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GS건설은 설 연휴 직후부터 중국을 다녀온 인력을 조사해 2주간 건설 현장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매일 다 같이 모여서 진행하던 아침 조회도 중단했다. 특히 인력 60%가 중국 사람인 골조 공사 현장은 초긴장 상태다. 힘쓰는 일이 많은 골조 공사는 내국인들이 꺼린다. GS건설 관계자는 "국내 건설 현장은 중국 인력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우한 폐렴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2. 중국 옌볜이 고향인 중국 동포 이모(53)씨는 지난 2년간 서울 마포구의 50평대 아파트에서 매주 두 차례 청소 도우미 일을 했다. 이씨는 며칠 전 집주인으로부터 "당분간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듣지 못했다. 그는 "청소 도중 '남편이 설 연휴 기간에 중국에 다녀왔다'고 말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 이씨의 중국 동포 친구 두 명도 설 연휴 직후 일자리를 잃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중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국내 산업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제조 공장, 건설 현장, 외식·숙박업소, 농·어촌 현장 등 중국인 근로자가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산업 분야에선 "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 동포들은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내 중국인 취업자는 39만9100명, 전체 외국인 근로자의 46.2%를 차지한다.
◇'한국 이모' 찾는 고객 늘어
최근 가사 도우미를 소개하는 인력업체에는 "한국인 도우미를 연결해달라"는 요청이 크게 늘었다. 일부 업체는 중국에 다녀온 가사 도우미에 대해 일시적으로 강제 휴무 조치를 하고 있다. 청소 스타트업 청소연구소 관계자는 "전수(全數) 조사를 통해 설 연휴 기간 중국에 방문한 것으로 나타난 도우미 25명의 활동을 2주 동안 제한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내국인 가사 도우미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서울 이촌동에 사는 '워킹맘' 한모(39)씨는 "한국인 보모를 구하고 있지만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인력 업체들도 '내국인 구인난'을 겪는 중이다.
식당들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경기 수원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모(47)씨는 지난달 서빙할 직원을 뽑기 위해 중국인 면접을 봤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뽑지 않기로 했다. 그는 "대신 한국인이나 인도네시아·베트남 출신 직원을 구하려고 알아보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다"며 "임시로 직접 음식을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의 중국 동포 지원 단체에는 지난 일주일간 중국 동포라는 이유로 해고됐다는 상담 문의가 수십 건 접수됐다. 대부분 남성 건설 현장 근로자, 여성 주방·가사도우미였다. 서울 대림동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박용만(65) 행정사는 "산후 조리원 보모, 가사도우미 등 대면 접촉이 많은 분야는 현재 중국인 대신 한국인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며 "중국 동포들도 외출을 자제하면서 하루 50명 넘게 오던 구직자가 연휴 직후로는 10명도 안 온다"고 했다.
건설 업계도 다급하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외국인은 22만6391명이다. 이 중 중국 동포가 52.5%, 중국 한족이 26.4%로 10명 중 8명꼴로 중국 출신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중국인 노동자 비율이 현장마다 30~50%에 이른다"며 "사태가 심화하면 현장 인력 수급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영향평가센터소장은 "한국어 의사소통이 필요한 간병, 아이 돌봄 서비스 등에선 동남아 출신이 중국 동포를 대체하기 어렵다"며 "인건비 부담으로 내국인을 고용하기 힘든 사업자는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취업 교육 중단에 중국 인력 '대기 중'
중국 동포 인력난은 당분간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중국 동포의 취업 교육을 일시 중단했다. H2 비자 보유자가 국내에서 신규 일자리를 얻거나, 유지하려면 필수적으로 취업 교육을 거쳐야 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박3일 교육 도중 우한 폐렴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2차 감염 위험성이 크다"며 교육을 잠정 중단했다. 당장 이달 교육 대상이었던 1777명의 중국 동포가 교육이 재개되기 전까지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 중 97.1%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며 "취업 교육 제한이 길어지면 중소기업의 구인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 동포나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적 거부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국인을 경계하는 심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고용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는 중국인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