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사이언스 카페] 170년 만에 다시 주목받는 어느 추리작가의 죽음

입력 2020.03.19 05:10

추리소설 창시한 에드거 앨런 포
우울증에 의한 자살 유력했지만 컴퓨터로 글 421편 분석해보니
심각한 환자의 단어 특징 없어… 광견병·뇌염 등 여러 死因 거론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여섯 남자의 억센 팔이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벽은 모조리 부서져 떨어졌다. 어느덧 몹시 썩고 피가 엉겨 붙은 시체가 모든 사람의 눈앞에 곧바로 서 있었다. 시체의 머리 위에는 검은 고양이가 새빨간 주둥이를 딱 벌린 채 불같은 노여움의 외눈을 번뜩이면서 앉아 있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문학평론가인 에드거 앨런 포는 1843년 발표한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이 술에 입을 대면서 이성을 잃고 미쳐가는 과정을 1인칭 화법으로 묘사했다. 포는 미국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1841년 작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 나오는 오귀스트 뒤팽은 소설에 등장한 최초의 탐정이다. 과학소설 장르의 형성과 대폭발이론 같은 우주론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정작 포 자신의 죽음은 어떤 탐정도, 과학자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는 1849년 10월 7일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서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부검을 하지 않았고 생전 치료 기록마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170년 만에 포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하나 풀렸다. 소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경찰들을 지하실 벽으로 이끌었다면, 이번에는 포가 남긴 글들이 단서가 됐다. 영국 랭커스터대 심리학과의 라이언 보이드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정서 장애 저널'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포가 남긴 글 421편을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이론이었던 자살설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포의 심리 상태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어둡고 불안정했지만 자살을 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언어 패턴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보이드 교수는 포의 편지 309편과 시 49편, 단편소설 63편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사람들이 쓰는 언어 습관과 비교했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은 5가지 정도 특징을 보인다. 먼저 '나' 자신을 일컫는 1인칭 단수 대명사를 쓰는 횟수가 늘어나고,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도 자주 쓴다. '생각하다' '이해하다' '알다'같이 인지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 사용도 늘어난다. 반면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나 '우리' 같은 복수 대명사는 점점 줄어든다. 할리우드 여배우 메릴린 먼로의 자서전도 같은 분석에서 자살에 이르는 우울증 환자들의 언어 사용 패턴들이 강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연구진은 "포가 남긴 글에서는 자살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만큼 특징적이고 일관된 우울증의 패턴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포의 글이 우울증과 완전히 거리가 멀었던 것은 아니다. 죽음으로 이끌 만큼 일관되지는 않았지만 평생 세 차례 우울증이 심해진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글에서 드러났다. 1843년과 1845년, 그리고 죽던 해인 1849년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앞서 두 해는 포가 각각 단편소설 '황금충'과 시 '도래까마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기이다. 사실 포는 대중적 인기에도 수입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포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실속이 없다고 자주 분통을 터뜨렸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실제 원인은 무엇일까. 사후 그의 사인을 두고 광견병·매독·뇌염 등 다양한 병명이 거론됐다. 일부는 그가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인사불성인 상태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부정선거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당시 갱들은 술에 취한 사람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억지로 투표를 시키다가 저항하면 죽도록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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