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백 재정학회장 "지금 같은 확장적 재정, 지속 불가능"

입력 2020.02.16 06:00

[학회장에 듣는다]③
"재정 투입으로 나랏빚 급증… 재정이 할 일은 복지"
"세금 정책, 부동산 시장 개입 용도로 사용해선 안 돼"

박기백(56) 차기 한국재정학회장(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은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을 두고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부진한 경기를 일으키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데, 그 반작용으로 나랏빚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경기를 방어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구사하더라도, 상황이 호전되면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그런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사상 최초로 700조원을 돌파한 국가채무는 2023년에는 106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0년 40.7%에서 2022년 44.2%, 2023년 46.4%로 거침없이 올라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정부 계획대로) 2023년 46%까지 증가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에 하방압력으로 작용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재정은 경제 성장을 돕는 역할에 머무르기보다는 복지와 소득 재분배에 활용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떨어진 경제 활력으로 인해 저하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재정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쓸 수는 없는 정책"이라고 내다봤다.

박 교수가 올해 4월부터 새 학회장으로 취임하는 한국재정학회는 1982년 출범했다. 한국재정학회는 재정학과 공공경제학 분야의 대표 학술단체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재정과 조세 전문가다. 조선비즈는 박 교수를 지난 7일 서울 시립대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2020년 2월 7일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가 정치와 세수 정책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조인원 기자
-2018년까지는 초과 세수로 지출이 늘어났음에도 재정건전성이 유지됐지만, 작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추세의 재정건전성 악화는 감내할 수준인가.

"지금의 추세가 이어지면 불가능하다. 정부 중기 재정 계획의 마지막 연도인 2023년 쯤에는 재정 안정화를 도모할 것이라는 그림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그 때도 적자 폭이 줄지 않는다. 당장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정 투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를 이겨낸 후 재정이 다시 안정화될 거라는 신호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작년에 GDP 대비 채무비율 40%선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박증’이라는 논쟁도 있었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 재정적자 수준인지 기준은 없다. 다만, 재정적자를 논할 때는 ‘추세’가 중요하다. 계속 올라가는 모양새는 위험하다. 올라가더라도 증가세가 나중에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면 문제 없겠지만, 지금은 그런 흐름이 아니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현재 정책 기조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재정은 경제 성장을 돕는 역할에 머무르기보다는 복지와 소득 재분배에 활용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재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쓰고 있다. 과거에 하지 않겠다고 했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까지 하고 있다. 살아나지 않는 경제를 계속 재정을 투입해 성장시킬 수는 없다. 현재의 재정 정책은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재정은 어디로 향해야 하나.

"복지 뿐 아니라 철도, 국방, 소득 재분배 등 전통적인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단, 예전에 비해 강해진 민간의 역량을 활용하고 정부의 간섭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이것이 신성장 산업이다’ 정해놓고 육성하고 지원하는 방식 대신, 민간이 ‘이 분야를 잘 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정부는 손을 좀 놓고 기다려주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미국을 보면 산업 정책을 통해 주도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구글 등 수많은 첨단 산업이 알아서 번성했다. 정부가 주도하려고 하고 개입하면 시장이 왜곡되고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민간에서 스스로 효율을 높이지 않고 정부 돈을 따는 데만 관심 갖게 된다."

-복지수당을 많이 늘렸음에도 소득 재분배 지표가 좋아진다는 느낌은 없다.

"양극화의 심화는 어쩔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재정은 소득 재분배에 기능을 해야 한다. 옛날처럼 우리끼리 교역 없이 살 때만 해도 국내에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기업에 시장이 열려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은 점점 어려워진다."

-세입 측면에서 현 정부의 기조는 무엇일까.

"현 정부의 전반적인 국정 운영 스타일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소폭의 증세를 하는 기조다. 법인세를 약간, 소득세를 약간 올렸다. 사실 현 정부의 성향대로라면 과감한 증세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권 초반에 세수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증세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적자가 나는 지금에야 필요해 졌지만, 이제는 증세를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증세를 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증세가 어렵다면, 재정 안정화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 뿐이겠다.

"그렇다. 현재 정부 지출 중 많은 부분은 경기 대응을 위해 늘린 것들이다. 경기 대응을 위한 지출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면서 시작한 사업들이 많이 있다. 대규모 건설 사업 특성 상 한 해에 끝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예산에 반영될 것이다. 이 사업들이 끝낼 때는 새로운 건설 사업을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금에 ‘징벌적 과세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는데.

"정부가 고가 주택 집 값 잡기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는 듯하다. 조세 정책을 시장에 개입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개인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주택을 사거나, 벤처로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사는 건 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자꾸 시장과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럴 필요 없이 꾸준히 서민을 위한 주택을 많이 짓고 사람들이 서울로 빨리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된다. 서울 빼고 나머지 지역은 부동산 시장에 아무 문제도 없는데, 정부가 과하게 나서고 있다. 생각해보면, 비싼 자동차, 비싼 가방, 비싼 옷의 가격을 정부가 나서서 떨어뜨려야 한다는 논의는 나온 적도 없지 않는가."

2020년 2월 7일 만난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조인원 기자
◆박기백 교수는

박기백 교수는 올해 4월부터 새 한국재정학회장으로 취임한다. 1982년 출범한 한국재정학회는 재정학과 공공경제학 분야의 대표 학술단체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재정과 조세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현대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해 한국조세연구원에서 경력을 쌓았다.

▲1964년 출생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2년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기획예산처 기금평가단 단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대외경제전문가
▲한국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 선임연구위원
▲서울시립대 세무전무대학원 교수(2009년~)
▲차기 한국재정학회장(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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