중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확진자가 8600명을 웃돌고 사망자도 100명이 넘는다. 식당과 쇼핑몰엔 발길이 끊겼다. 세계 170여개국이 한국발 여행자의 입국을 막거나 제한하면서 항공사와 여행사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자동차 전자 등 대기업 공장도 확진자가 나오고 부품 공급이 끊기며 문을 닫는 날이 늘어났다. ‘마스크 줄서기’는 때아닌 배급경제 논란을 불렀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정부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과할 정도로’ 대처했다면 피해가 이렇게 크진 않았을 것이다. 대만과 싱가포르가 코로나 초기부터 중국발 입국자를 전면 차단해 큰 효과를 거둔 것과 대비된다.

코로나의 세계 확산에 따른 초대형 경제 위기도 이미 한 달 전에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고, 미국 증시가 곤두박질친 후에야 정부는 비상경제회의를 구성했다.

코로나 경제 위기는 초대형 악재가 겹친 퍼펙트스톰 수준이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흔들리며 실물과 금융의 복합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체결로 금융시장의 공포심리는 진정됐지만, 본격적인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특히 한국경제는 코로나 이전부터 급격한 노동비용 상승으로 경기가 침체하는 등 기저질환을 앓아왔다.

기저질환에 코로나까지 감염돼 잔뜩 움츠린 우리 경제가 복원력을 되찾고 다시 성장하려면 정부가 경제 정책을 지금보다 시장 친화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각종 규제를 혁신해 기업이 활기를 되찾고 투자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실력은 위기가 닥쳤을 때 드러난다. 코로나 위기 초기에 정부는 미숙한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 코로나가 촉발한 초대형 경제 위기에는 부디 ‘과할 정도로’ 대처해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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