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열쇠로 급부상한 '부동산 민심'에 공(空)약 남발하는 정치권… “실현될지 의문”

조선비즈
  • 허지윤 기자
    입력 2020.02.10 11:00

    4·15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민심’이 지역구 총선 열쇠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거 문제와 집값과 맞닿아있는 부동산 민심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에 여야 모두 총선 전 부동산 추가 대책을 내놓으며 표심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지역민과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드러내고 있다. ‘선심성 공약’이자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구호’라는 비판이다.

    서울 아파트 전경. /조선DB
    ◇ 여야 모두 구호만 앞선 부동산 공약 또 나왔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 3호 공약으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조성 계획’을 내놨다. 수도권 3기 신도시 택지개발지구 내 지하철·GTX 역세권 등 대중교통 중심지에 청년벤처타운과 신혼부부특화단지가 연계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를 조성하고 청년·신혼주택 5만호를 공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년과 신혼부부 등 20·30대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공약인데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울 주거 불안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특정 계층에 치우친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 30대 맞벌이와 40대 무주택자 등이 공약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심판 무대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낼 때마다 집값은 되레 급등했다며 △재건축·재개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인데, 이 역시 서울 집값 급등 문제와 투기에 대한 해결 및 방지책은 빠져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평화당은 소형 아파트를 1억원에 100만가구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제1호 공약으로 앞세웠다. 서울 관악갑 출마를 선언한 이승한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관악은 1인 가구가 40%가 넘는 기형적 가족구조"라며 주거안정공약을 피력했다. 하지만 역시 부동산 업계에서는 ‘구호는 파격적이나, 실현 가능성과 지속성은 약한 포퓰리즘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일자 민주평화당은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내놨지만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대, 계층,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는 공약들이 남발되고 있다"면서 "업적 남기기 식의 공약 추진과 부동산의 정치화, 즉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시장을 교란하고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강남에선 여당 의원이 규제완화 주장…주민 "이제까지 뭐하다"

    서울 강남4구와 경기 분당 등에서는 여야 막론하고 대출 규제와 보유세 완화가 공약으로 급부상했다.

    서울 송파, 강남, 서초,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수도권 험지 출마자' 모임을 꾸렸다. 지난해 연말 정부가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의 규제 핵심지역들로, 현 부동산 대책에 대한 논의가 이 모임의 화두다.

    이 모임 소속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성남 분당을)은 최근 무주택자와 1주택 소유자들에 한해 주택담보비율(LTV) 규제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내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9억∼15억원 주택은 9억원 초과분의 LTV비율을 종전 40%에서 20%로 축소한 것과 관련해 무주택자나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유권자는 의구심을 표한다. 대출 규제와 세금을 강화한 정부의 12·16대책이 나온 지 두 달이 채 안 되는데, 정부와 호흡을 맞춰오던 집권여당이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냐는 것. 분당구 구미동에 사는 50대 김모씨는 "이제까지 뭐 하다가 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내느냐"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 "3기신도시 철회"·"구로차량기지이전 재검토"

    지역 곳곳에서는 현재 이행을 앞둔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공약들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경기도 일산에서는 ‘3기신도시 철회’ 목소리가 나오고 경기도 광명에서는 ‘구로차량기지 이전 재검토’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일산에 출사표를 낸 부동산 전문가 출신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산을 이대로 두면 공급 폭탄의 파편을 맞을 것"이라면서 3기신도시 지정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8년 동안 이 지역 의원들의 교통(서울 접근성) 관련 공약은 GTX를 빼곤 실행된 게 없고 창릉 3기신도시 조성은 무분별한 공급 폭탄"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역은 3기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열악한 교통환경 문제, 분당과 비교되는 집값과 인프라에 따른 불만이 고조됐다. 3기신도시 발표 이후 집값이 하락한 일산의 주민 정서가 표심에 반영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반면 젊은 층 유권자가 많은 지역인 데다 실제 집주인보다 세입자 비중이 커 부동산 민심이 표심으로 이어지는 게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문제는 3기신도시 철회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이미 경기 남양주, 하남, 과천, 인천 계양 등의 대규모 택지(100만㎡ 이상) 등 3기 신도시 택지에 대한 공공주택지구 지정 고시를 완료해 3기신도시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올랐다. 일산 지역구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3기신도시 철회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으며 이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광명의 경우 지난달 박승원 현 광명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 총선 예비후보자, 시민 등 100여명이 구로차량기지 이전 예정지인 밤일마을에서 ‘구로차량기지 이전반대’ 결의대회를 가졌다. 광명 선거구에 출마가 거론되는 여야 원내·외 후보군은 15명가량으로 알려졌다. 세부 공약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구로차량기지 이전 문제와 보상 및 해결책이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담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부는 오는 2026년까지 1조700억원을 투입해 현재 서울에 있는 구로차량기지를 9.4㎞가량 떨어진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지역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분진·소음 발생 등 환경 피해를 고스란히 광명시에 떠넘기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대통령선거에서 부동산 공약이 많이 쏟아졌고 총선 때는 덜 했는데, 이번에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거듭 강화한데 따른 반작용으로 총선으로도 부동산 이슈가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심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는 유독 단기적이고 포퓰리즘적인 부동산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며 "공약 내용이 과격하고 편향된 문제가 있고 이행되더라도 시장 교란 등 부작용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지역 개발 및 주거 환경 개선에 관한 일부 공약이 특정 지역에 호재로 작용한다 해도 전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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