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재택근무로 점심 장사 사라져… 식당·술집 매출 반 토막
미용실·네일숍도 대면 접촉 우려로 매출 80% 급감
"고깃집 하루 매출 7만원, 아르바이트생은 다 돌려보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자 자영업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로제, 경기둔화로 힘든 나날을 보낸 자영업자들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를 맞닥뜨리고 좌절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길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져 월세를 내기도 버거운 상황이지만, 혹시나 단골이 헛걸음할까 봐 식당 문을 닫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은 코로나 사태 전에는 주말에 평균 8명 정도가 일할 만큼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현재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전부 나오지 말라고 하고 부인과 둘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이곳에는 손님이 적으면 2팀, 많아야 6팀 정도 오고 있다.
전국에 치킨·커피·한식 등 1100개 회원사를 두고 있는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는 "회원사 매출이 30~50%가량 줄었다"며 "사람이 많이 몰린 지역에 있는 식당, 기존에 배달 영업을 하지 않은 자영업자일수록 타격이 크다"라고 말했다.
◇ "언제까지 버틸지 수 있을지 한숨만"… 식당 매출 80% 떨어지고 알바는 줄여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에서 좌석 28개 규모의 한식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코로나19 사태 후 10여 년간 운영해 온 식당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하루 350만원 낸 매출이 현재 40만~50만원으로 8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그동안 직원 8명을 뒀지만, 현재 절반은 휴가를 보냈다. 김씨는 "임대료를 어느 정도 감면해준다고 해도, 중구는 기본적으로 임대료가 높아 손님이 없으면 감당하기가 어렵다"며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에서도 모임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면서 회식은 물론 식사 후 삼삼오오 즐기던 커피 시간도 사라졌다.
서울 신촌에서 식사와 술을 함께 판매하는 한 식당 관계자는 "원래 주말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들어올 정도였는데, 지금은 신촌 길거리에 사람 자체가 없다"며 "장사가 안돼 7년 넘게 함께 일하던 주방 이모님도 집에 보냈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모씨도 "점심시간이 장사 대목인데, 재택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많아 점심 장사가 뚝 끊겼다"고 말했다.
◇ 노래방은 물론 대면 접촉 많은 미용실·네일숍도 비상
노래방 이용객도 급감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마이크로 침이 튈 수 있어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특히 최근 경상남도 창녕군 동전노래방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이용자는 더욱 줄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24시간 동전노래방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매출이 50~60% 정도 줄었다"며 "평소에 인근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했는데, 재택근무가 늘면서 직장인 손님 비중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고객과 대면 접촉이 많은 미용실, 손톱을 다듬는 네일숍 등 미용업종도 울상이다.
서울 마포 홍익대 인근의 A 미용실은 코로나 사태 후 평소보다 매출이 80% 정도 감소했다. 보통 주말에는 헤어디자이너 1명당 하루 평균 손님이 10명 정도였지만, 현재는 손님이 2~3명 정도다. 평일 신규 예약 건수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A 미용실 원장은 "대학들이 개강을 맞는 3월은 업계 성수기지만 올해는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월세와 인건비 부담도 커 조만간 인력을 일부 줄일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네일·왁싱숍도 매출이 평소보다 80~90% 줄었다. 네일·왁싱숍을 운영하는 안모씨는 "서울에서 확진자가 급증한 후 단골 위주로 예약을 받고 있다"며 "대면 접촉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신규 예약을 받기도 꺼려진다"고 말했다.
편의점의 경우 코로나 사태 후 손님이 늘어난 점포도 있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곳 인근 점포와 공항, 버스터미널 편의점들은 매출이 급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하루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는데, 최근 구로구 콜센터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후에는 이마저도 반 토막 났다"며 "담배, 라면, 햇반 등 생필품 이외에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편의점은 콜센터 2~3분 거리에 있다. 김씨는 "그나마 마스크를 찾는 손님이 오는데, 정부가 약국 등 공적판매처의 마스크 물량을 늘린 후 마스크 입고가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 소상공인 "정부 지원 체감 어려워"… "생계형 자영업자에 보조금 지원 필요해"
정부가 초저금리 대출 및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착한 임대인 운동 등을 통해 소상공인 지원에 나섰지만, 자영업자들은 이를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이달 4일부터 9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108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 응답자의 54.1%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20.4%였고,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25.4%였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교적 짧게 끝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달리 코로나는 내수 경기와 무관하게 언제 끝날지 몰라 후유증이 더 클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 자영업자 중에서도 생계형 자영업자를 선별해 기존에 시행하지 않은 보조금 같은 형태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 생계형 자영업자를 분류하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