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억원 넘는 아파트의 올해 공시가격을 지난해보다 21% 올렸다. 작년 서울 아파트 값은 1% 남짓 올랐다. 그런데도 정부는 9억원 이상 주택 공시가격을 시세의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에 맞추기 위해 대폭 인상을 강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9억원 이상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올해 보유세가 최소 20% 이상 오른다. 서울에서 이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절반이 넘어 많은 중산층이 대폭 증세 부담을 지게 됐다. 개별 아파트·빌라 등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은 19일 0시부터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공시가격 13년來 최대 폭 인상
국토교통부는 전국 아파트·연립주택·빌라 등 공동주택 1383만 가구의 올해 공시가격을 지난해보다 5.99% 올리고 소유자 열람 및 의견 청취를 시작한다고 18일 밝혔다. 올해 인상 폭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22.9%) 이후 최대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 건강보험료 등이 덩달아 오른다.
보통 공시가격은 시세 변동을 근거로 산정하는데,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1.11%였지만 공시가격은 14.75%나 올랐다. 최근 3년간 인상 폭은 44.16%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 연말 '공시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시세 9억원 넘는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을 시세의 70% 이상으로 단번에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그 결과,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시세 9억원 미만은 1.97% 오른 반면, 9억원 이상은 21.15% 급등했다. 전국 9억원 이상 공동주택 66만3520가구 중 51만7652가구(78%)가 서울에 있다. 서울 내에서도 고가 주택 비율이 높은 강남(25%)·서초(22%)·송파(18%)구의 공시가격이 많이 올랐다.
◇서울 10가구 중 1가구가 종부세 대상
공시가격 인상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34평형)는 작년 695만3000원이던 보유세가 올해 1017만7000원으로 46.3% 늘어난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는 공시가격이 8억6400만원에서 10억8400만원으로 올라 종부세 대상이 됐다. 종부세가 더해지면서 보유세는 작년 245만8000원에서 올해 354만2000원으로 110만원가량 늘게 된다. 종부세 대상 주택 수(數)도 작년 21만8124가구에서 올해 30만9361가구로 9만여 가구 늘었다. 서울은 10가구 중 1가구꼴로 종부세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공시가격 과속 인상이 우한 코로나로 침체된 부동산 시장 등 실물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 대출 규제 강화 등 악재가 많은 상황에서 보유세까지 대폭 늘어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방향은 옳다고 해도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세금을 이렇게 급격히 올리는 것은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가 주택 기준도 논란
정부가 고가 주택 기준으로 삼는 '시세 9억원'에 대한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 기준은 2008년 만든 것이다. 그동안 가격 상승으로 서울 아파트의 절반가량이 9억원 이상이 됐다. KB국민은행이 서울 아파트 163만 가구 중 대표성 있는 표본 6700가구 시세를 조사한 결과, 중간 가격(가격별 순위의 중간값)이 9억4798만원이었다. 작년 시세 9억원, 공시가격 6억원이던 아파트는 올해 공시가격 상승에 따라 보유세가 24% 정도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일부 주택에만 공시가격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증세와 같은 효과가 있는 정책을 국회 동의 없이 정부 재량만으로 결정하는 것이 행정권 남용이란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분석학회장을 지낸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숫자가 적고 많음을 떠나, 일부 고가 주택만 대상으로 규제나 세금을 늘리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을뿐더러 차(次)순위 주택으로의 풍선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