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사→기업공개→투자금 확보' 목적 논의했다 접어
"무기한 연기"…당분간 수면 밑으로 잠복
대규모 흑자 가능성 낮고, 자체 자금 투입 낫다 판단

LG화학(051910)이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만드는 전지사업본부를 분사하려던 논의를 사실상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무기한 연기’다. 당분간 분사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LG화학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내 일각에서 검토하던 전지사업본부 분사 검토를 중단했다. 한 LG 관계자는 "분사 검토를 한 건 맞지만, 구체적인 안건으로 상정된 것은 아니었고 그나마 최근 무기한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현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전지사업부 분사 검토는 지난해 말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전지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사업 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고 전지사업본부 분사는 그 방안 중 하나"라며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설비확장 경쟁 속 ‘기업공개 카드’ 설득력 잃어

배터리 업계는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예견된 수순’이라는 반응이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같이 성장이 빠르지만,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고 다른 업체들과 설비 확장 경쟁이 치열한 사업의 경우 확실한 캐시카우 없이는 경쟁에 밀리기 십상"이라며 "테슬라 같은 기업이 아닌 이상 이익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해서 자금을 끌어오기도 쉽잖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민경

LG화학이 분사를 검토한 이유는 투자자금 확보 때문이었다. 전지사업본부를 분사한 뒤 IPO를 통해 설비 투자 자금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지사업본부의 분할과 IPO가 현실화될 경우 자금 차입 여건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업계는 현재 대규모 설비 확장 경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한 경쟁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생산설비 투자가 최우선 과제로 자금 여력을 모두 여기에 투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이 몇 년 뒤 크게 성장할 텐데, ‘규모의 경제’를 이뤄 생산 비용을 낮추는 업체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던 반도체 업계의 ‘치킨 게임’과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096770)이 벌이고 있는 인력 빼내기와 그에 따른 기술 유출 소송은 SK이노베이션이 양산 기술과 공정 설계 분야에서 인력과 기술을 빼갔다는 게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급격히 설비를 증설해야 하는 SK이노베이션과, 이를 수수방관 할 수 없는 LG화학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한 셈이다.

하지만 내부 논의 결과 IPO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며 분할 논의는 중단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전지사업이 흑자로 전환하기까지 다소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경우 IPO 선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LG화학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신설법인 지분구조 문제도 걸림돌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익을 낼 시기를 특정(特定)하기 어렵다는 것도 IPO를 유예한 이유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LG화학의 2차전지 매출액은 2024년 31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성장 전이고 급격한 시장 확대에 따라 불확실성도 있다"며 "불확실한 성장사업이 가진 리스크가 기업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분사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전지사업의 불확실성이 커 아직 IPO에 나서기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의 방식대로 LG화학의 다른 사업부문이 벌어들인 현금이나 그 현금을 바탕으로 한 회사채 발행을 기반으로 전지 사업을 위한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도 분사 논의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또다른 이유다. 전지사업본부가 분사를 하게 되면, ㈜LG→LG화학→LG배터리(가칭)로 지배구조가 짜여진다.

이 경우 문제는 LG배터리의 자회사가 지주사 LG(003550)의 증손회사이기 때문에 LG가 지분 100%를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완성차 업체와 합작사를 세워 공동으로 배터리팩을 생산하고 이익을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이경우 합작사(JV) 설립이 불가능하다. 현대모비스(012330)와 LG화학의 합작사인 HL그린파워와 같은 사례가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올해부터는 손자 회사들끼리 공동 투자도 금지되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워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전문사가 LG의 자회사가 돼야 한다. 이 경우 LG와 LG화학이 지분을 어떻게 교환하거나 매매할 지 복잡한 이슈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IPO가 실익이 있다 하더라도, 지배구조에서 빚어진 난관을 뚫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