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장의 세계] ⑦건설사 갑질에 휘둘리는 조합장들

입력 2020.02.14 06:00

공사비만 2조원으로 역대 최대 재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은 시공사 입찰 때부터 과열 경쟁으로 떠들썩했다. 입찰에 뛰어든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은 각각 백화점 입점과 일반분양가 3.3㎡당 7200만원 보장, 임대주택 제로 등의 공약을 쏟아내며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얼마나 이익이 남으면 저렇게 공약을 쏟아붓나"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전경. /조선일보DB
경쟁이 과열되면서 국토교통부가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무혐의로 처리됐고 이달 시공사들은 다시 재입찰에 뛰어들었다.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른 만큼 겉으로는 잠잠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앞선 입찰때에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시공사들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남길래 이렇게 조합원들의 환심을 사려고 돈을 쓰는 것일까. 그럼 시공사로 선정되고 나서도 조합원들에게 잘 해줄까.

◇시공권만 주면 쓸개까지 내놓을 것처럼 구는 건설사들

건설업계가 재건축 시공권에 목을 매는 건 돈이 돼서다. 한남3구역의 공사비는 약 1조8800억원(3.3㎡당 595만원)이다.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웬만큼 규모가 큰 단지의 공사비는 수천억원에 이른다. 고스란히 시공사 몫으로 돌아가는 돈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화설계나 금융비용을 시공사가 떠안는 경우도 있지만,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다. 시공이익에 영향을 미칠 만큼 비중이 큰 건 아니라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는 명제가 재건축사업에서도 여실히 통하는 셈이다.

2017년 9월 27일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에 입찰한 한 건설사 관계자들이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사업 설명을 한 다음 조합원들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서울 알짜 지역 재건축을 수주할 경우 인근 정비사업의 추가 수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재건축사업은 공사가 착공하기 전까진 실체가 없다. 청사진을 갖고 조합원을 설득해야 한다. 인근 지역에 이미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가 있다면 이만한 무기가 없다. 조합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실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존 지역에 투입했던 영업인원들도 고스란히 운용할 수 있다. 하나를 잘 하면 두번째 세번째도 잘 될 확률이 크다.

때문에 건설사는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온갖 ‘당근’을 제공한다. 건설사 영업 관행이 그렇다. 돈이 될만한 정비구역을 선점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건설사의 자금과 영업력으로 다져놓은 현장을 다른 건설사가 넘보기 쉽지 않은 이유다. 건설사는 조합과 조합원들을 ‘왕’처럼 대한다. 현대건설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수주 당시 이사비로 가구당 70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롯데건설은 송파구 미성·크로바와 서초구 한신4지구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 500억원 이상을 대납하겠다고 했다.

조합원을 과도하게 받들어 모시다가 탈이 난 예는 차고도 넘친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8년 11월 강남 일대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현대·롯데·대우건설과 건설사 임직원 등 총 334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대건설은 현금과 명품가방 등 1억1000만원, 롯데건설은 현금과 고급호텔 숙박 등 2억원, 대우건설은 2억3000만원을 건넨 혐의다.

◇시공사 되면 늑대로 돌변

하지만 건설사들이 조합원을 끝까지 상전으로 모실까. 시공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쓸개까지 빼줄 것 같던 건설사의 모습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재건축사업의 특성과도 관련이 깊다. 보통 시공계약을 맺고 바로 공사가 시작되면 건설사는 공사비를 올려야 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공사비를 올리기 애매하다.

강남권 재건축 수주 비리를 수사 중인 경찰이 2018년 4월 25일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 물품이 담긴 상자를 옮기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시공계약을 체결한다고 해서 바로 공사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보통 시공계약을 맺고 4~5년 후에 착공에 들어가기 때문에 기존 시공계약은 사실상의 ‘수의계약’이 돼버린다. 이러면서 문제가 생긴다. 강남권 한 조합장은 "원래 시공사가 30% 손해 보는 계약이었다면 5년 뒤에는 20% 이익이 되는 계약으로 바뀐다"며 "이 과정에서 조합과 조합원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조합이 무너지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계약서의 허점이 많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얘기로 바꿔쓸 수도 있다. 가령 조합과 시공사가 시공계약을 맺을 때 ‘KS 마크급’으로 명시해 계약했다면, 시공사는 KS 마크급 중에서 가장 질이 낮은 자재를 사용해 공사비를 줄인다. 애초 시공사와 이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계약이 필요했는지 모르는 조합은 ‘바가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시공사가 갑으로 돌변하는 건 모두 계약서 탓"이라며 "우리 단지는 엘리베이터 속도와 에어컨·환기시설 포함 여부, 대리석 두께까지 모두 디테일하게 정해 이런 분란을 사전에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초 수천여명의 전문가가 있는 건설사와 조합의 싸움은 시작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사는 재건축사업의 ‘베테랑’이다. 관악구 정비사업장의 한 조합장은 "정비사업이 속도전이라는 것을 아는 시공사는 시공사 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악용해 계약서 핑계를 대며 설계 변경, 공사비, 이주비 등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조합의 경우 HDC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했다가 "설계와 각종 시설 공사 범위가 입찰 제안 당시와 달라졌다"고 주장하며 계약을 해지했다. 경기도 과천주공6단지(과천자이) 조합원들은 애초 계약했던 내용과는 다르게 공사비가 증액되고 마감재가 변경돼 GS건설이 이득을 봤다고 주장한다.

시공을 마치고도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서초구 신반포5차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뷰’ 역시 입주민들이 지난해 시공 하자 문제로 들고 일어난 것이 좋은 예다. 사실 강남의 경우 집값에 영향이 있을까봐 하자에 대해선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단지 외부에 플래카드까지 걸며 대림산업의 하자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고, 각종 사진과 자료들을 제시했다. 대림산업은 결국 리모델링 수준으로 하자 시공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두 달 동안 강남권 5개 재건축 조합을 합동 점검한 결과, 일감 수주 이후 ‘말 바꾼’ 시공사의 부정 사례가 11건 적발됐다. 시공사 선정 이전에 시스템 에어컨 등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해놓고 은근슬쩍 공사비로 타낸 시공사가 5개 조합 모두에서 적발된 것이다. 현대건설은 반포주공1단지에서 수입산 주방가구와 조경 등 5026억원을 무상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곤 공사비(총 2조6363억원)에 포함시켰다. 대림산업은 서초신동아와 방배6구역에서 발코니 확장과 행주도마살균기 등 341억원이 적발됐다.

◇약점에 자금줄까지 쥔 시공사에 결국 무너지는 조합장

시공사가 이렇게 돌변하는 것은 일단 조합장만 확실히 확보하면 시공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합과의 유착이 이뤄지면 조합은 해당 시공사를 외면하기 쉽지 않다.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는 약점도 시공사가 쥐고 있다. 조합의 이익만 보고 가야 할 조합장이 시공사의 눈치를 보는 순간 사업은 조합원의 사업이 아니라 시공사의 사업이 된다.

조합이 향응과 비리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해도 자금줄을 쥔 시공사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따지고 보면 조합원의 재산이고 건설사가 이 돈을 먼저 융통해주는 것뿐이지만, 당장 일반분양을 하기 전까진 조합은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한 조합장은 "조합이 자금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시공사에 빌려 쓰고 일반분양 이후 청산·해산 때 갚는 구조라 조금만 시공사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운영비를 끊어버린다는 식으로 ‘길들이기’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조합이 스스로 사업 주체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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