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탱이가 밤탱이'된 나를 부른 신회장, 그가 준 빨간 봉투엔 일본돈 100만엔이…

조선일보
  • 홍수환 전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입력 2020.01.21 03:09

    [신격호 별세]
    - 권투선수 홍수환 '내가 만난 신격호'
    일본에서 일본 선수를 이겼더니 "이 주먹이 日선수 때려눕힌 손" 도쿄 시내 카퍼레이드 준비해줘
    당시 100만엔, 강남 아파트 1채… 후원사가 뭔지 개념도 없던 시절 내 트렁크엔 롯데의 로고가…

    홍수환 전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홍수환 전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42년 전 일이 떠올랐다. 1978년 2월 1일 나는 일본 선수 가사하라 유와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1차 방어전을 치렀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나는 다섯 차례 다운을 빼앗은 끝에 15회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내 트렁크 오른쪽 아래에는 한글로 '롯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도쿄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다.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일본 선수를 꺾었는데 카퍼레이드라니…. 신 명예회장이 나를 위해 준비한 행사였다. 그 행사에는 재일(在日) 한국 어린이들도 함께했다. 카퍼레이드를 마친 뒤 그야말로 '눈탱이가 밤탱이 된 상황'에서 도쿄에 있는 신 명예회장을 직접 만났다. 신 명예회장은 나뿐 아니라 우리 단원들 모두 롯데 사무실로 초청했다. 신 명예회장은 내 주먹을 만지며 "일본 선수를 때려눕힌 손"이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일본인 임원들이 앞다퉈 내 손을 만져봤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가 새겨진 빨간 봉투에 일본 돈 100만엔을 넣어 줬다. 당시 '개도 포니를 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던, 한창 개발 중이던 서울 개포동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홍수환이 1978년 2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가사하라 유와의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1차 방어전에서 다운을 빼앗는 모습.
    홍수환이 1978년 2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가사하라 유와의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1차 방어전에서 다운을 빼앗는 모습. 홍수환의 트렁크에 '롯데'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롯데그룹
    신 명예회장에게 신세를 진 건 그때뿐이 아니었다. 1977년 11월 '4전 5기 신화'로 불리며 세계챔피언에 올랐을 때도 롯데가 후원사였다. 후원사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롯데는 내게 도움을 많이 줬다. 돌이켜보면 그로부터 사랑을 흠뻑 받았다. 그와의 인연을 통해 8년 동안 롯데 신입 사원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와이셔츠 하나 팔기 어려운 게 비즈니스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는 가장 작은 것(껌)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일 큰 것(롯데월드타워)까지 이뤄낸 사람이다. 신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섭섭함이 크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복싱으로 따지면 신 명예회장은 4회전, 6회전짜리 경기는 물론 15회전까지 다 치러본 것이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맨손으로 글로벌 기업 일궈… 신격호 회장의 결정적 장면은 한경진 기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