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한때 '국민 게임' 제작 블리자드의 야심작... 조건없는 환불 굴욕

조선비즈
  • 윤민혁 기자
    입력 2020.02.08 09:00

    "다시 벼려낸 고전."

    블리자드 스토어에 적혀 있는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이하 리포지드)의 소개 문구입니다. 리포지드는 2002년 출시한 워크래프트3의 개선판입니다. 재련(再鍊)했다(Reforged)는 부제 답게, 18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향상된 그래픽·동영상·인터페이스 등을 약속했습니다.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블리자드 제공
    블리자드는 한국의 국민 게임으로 불리는 ‘스타크래프트’ 제작사입니다. 워크래프트3는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전략시뮬레이션(RTS) 장르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앞서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성공적으로 출시해, 국내에서 제2의 스타크래프트 붐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리포지드에 대한 세계 게이머들의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지난달 29일 리포지드 출시와 함께 J. 알렌 브랙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워크래프트3는 블리자드가 이룬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 중 하나"라며 "좋은 부분들은 유지한 채 게임을 현대화한다는 목표를 블리자드가 이뤘다는 데 모두가 동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블리자드의 기대와 달리 게이머 반응은 차갑습니다. 전문가·일반인 평점을 종합해 소개하는 ‘메타크리틱’에서 리포지드의 전문가 평점은 100점 만점에 60점, 2만7000명 이상이 참여한 이용자 평점은 10점 만점 중 0.5점에 불과합니다. 이용자 평점 0.5점은 메타크리틱에 등재된 모든 게임 중 최하위입니다. 원작이 전문가 평점 92점, 이용자 평점 9.2점을 기록했음을 떠올릴 때 믿기 힘든 수치입니다.

    왼쪽부터 원본 워크래프트3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리포지드의 스킬 효과. 원본은 강력한 스킬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리포지드는 팽이가 도는 것 같다. /게임조선
    게이머들은 낮은 완성도를 지적합니다. 블리자드는 2018년 리포지드를 첫 공개하며 새롭게 개편된 4시간 이상의 게임 내 컷신, 업그레이드된 인터페이스와 월드 에디터 등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 요소는 게임내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시 공개돼 찬사를 받았던 미션 시험 영상도 실제 게임에선 등장하지 않습니다.

    블리자드는 리포지드에서 18년전의 투박한 그래픽을 현대적으로 개선했습니다. 더 높은 해상도를 지원하고, 캐릭터에 쓰이는 3D 텍스처는 HD급으로 고쳤습니다. 하지만 조명이나 효과 등은 도리어 퇴보했다는 평입니다. 게임에선 단순히 깔끔한 것을 넘어 ‘공격이 들어간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효과가 중요합니다. 리포지드의 스킬 효과는 맥이 없어, ‘타격감’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블리자드는 영화와 같은 게임 내 동영상으로도 유명합니다. 블리자드는 현대적으로 개선한 동영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주요 인물간 대결 같은 핵심 동영상은 질 낮은 연출로 "아마추어 제작이냐"는 비판까지 받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한글 폰트가 깨지는 버그까지 속출하고 있습니다. '엘프'가 '깐프'로 출력되는 모습과 맥 없는 스킬 효과는 유머사이트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리포지드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 문구. 하지만 실제 출시된 게임에선 인터페이스와 월드 에디터가 업그레이드되지 않았다. /리포지드 홈페이지
    일각에선 "블리자드가 사기를 쳤다"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옵니다. 블리자드는 리포지드를 3만6000원에 예약 판매했습니다. 당초 2019년 연말이 목표던 출시 일정마저 한차례 연기했습니다. 선입금을 받고, 납품은 지연됐는데 결과물이 최악인 꼴입니다. 결국 블리자드는 지난 5일(현지 시각) "기대했던 경험을 제공받지 못했다고 느낀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이용자에게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며 조건 없는 환불에 나섰습니다.

    블리자드는 홍콩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e스포츠 대회에서 "홍콩 해방"을 외친 게이머를 징계했습니다. 워크래프트3는 중국에선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같은 ‘국민 게임’으로 불립니다. 당시 게이머들은 리포지드 출시를 앞둔 블리자드가 중국 눈치를 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렇게 회사 평판마저 희생해 준비한 리포지드가 중국 내 흥행도 불투명해졌습니다. 한때 게임사를 다시 쓰는 명작을 연이어 내놓던 블리자드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게임사가 돈을 버는 최선의 방법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게임’의 빈 자리를 ‘사업’이 차지한 순간 내리막길은 예고돼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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