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장의 세계] ④사업 망치는 3대 惡 "조합장 탐욕, 조합원 무관심, 꽉 막힌 행정"

조선비즈
  • 이진혁 기자
    입력 2020.02.10 06:00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로 서울 재건축정비사업은 멈춰 섰다. 사업성 좋다던 강남 아파트라도 가구당 수억원을 부담해야 할 판이다. 주거환경이 너무 열악해 어떻게든 재건축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집값에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서울시의 인·허가를 통과하는데만 하세월이다. 새집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물론 재건축으로 목돈 쥘 수 있다는 조합원들의 기대감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재건축 조합들은 최근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성공으로 이끈 곳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3.3㎡당 1억원을 돌파하며 재건축의 성공사례로 떠오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신반포1차 재건축)가 대표적인 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사례를 만들 수 있을까. 지난 6일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차 조합 사무실에서 한형기 조합장을 만나 재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형기 신반포1차 재건축정비사업 조합장은 “조합장의 무지와 조합원의 무관심, 꽉 막힌 인·허가가 재건축사업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조합장의 무지와 탐욕이 사업 망쳐"

    "재건축에 성공하는 단지와 실패하는 단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합장입니다. 사업성이 좋기로 손꼽혔던 사업장들도 조합장의 무능과 탐욕 탓에 위기에 빠진 사례가 많죠."

    한 조합장은 "조합장이 건설사와 지나치게 유착하면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조합원 재산 수백억원을 날려 먹은 곳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이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한줄 알았지만, 시공사나 조합 내부 갈등으로 결국 적용받게 된 사업장도 따지고 보면 조합장의 무능력과 도덕적 결함 탓"이라고 했다.

    재건축사업의 목표가 ‘돈’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조합원은 당연히 경제적 이득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조합장은 적어도 돈만 생각해선 안 된다. 수백, 수천 명의 조합원을 이끌고 사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조합장이라면 돈보다는 책임감을 선택해야 정상이다. 강남 노후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데 성공한 어느 조합장은 "몇년간 수도승처럼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 이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각오가 틀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재건축의 목표는 ‘새집으로의 입주’ 하나지만, 입주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개다. 각각의 길마다 ‘달콤한 열매’가 널려 있다.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재건축을 둘러싼 문제는 너무나도 다양해요. 너도나도 앞다퉈 재건축을 하겠다지만, 정작 대한민국 역사 이래 재건축에 성공한 단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20년 걸려 입주했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성공한 게 아닌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한 조합장은 "재건축사업에서 조합장의 역할이 중요한 건 재건축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주택경기가 꺾이면서 일반분양이 어려워지자 시공사들은 확정지분제 대신 도급으로 조합과 계약을 맺었다.

    확정지분제란 재건축 때 시공사가 사업 위험을 떠안는 것이다. 하지만 조합원의 무상지분율(추가분담금 없는 지분 비율)을 시공 전에 확정한다. 사업을 이끄는 주체가 시공사에서 조합이 된 셈이다.

    한 조합장은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전문성 있는 조합장은 물론 도덕적으로 무장된 조합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재건축은 실패와 부패의 대명사가 됐다. ‘가락시영’, ‘개포주공1단지’ 등 내로라하는 단지들이 사업을 추진하다 부패 탓에 고꾸라지는 일을 겪었다.

    전문조합관리인 제도가 있지만, 그는 적절한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이 제도는 6개월 넘게 조합임원이 공석일 경우 시장이나 군수 등이 변호사, 공무원, 법무사, 세무사 등의 자격을 갖춘 사람을 조합 대행임원으로 선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조합 내부 반발도 만만찮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으려고 한다’는 인식 탓이다.

    ◇"조합원 무관심 아래 악순환 반복"

    "조합원의 무관심은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일부 조합원은 어떤 조합장이 유능한지 관심이 없어요. 그냥 얼굴 아는 사람을 조합장으로 뽑아요. 당연히 사업이 잘 될 수가 없죠. 이런 조합의 특징은 조합원이 뿔뿔이 흩어진다는 겁니다. 총회 참석률이 50%를 넘는 것도 힘들어지죠."

    한 조합장이 말하는 두 번째 실패 원인은 조합원 문제다. 망가지는 조합의 패턴은 이런 식이다. 조합원들의 관심이 떠난 조합은 외주 홍보요원(OS·Out Sourcing)을 모집하게 된다. 이런 조합은 3000만원이면 충분할 총회를 5억원을 지출해 연다. 1명당 17만원을 주고 한 달간 100명을 고용하는 식이다. 그마저 조합장 입맛에 맞는 업체를 통해 선정한다.

    "이러면 사업이 잘되겠습니까? 누군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조합장 쟁탈전을 벌이고, 사업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죠."

    한 조합장은 "조합장 하면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집도 열채 생긴다더라.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갖고 조합장을 바라보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된다"고도 했다.

    ◇산 넘어 산, 인·허가에 막힌 재건축

    "조합 내부 문제로 사업이 망가지는 게 70% 정도라면 정부나 지자체 인·허가에 막혀 사업이 어려워지는 비중도 30%나 됩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땐 훨씬 심하죠. 조합 의지와 상관없는 변수가 인·허가입니다"

    조합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추스르면 되지만, 인·허가는 조합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한 조합장은 인·허가 얘기가 나오자마자 서울시의 행정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조합을 설립하고 3년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일몰제가 적용돼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는데, 지금 서울시 정책 아래서 3년 안에 다음 단계를 밟는 건 불가능"이라고 했다. 그만큼 서울시 인·허가가 꽉 막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신반포1차 재건축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 재임 땐 기부채납 20%를 하고, 62층으로 짓기로 약속했지만,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35층 이하로 하향 조정됐고 대규모 집회와 삭발투쟁 등을 거쳐 겨우 38층으로 지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조합이 모든 서류를 갖춰 서울시에 제출하면 미비하거나 보완해야 할 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런 게 없다면 인·허가를 내주는 게 정상적인 행정절차"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고 반문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부동산 시장 불안을 이유로 곳곳의 재건축 인허가 절차를 멈춰놓고 있다.

    한 조합장은 "지금 정부와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단지 주민들을 마치 범죄자처럼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정말 잘못된 정책이고, 이렇게 정책을 펴면 앞으로 재건축은 영원히 할 수 없으며 시장에 엄청난 충격과 혼란만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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