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진핑이 방한하면 韓 게임 호황이 올까

조선비즈
  • 윤민혁 기자
    입력 2020.02.04 10:00

    "판호(版號·유통 허가증) 발급이 재개된다고 한국 게임이 중국 시장에 발붙일 수 있을까요. 한국이 중국 게임계를 선도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게임업계에서 15년간 종사한 40대 기획자가 털어놓은 얘기다. 그는 "다시 수출문이 열려도 중국 내 신작 게임 중 한국산 비중은 1% 남짓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중국은 게임 유통 허가에서 외산 게임 비중을 제한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판호를 받는 1570개 게임 중 외산은 185개로, 비중은 11.8%에 불과했다. 중국 게임 9개에 외산 게임 1개꼴로 유통 허가를 주는 것이다.

    외국 게임 출시 기회가 좁다 보니 중국 현지 유통사들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재미와 흥행성이 확실한 ‘똘똘한 하나’를 택한다. 한국 게임은 판호가 개방되더라도 10개 중 1자리를 두고 세계 각국에서 도전장을 낸 ‘대표선수’들과 경쟁해야 할 처지다. 이 기획자는 "1차적으로 외자판호(수입물 유통 허가) 문을 뚫기 힘들고, 설령 판호를 받아도 현지 유통사(퍼블리셔)가 한국 게임에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한국 게임의 경쟁력이 북미나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밀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17년 한한령(限韓令)이 내려진 후 중국에 신규 출시된 한국 게임은 없다. 반면 중국은 제한 없이 한국 시장에 진출해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중국 시청각디지털출판협회 게임위원회(GPC)는 지난해 대(對)한국 게임 수출 규모를 2조원 상당으로 추산했다. 게임업계는 계속된 ‘불공정 무역’에 지쳐있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경쟁을 펼칠 기회조차 없다는 분노다.

    하지만 중국의 수입 장벽이 걷힌다 해도 국산 게임이 경쟁력을 지닐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최근 중국 게임은 놀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중국은 부족한 브랜드와 캐릭터 등 지식재산권(IP)은 일본에서 가져오고, 막강한 인력으로 명품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 만화 나루토를 게임화한 ‘화영닌자(火影忍者)’, 역시 인기 만화 헌터X헌터를 차용한 ‘엽인(獵人)’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고전 게임 랑그릿사 시리즈를 활용한 ‘랑그릿사 모바일’은 한국에서도 매출 10위권 안팎의 성적을 내고 있다. 게임업계에선 "개발사 이름을 가리고 보면 중국산인지, 일본산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에도 리니지 같은 대표 IP가 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게임업계에선 "리니지의 장르는 리니지"라는 농담이 있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내수용이란 자조다. 진정한 명작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문장은 게임에선 통하지 않는다. 도리어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고, 미국적이며, 중국적이다. GOTY(Game of the year·올해의 게임)에 선정될만한 훌륭한 게임은 어느 나라에서나 좋은 반응을 얻기 마련이다.

    판호 발급 중단 직전 중국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던 한국 게임은 배틀그라운드(PLAYERUNKNOWN'S BATTLEGROUNDS)였다.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는 중국에 한정할 수 없다. 세계적 인기에 중국이 따라온 것이다. 배틀그라운드는 체코에서 제작한 'ARMA3'의 MOD(사용자 창작)에서 시작했다. 제목 앞에 붙은 ‘플레이어언노운’은 이 MOD 제작자인 브렌던 그린(Brendan Greene)의 닉네임이다. 세계에서 통할만 한 제작자를 섭외해 국산 자본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을 점령한 사례다.

    게임업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해 판호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시 주석의 상반기 방한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설령 방한해서 선물로 판호 재개를 가져온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진 않는다. 기약 없이 중국만 바라보고 있기보단, 북미와 유럽 등 세계시장에서 통할만 한 게임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판호가 뚫려도 제2의 배틀그라운드 없인 한국 게임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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