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주52시간제 미적용… '눈 가리고 아웅' 비판
"습관적 야근은 비효율… 강제로라도 바꿔야" 지적도

최근 기획재정부 A과는 일과시간(오후 6시 이후)이 끝난 후에는 컴퓨터를 꺼놓고 업무를 계속한다. 국·실장이 지시한 업무를 기한 내에 마무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인데 일과시간 이후에 컴퓨터가 켜져 있는지를 감시당하기 때문이다.

25일 복수의 기재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속인 기획조정실 혁신정책담당 부서는 주요 부서의 컴퓨터가 일과시간 후에도 켜져있는지 점검한다. 이곳은 일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야간 및 주말 근무 줄이기 등을 목표로 정해 다른 부서들이 이를 잘 수행하는지 감시하는 업무를 하는데 그 일환으로 일과시간 후 컴퓨터가 켜져 있는지를 확인한다.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24일 오전 직원들이 기재부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혁신정책담당 부서는 기재부 직원들의 컴퓨터에 깔려있는 업무용 메신저 모피스(Moffice)를 활용해 컴퓨터 활성화 여부를 감시한다. 모피스는 기재부 직원들이 문자 대화를 주고받거나 각종 자료 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업무용 컴퓨터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기조실에서는 실시간으로 각 부서의 모피스가 얼마나 활성화돼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해 잔업이나 야근하는 인력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재부 직원들은 늦게까지 일할 때 컴퓨터를 꺼놓은 상태에서 업무를 본다. 기재부 관계자는 "모피스를 보면 활성화돼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구분이 되는데, 이를 점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주 52시간제가 민간에 도입된 이후 기재부 내부에서도 근무 시간을 줄여야한다며 이런 식의 모니터링을 한다"고 했다.

기재부가 직원들 컴퓨터를 감시하는 것은 업무방식에 대한 홍 부총리의 철학 영향이 크다. 홍 부총리는 2018년 7월 국무조정실장으로 있을 당시 ‘공직사회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공직사회에도 주 52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폈다. 당시 홍 부총리는 "공직사회가 민간을 선도해야지, 법적으로 주 52시간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앞으로 수차례 회의를 통해 공무원의 주 52시간 적용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민간 기업은 주52시간 근무 위반시 사업주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밤늦게까지 일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재부는 컴퓨터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각 부서별 혁신점수를 산정한 후 혁신점수가 높은 6개 부서는 시상을 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올해도 ‘일하는 방식 개선 과제’로 ▲보고자료 간소화 ▲초과근무 최소화 ▲주말근무 최소화 ▲업무시간 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최소화 ▲국회업무 부담 최소화 ▲연가사용 활성화 ▲부서 간 협업촉진 ▲지식의 자산화 등 과제를 정해 각 부서별로 이를 시행토록 했다. 또 각 국·실장의 사무실에 게시판을 마련해 국·실별로 어떻게 업무를 효과적으로 할지를 구체적인 목표로 적어놓도록 하기도 했다. "업무 시간 외 카톡 사용 금지" 등의 문구를 국‧실의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게시토록 한 것이다.

주52시간제 적용 대상이 아닌 공무원이 컴퓨터를 끄고 야근을 하는 게 ‘눈 가리고 아웅’이란 지적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인위적인 목표를 설정해서라도 추가 근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거의 매일 하는 야근은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시간 외 수당 등 추가 비용까지 유발하기 때문이다.

주요 경제부처 직원들은 일주일에 3~4번씩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일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많은 공무원은 "야근이 일상화되다보니 업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끝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일과시간 이후까지 업무를 하는 게 습관이 된 상태"라는 이야기를 한다.

야근이 줄면 공무원에게 세금으로 지급하는 시간 외 수당도 줄어든다. 정부는 월 최대 57시간까지 시간당 1만4072원(5급 사무관 기준)을 수당으로 제공한다. 1주일에 10시간 야근을 하면 한달에 56만원가량을 더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야근이 필요없는 일부 공무원도 수당을 받기 위해 야근을 신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갑자기 잡힌 행사나 회의 등을 조율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야근을 하는 부서가 있지만 일부 부서는 별 이유없이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가능하면 야근을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