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쇼크가 한국 증시를 역대 최악의 한 주로 몰아넣었다. 1조원이 넘는 역대급 외국인 매물 폭탄이 이틀이나 쏟아지면서 이번 주에만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이 223조원 증발했다. 주간 단위의 시가총액 감소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13일 코스피 지수는 아침부터 크게 요동쳤다. 이날 외국인은 작심한 듯 1조1650억원어치 대량 매물을 쏟아내면서 공포심을 자극했다. 외국인은 지난 9일 사상 최대 순매도(1조3125억원)에 이어 한 주 동안에만 두 차례나 1조원 넘게 한국 주식을 팔아치운 것이다. 코스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는 장중에 8% 빠지면서 4만6850원까지 내려앉는 등 이날 오전에만 코스피 전체 2300여개 종목 중 2200여개 종목이 무더기로 하락했다.
급기야 오전 10시 43분에는 코스피지수가 8% 넘게 하락하면서 1690선이 무너졌다. 거래소는 프로그램 매매 거래를 5분간 중지시키는 '사이드카'에 이어 주식 거래를 20분간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도 발동했다. 코스피 서킷브레이커는 미국의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12일 이후 처음이다. 앞서 코스닥 지수도 개장과 동시에 사이드카·서킷브레이커가 세트로 발동됐지만 추락을 막진 못했다. 코스닥지수는 장중 13%대 폭락세를 보이면서 487선까지 주저앉았다. 2013년 12월 20일(483.84) 이후 최저치다.
◇연기금 5700억원 실탄으로 낙폭 축소
주가 급락으로 한국 증시가 시퍼렇게 물든(파란색은 주가 하락 표시) 이날 오전 10시 30분,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팀을 청와대로 긴급 소집했다. 문 대통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에게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비상 경제 시국"이라면서 "전례 없는 대책을 만들어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회의 소집이 있은 지 두어 시간 뒤인 오후 1시 30분, 금융시장 그래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1225원 위로 치솟아 장중 기준으로 4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던 원·달러 환율은 10원 가까이 상승 폭을 줄였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당국의 구두 개입뿐만 아니라 실제 달러를 풀어 환율을 안정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중 한때 8.4%까지 폭락했던 코스피지수도 이 시점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오후 2시 넘어서는 낙폭을 -1.4%까지 줄였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5700억원 넘게 사들이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이날 연기금이 외국인 투매 물량을 받아내느라 소진한 실탄은 지난 2008년 10월 27일(5397억원) 이후 최대였다. 코스피 시장에선 주가 급락을 투자 기회로 판단한 개인들의 투자금이 4500억원 넘게 유입됐다. 우군들이 등장한 덕분에 큰 폭으로 하락했던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3.43% 하락한 1771.44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오후 들어 개인들의 투매가 진정되면서 7% 하락한 524에 장을 마쳤다. 한화운용 유비 팀장은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일본·호주 등 각국 부양책 발표와 코로나 19 백신 기대감 등이 전해지면서 낙폭이 줄었다"고 말했다.
◇증권가 "코스피 1100 갈 수도"
이날 패닉에 빠졌던 국내 증시는 대통령의 긴급 소집 회의 이후 연기금이 등판하면서 다소 진정됐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전염병 사태가 금융 위기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해야 한다는 비관적인 의견이 속속 나오고 있다. SK증권은 13일 "일반적으로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 주가는 -50% 수준까지 급락한다"며 "올해 코스피 최고점이 2267이었는데 이를 적용하면 1100 수준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하나금융투자는 우한 코로나 감염 공포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번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코스피 바닥을 1600선으로 전망했다.
☞공매도(空賣渡)
말 그대로 '없는(空) 주식을 판다'는 뜻이다.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는 투자 기법이다. 주로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활용하는데, 하락장에서 대량의 매도 물량을 쏟아내 하락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