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IT 패권' 용두사미 되나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20.02.04 03:10 | 수정 2020.02.04 13:48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우한에 테크 선봉장들 몰려있어]
    중국의 대표 반도체기업 YMTC, 128단 낸드플래시 증설 차질
    중국 2위 디스플레이 CSOT 공장 가동률 20% 떨어져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업체인 CATL의 정상가동도 불투명

    '반도체 자급률 70%,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1위 달성….'

    중국 정부가 2025년까지 달성하겠다고 공언해온 테크 굴기(崛起·일으켜 세운다)의 목표다. 쉽게 말해 세계 최고 테크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집요하게 관세를 동원한 압박을 가했지만, 중국의 의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만만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다.

    지난 2018년 4월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우한의 반도체 기업 XMC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지난 2018년 4월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우한의 반도체 기업 XMC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반도체 기업을 방문한 것은 XMC가 처음이었다. /신화 연합뉴스
    우한(武漢)은 베이징·선전에 이어 반도체·OLED·전기차배터리 등 중국 정부가 키우는 주요 미래 테크 산업의 전초기지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XMC의 본사와 공장이 있고, 중국 2위 디스플레이 업체 CSOT(차이나스타)·티안마의 OLED 패널 공장이 있다. 한마디로 중국 테크 굴기의 메카다. 하지만 우한 일대가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교통·물류가 중단되면서 이 기업들은 공장 가동·증설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앞으로 1~2개월만 더 지속해도 중국의 기술 패권 도전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본다. 단순히 1~2개월 뒤처지는 게 아니다. 공장 건설과 시스템 확보가 도미노처럼 밀리고, 인재나 자본 유치도 힘들어진다. 기술 개발 속도가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 新산업 집결지 우한

    우한에 본사·공장을 둔 YMTC는 작년부터 저가형 낸드플래시인 64단 제품을 양산한 데 이어 올해부터 128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계획이었다. 4분기까지 공장을 증설해 월평균 웨이퍼 투입량을 7만장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었다.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공장인 M11과 비슷한 규모다.

    중국 '테크 굴기'의 거점 우한
    /그래픽=김성규
    하지만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YMTC의 야심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우선 올 연말까지 예정돼있던 공장 증설이 당장 문제다. 작년 4분기 기준으로 YMTC의 우한 공장은 월 2만장 수준의 웨이퍼만 투입되고 있다. 앞으로 3배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증설돼야 한다. 하지만 우한 폐쇄로 장비 확보가 중단됐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장비 반입 시기가 1개월이라도 늦춰지면 그만큼 테스트 기간이 늘어져 양산까지는 수개월 이상이 더 밀린다. 낸드플래시 제조를 위해 필요한 웨이퍼 수급과 완성된 반도체 반출도 차질을 빚는다. 반도체 전문지 EE타임스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이로 인한 춘제 연휴 연장, 지역 봉쇄 등으로 YMTC가 소재·장비 수급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한국을 맹추격 중인 디스플레이 분야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한 일대에 있는 중국의 거대 디스플레이 공장만 5곳"이라며 "이곳은 이미 생산량이 10~20%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CSOT는 지난 2017년 50억달러를 들여 우한에 공장을 구축하고, 올해부터 본격 양산에 나설 계획이었다. 티안마는 작년 4분기부터 우한의 OLED 공장에 장비 반입을 시작하고, 올 2분기부터 월 1만5000장의 패널을 찍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물류가 끊기면서 장비 반입이 중단되고, 그만큼 OLED 패널 양산 시점이 늦어질 전망이다. 고객사는 이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거래선이 끊길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1위를 장악한 전기차용 배터리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1위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인 CATL은 2018년 우한 현지 자동차 업체인 둥펑과 50대50으로 배터리팩 합작사를 세웠다. 이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배터리팩 양산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 업체 반사이익?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수개월 이상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우한이 속한 후베이성에는 2일 기준으로 확진자 수가 1만1177명까지 늘어났다. 후베이성은 13일까지 연휴를 연장한 상태이지만, 상황에 따라 이를 더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이는 한국·미국 등 경쟁 기업에 호재다. 중국 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량이 감소하면 세계 시장의 가격 하락 압박이 줄어든다. 중국 기업에서 사려던 반도체·디스플레이를 한·미 업체에서 사려는 수요도 생긴다. 공급 부족 가능성에 따른 가격 상승 효과나,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릴 시간 벌기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세계 최대 IT 부품 수요처인 중국 내수(內需) 시장이 얼어붙으면 수요 감소로 인한 후폭풍을 세계 IT 업체가 맞는다는 우려도 있다.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춘제 연휴가 끝난 이후부터 나올 중국 기업의 공장 가동 현황을 확인한 뒤 대응 전략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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