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라디오 방송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들고 처음 투자자들 앞에 서니, 다들 '시대를 역행한다'고 하더군요. 동영상 시대에 '별밤' 타령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거였죠. 그 분들의 예상과 달리, 4년 만에 스푼라디오는 세계에서 매월 220만명이 활동하는 서비스로 성장했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마이쿤 본사에서 만난 최혁재(41) 대표는 수직 상승한 스푼라디오의 실적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리는 이 앱(응용 프로그램)은 지난해 누적 다운로드 수 1500만회를 돌파했다. 창업 첫해인 2016년(26만회)의 58배로 성장한 셈이다. 현재 스푼라디오에서는 소소한 일상 얘기나 고민 상담을 주제로 한 라디오 방송을 개설하는 개인 DJ(스푸너) 25만명(1회 이상 방송한 사람 기준)이 활동 중이다. 매일 업로드되는 오디오 콘텐츠 수는 10만건 이상이다. 최 대표는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제외하고, 개인 DJ들이 활동하는 오디오 서비스 중에서는 글로벌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마이쿤 사무실에서 최혁재(맨 앞) 대표가 휴대전화에 표시된 '스푼라디오' 앱을 가리키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뭘까. 최 대표는 "라디오를 접해보지 못한 10~20대를 공략한 전략이 먹혔다"고 했다. 스푼라디오 이용자의 70% 이상이 18~24세인 '밀레니얼 세대'다. 기성세대에게 라디오는 추억 속에나 등장하는 낡은 서비스라는 인식이 있지만, 어릴 때부터 TV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접한 젊은 층엔 오히려 생소한 '신문물'이라는 것이다.

◇한때 수억 빚더미에…

선문대 정보통신학과를 나온 최 대표는 지난 2013년,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에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창업에 나섰다. 당시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모두 착탈식이었는데, 급하게 배터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완충이 된 배터리를 실시간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스마트폰 배터리가 대부분 내장형으로 바뀌며 2015년 문을 닫았다. 최 대표는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온 것도 모자라, 5억원 수준의 빚까지 떠안게 돼 집안도 난리가 나고 앞날이 깜깜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위기는 스푼라디오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 대표는 "첫 사업에 실패하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속내를 보이기가 힘들었다"며 "문득 '온라인으로 낯선 사람에게 위로를 얻는 사업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 대표는 곧바로 '따뜻한 위로 한 스푼'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오디오 전용 소셜미디어를 선보였다. 그는 "나를 비롯한 회사 임직원들은 그저 '익명 오디오 채팅'을 구상했는데, 회원 중에서 정기 라디오 방송을 하는 분들이 나타났다"며 "이들의 라디오 콘텐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의 개인 라디오 방송으로 사업을 성장시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월 수익 1억원 넘는 DJ도

스푼라디오의 과금 시스템은 간단하다. 청취자들은 유료 '후원 스티커'를 구매해 자신이 좋아하는 DJ에게 후원할 수 있다. 한 번 클릭에도 '좋아요'를 10번 눌러주는 방송 기능 스티커도 있다. 스푼라디오는 DJ들이 받는 스티커에서 10~15% 수준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스푼라디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486억원어치의 유료 아이템(방송기능·후원용 스티커)이 팔렸다. 전년(230억원)의 2배 이상이다. 일부 인기 DJ들은 후원 스티커로만 월 1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성대한 팬미팅을 열기도 한다. 구독자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튜버가 부럽지 않은 인기다.

최 대표는 "라디오 시장이 비디오 시장보다 작은 것은 맞는다"며 "대신 이 작은 시장 여러 개를 선점하는 데 성공하면 규모가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스푼라디오는 2017년 인도네시아·베트남을 시작으로 일본, 중동 5국, 미국에 순차적으로 진출했다. 그중 일본 시장에서는 전체 오디오 라이브 앱 가운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경쟁력을 인정받아 스푼라디오는 지난해 12월 K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450억원의 투자를 유치, 약 3000억원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 대표는 "올해에는 중국의 '틱톡'처럼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싶다"며 "우후죽순으로 나타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올해엔 월간 사용자 수 600만명을 뛰어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