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장의 세계] ⑧"조합 중심 탈피해 공공관리제도 활성화해야”

조선비즈
  • 유한빛 기자
    입력 2020.02.15 06:00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은 서울시에 중재를 요청했다. 이미 철거 작업이 시작된 가운데, 일부 상가 관계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퇴거 요구에 반발하고 나선 탓이다. 당초 3월로 잡아둔 분양 일정이 상가위원회와 갈등 때문에 늦어지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게 된다. 조합원들이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애써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한 보람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소송을 진행했다가는 사업이 늘어질 게 뻔하자 조합이 다급하게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조합과 상가는 일단 합의에 성공했고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확률은 커졌다.

    재건축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철거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김연정 객원기자
    재건축·재개발사업에서 조합의 비리 문제와 소송전이 반복되는 이유는 비(非)전문가인 주택 소유주들(조합원)이 중심인 사업 진행 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주택정비사업 분야 전문가들은 ‘민간이 소유한 공동주택(아파트)’이 주를 이루는 한국 특유의 주거 특징과 ‘부동산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려, 재건축시장의 구조를 바꾸기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택정비업계 전문가는 "조합장 등 조합 임원들은 대개 건축이나 관련 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정치적인 역할을 맡고, 회의록 작성 같은 소소한 실무는 시공사나 행정컨설팅업체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며 "조합 집행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소송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재평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장은 "조합 중심의 재건축사업은 현재 근거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전신인 1980년대 ‘주택건설촉진법’ 때부터 이어져온만큼, 재건축시장의 구조를 바꾸려면 법을 완전히 뜯어고치거나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재산권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정부가 재건축 조합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불법을 적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官 주도 ‘도시재생’하는 유럽···한국과 주택시장 구조 차이 커

    한국에서 재건축과 재개발 위주로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낮은데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낙후된 구도심 개발사업이 활발한 유럽 국가들은 지구 단위 정비사업인 ‘도시재생’이 주를 이룬다.

    영국은 정책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건설하기 때문에 공공이 재건축사업에 개입할 여지가 큰 편이다. 런던시의 2015년 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주택의 22%가 공공임대주택이다. 자가(48%)와 민간임대주택(27%)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택시장이 민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은 단독주택(62.6%) 일반적이고, 공동주택(10가구 이상)은 전체 주택의 13.2%에 불과하다.

    영국 런던의 주요 도시재생 사업 중 하나인 ‘킹스크로스센트럴 개발사업’의 항공사진 /런던시
    반면 한국 주택시장은 ‘민간’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2018년 기준 각국 정부의 통계를 보면, 한국의 주택 유형은 아파트(공동주택) 61.4%, 연립·다세대 15%, 단독주택 22.4% 순이다. 영미권이나 유럽의 사례를 통해 재건축시장의 구조를 개선할 대안을 모색하기 어려운 이유다.

    또 다른 부동산신탁업계 전문가는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의 경우는 도시재생이라는 대단위 프로젝트 형태로 관(官)이 중심이 돼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한다"면서도 "이런 나라들은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과 (주택 재건축시장의) 여건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 개입 늘린 日·홍콩···"한국도 ‘공공관리제도’ 실효성 높여야"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들은 압축 성장과 대도시 문제를 공통으로 경험하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인구 밀도가 높은 아시아 도시국가들이 특히 재건축·재개발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에 적극적이다.

    부동산컨설팅업에 CBRE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홍콩에는 지은지 50년이 넘은 건물이 3만가구에 달한다. 이중 절반 정도는 민간이 소유한 건물이다. 홍콩 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준정부기구인 ‘도시재개발위원회’가 모든 재건축·재개발사업에 참여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정비사업 계획 수립, 자금 조달 계획, 자산 평가 작업, 예상 주택 분양가격과 목표 임대료 등 전반을 검토한다. 이해관계자들간 갈등을 공식적으로 조율하고, 사업에 필요한 대출액과 대출 조건 등도 산정해준다. 재건축사업이 끝난 다음에는 재무 보고서를 제출해 위원회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홍콩 도시재개발위원회는 재건축사업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지구 단위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식을 택하면서 지역공동체가 무너져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받는다.

    홍콩섬 타이쿠싱지역의 고층아파트 전경 /조선DB
    한국과 인구 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단독주택(53.6%)과 공동주택(43.5%)이 비슷한 비중으로 있다. 아파트 선호도가 높지 않아 아파트 재건축 수요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재건축사업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체 아파트 약 633만가구(2016년 기준) 중 17%에 해당하는 106만가구가 내진설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1981년 이전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민간이 주택 재건축·재개발사업을 공공 부문과 합동으로 진행하면 ‘당근’을 준다. 재건축으로 지은 새 집의 등록세 등을 감면해주고, 낮은 금리로 사업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금융지원도 제공한다. 또 전문가들이 재건축·재개발사업을 기본계획단계부터 검토해주는 ‘재개발 코디네이터’ 제도도 운영한다. 코디네이터는 조합 설립 과정과 착공 든 모든 단계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사업과 관련된 주민들을 교육하는 역할도 맡는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공공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재건축·재개발조합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사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도 지난 2010년 지자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공사(SH) 등이 정비사업의 관리자 역할로 참여하는 ‘공공관리제도’를 신설했다. 다만, 재건축사업장들이 공공관리자를 선정해야 할 강제성이나 특별한 이익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공공관리제도가 도입된 사례는 장위뉴타운처럼 서울시가 추진한 재개발사업 정도에 그칠 정도로 민간 재건축시장에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최진도 국토연구원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주택 관련 부동산의 대부분은 사유재산인데다 재건축·재개발사업에 따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보니 공공 부문이 개입하면서 사업 수익성이 낮아진다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며 "용적률 기준을 완화해주거나 사업 초기 단계에 저금리에 자금을 대출하는 식으로 사업 초기에 공공관리제도를 선택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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