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미엄 앱' 쓰는 김대리, 세탁기·냉장고 내다 팔았다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20.01.22 03:30 | 수정 2020.01.22 09:09

    [오늘의 세상]
    집 좁고 집안일 귀찮고… 1인가구, 필수가전도 불필요

    하루에 세탁·배달 끝내는 빨래앱, 주문 30분 내 간편식 배송앱 선호
    1인가구들 가전 줄이는 세태에 세탁기 판매 3년새 210만→190만, 냉장고는 220만→200만대로 줄어

    서울 관악구에 있는 6평(20㎡) 원룸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장모(30)씨는 최근 세탁기를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팔았다. 바쁜 직장 생활 탓에 매번 세탁소에 옷을 맡길 뿐 세탁기를 쓸 시간이 거의 없고,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씨는 한 달에 세 번 빨래한다. 높이 120㎝, 너비 50㎝짜리 빨래통에 상·하의, 속옷, 수건을 담아 잠들기 전 문 앞에 내놓고 스마트폰의 '런드리고' 앱을 열어 수거 요청만 하면 '빨래~ 끝'이다. 다음 날 저녁이면 다림질까지 한 깨끗한 옷이 현관 앞에 놓여 있다. 장씨는 "좁은 원룸에 건조대까지 놓고 빨래를 말려야 해 습한 여름이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며 "한 달에 6만원 정도면 빨래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장씨가 쓰는 런드리고는 작년 3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의식주컴퍼니가 내놓은 24시간 세탁 서비스다. 서울에서 1만5000여 가구가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 회사의 조성우 대표는 "세탁기 없는 생활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 서비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2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의식주컴퍼니의 세탁 공장에 있는 자율주행 카트.
    스스로 장애물 피해 세탁물 운반 - 2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의식주컴퍼니의 세탁 공장에 있는 자율주행 카트. 품목별로 분류된 세탁물을 실으면 자동으로 물빨래, 드라이클리닝 등 목적지로 이동한다. 장애물이나 사람이 나오면 자유자재로 피해가며 공장 내부를 누빈다. /김연정 객원기자
    수십 년 집 안을 지켜 온 세탁기·냉장고·TV 같은 필수 가전(家電)의 지위가 신(新)서비스에 흔들리고 있다. 1·2인 가구와 맞벌이가 늘면서 빨래·요리 등 가사를 '편리미엄 앱' 서비스가 대체하기 때문이다. 편리미엄은 편리함과 프리미엄의 합성어로 바쁜 현대인이 편리함을 소비 기준으로 삼으면서 생긴 신조어다. 빨래하고 밥 짓는 데 드는 시간·노동·비용을 줄이고, 좁은 집에 가전이 차지했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20~30대 '나 홀로 세대'가 주로 이용하지만, 고령화는 이런 추세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가전제품은 지금까지 기능적 변화만 있을 뿐, 본질적 혁신이 없었던 영역"이라며 "이를 공략하는 스타트업과 혁신 서비스는 속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냉장고 대신 '30분 배송'

    서울 송파구에 사는 유모(31)씨 부부가 혼수로 장만한 양문형 냉장고에는 물과 음료수만 있다. 유씨 부부는 지난달부터 마트에도 가지 않았다. 집에서 밥해 먹을 시간도 없고, 냉장고에 쟁여둔 식재료는 음식쓰레기로 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대신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있으면 '배달의 민족' 앱의 B마트를 연다. 부대찌개·미역국·김치·두부·전 같은 국·반찬거리나 냉동·냉장 가정 간편식(HMR)·라면까지 30분 내에 배달받아 저녁상을 차릴 수 있다. 굳이 냉장고에 식재료나 음식을 보관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시켜 먹는 게 훨씬 편리하다. B마트는 서울 전역에서 30분 배송 서비스가 핵심이다.

    세탁기·냉장고·TV 없이 생활하는 직장인 A씨의 생활
    새벽 정기 배송 서비스도 냉장고를 위협한다. 매일 아침 5만명 정도가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을 통해 아침 식사나 요리 재료를 받는다. 곧바로 먹을 수 있는 1인분 시리얼·샐러드는 물론 감자 1개, 버섯 2개처럼 식재료가 남아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소량도 배송받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음식 배달 스타트업 허마셴성이 아예 "냉장고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며 신선 식품 30분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TV 시장은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TV는 손 위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대체하고 있다.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동영상 앱에는 TV에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가 풍부해 인기를 끌고 있다.

    1·2인 가구 "비싼 가전 왜 사?"

    줄어드는 국내 TV·세탁기·냉장고 시장
    변화가 생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1·2인 가구의 급증이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 1·2인 가구 비율은 56.5%로 2010년(48.2%)보다 8.3%포인트 늘었다. 1인 가구나 신혼부부 위주인 2인 가구는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적다. 1인당 거주 공간도 좁아졌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거주 면적은 2018년 31.7㎡로 2014년 33.5㎡에 비해 5%가량 줄었다. 특히 1·2인 가구가 밀집한 수도권은 같은 기간 31.3㎡→28.5㎡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가전제품을 들어낸 공간엔 취미나 건강 관련 용품을 넣는 경우가 많다. 냉장고가 있던 자리는 수집품을 모으는 장식장을 놓고, TV가 있던 곳에 책장과 책상을 놓는 식이다.

    1·2인 가구 급증은 이미 국내 3대 생활가전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2015년 250만대가 팔렸던 국내 TV 시장은 작년 150만대로 40% 축소됐다. 3년 사이 세탁기 시장은 210만대에서 190만대, 냉장고 시장은 220만대에서 200만대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경영학부)는 "경제력이 있는 이들은 집 안에서 가사에 드는 노동과 시간을 특히 아끼고 싶어 한다"며 "게다가 1·2인 가구는 직접 요리하고, 빨래하는 것보다 외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어 세탁이나 음식 배달 수요는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 업계에서도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자칫 수십 년간 핵심 사업이었던 생활가전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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