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 (17) “세종대왕께 진상한다는 정성으로 술을 빚어요.”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0.01.20 10:35 | 수정 2020.01.20 15:09

    세종대왕어주 만드는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
    작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 수상
    세종대왕 어의가 지은 책에 나온 방법대로 약주와 탁주 빚어
    미네랄성분 많은 초정 지하수 사용, 발효력 뛰어나 술 잡맛 없어
    귀농 전부터 술 빚어 터득한 ‘저온숙성 기술’로 술 향과 맛 부드러워

    귀농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2년 간이지만, 틈틈히 술을 빚어온 것은 거의 10년이나 됐다. 운영해온 재활병원을 접고 고향인 청주로 내려가 ‘술빚기’로 인생이모작을 아내와 시작할 참이었다.

    귀농 준비는 서울에서 시작했다. 고향에 내려가기 2년전, 서울 직장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해 술빚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차피 겪을 ‘시행착오’라면 고향에 내려가 양조장을 운영하기 전에 미리 실패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꾸찌뽕 뿌리로 술을 담다가 주변에서 ‘화장실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항의까지 들었다. 양조장을 지을 예정인 고향 청주의 지하수와 쌀을 가져와 서울에서 6개월간 매주 똑같은 술을 빚었다. 술맛이 안정화되자 2011년 귀농을 실천에 옮겼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했건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2011년 법인 설립을 하고 본격적으로 술을 빚었다. 이듬해 술품평회에 술을 출품했다.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역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본선에는 아예 올라가지도 못한 것이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술을 빚었다. 거의 3년을 걸려 술 이름도 새로 네이밍했다.

    초정약수로 빚은 약주 ‘세종대왕어주’로 작년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은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가 상장을 옆에 두고 웃고 있다. /박순욱 기자
    극적인 반전은 작년 11월에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대회,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였다. "지자체에서 ‘무조건 술을 출품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마지못해 약주를 출품했어요. 몇년전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기억도 있고 해서 수상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입니까? 덜컥 대통령상을 받았지 뭡니까?" 2019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세종대왕어주’를 만드는 양조장 장희도가 장정수 대표의 감회다.

    장희도가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 초정리에 자리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요양을 위해 두번이나 행궁을 했다는 초정약수가 있는 곳이다. 맥콜, 초정리 탄산수 등을 만드는 일화공장, 그리고 롯데주류 소주공장도 근처에 있다. 양조장에 들어서니 ‘경축 세종대왕어주 대통령상 수상. 초정발전협회 일동’ 현수막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았다. 지역주민들이 써붙였다고 한다.

    장희도가는 장정수 대표와 부인 김주희 발효전문가가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 두 사람이 술 빚기부터 포장, 판매까지 도맡아 운영하는 소규모 양조장이다.

    인터뷰에 앞서 둘러본 양조장은 클린룸을 연상할 정도로 위생관리가 철저했다. 바닥엔 티끌 하나 없었다. 장정수 대표는 "공장을 지을 때부터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을 염두에 두고 청결, 위생관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며 "전통술 양조장이면 대개 발효와 숙성을 항아리에서 하는데, 우리는 청결관리가 훨씬 유리한 스테인레스 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초정리에 있는 장희도가 양조장 내부.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양조장 전체가 깨끗하다. 사진 오른쪽 밑의 탁자는 밑술인 고두밥을 식히기 위한 설비. 구멍이 뚫려 있어 식히기가 용이하다. 장정수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박순욱 기자
    세종대왕어주는 약주와 탁주가 있다. 이번에 대통령상을 받은 술은 세종대왕어주 약주다. 약주는 3회 발효(삼양주), 3번의 여과, 2번의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발효와 숙성에만 90일 이상 걸린다. 장 대표는 "저온숙성을 통해 술 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향이 살아나고 술맛이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세종대왕어주는 세종 때 어의(임금 주치의) 전순의가 지은 책인 ‘산가요록'에 나온 술 ‘벽향주’의 주방문(술 제조법)을 그대로 따라 빚은 술. 그러나 세종 당시의 벽향주를 빚을 때에는 지금의 저온숙성 기술이 당연히 없었다. 장 대표는 "세종대왕어주는 벽향주를 따라 만든 술이지만, 벽향주가 거치지 못한 저온장기숙성을 했기 때문에, 벽향주보다 더 맛있는 술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산가요록은 어떤 책인가?

    "산가요록은 음식책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에 가깝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적어놓은 책이다. 농입진흥청에서는 이 책이 음식, 술보다는 농법(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온실을 만든 기록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적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온실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지붕 쪽에 한지를 둘러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한 것 등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이 온실을 통해 궁에서 사시사철 채소를 키워 먹은 기록이 나와 있다. 이렇게 대단한 책이 20여년전에 고물상에서 우연히 발견됐다고 한다. 그 안에 벽향주와 황금주 주방문이 나와 있다. 세종대왕어주 약주는 벽향주, 탁주는 황금주 주방문을 재현한 술이다."

    장희도가 양조장이 있는 이곳 초정리와 세종대왕의 인연은?

    "이곳 청주 초정은 세종대왕이 두번에 걸쳐 거의 넉달 이상을 머문 곳이다. 안질이 심했던 세종대왕을 위해 신하들이 요양을 권했던 곳이 초정리다. 세종대왕은 이곳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요양하면서 한글창제 마무리 작업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초정리 광천수는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광천수다.
    이곳이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술에 어떤 스토리텔링을 입힐까 고민하다가 초정리에 있는 양조장 위치, 초정에 오래 요양하신 세종대왕, 세종대왕 어의가 만든 책의 벽향주 주방문을 따라 만든 술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술 이름에 세종대왕을 넣기로 했다. 지역(초정리), 세종대왕, 산가요록을 다 결부해서 이름을 지었다."

    세종대왕어주는 어떻게 만드나?

    "재료는 다른 전통주와 같다. 찹쌀, 멥쌀, 누룩, 물을 쓴다. 세번 담그는 삼양주다. 전해 내려오는 벽향주 주방문이 많은데, 그 중 이곳 초정과 인연이 깊은 세종대왕의 어의가 쓴 산가요록 주방문을 택했다.

    1차 담금 때는 찹쌀과 멥쌀을 섞어서 밑술을 만든다. 산가요록 벽향주 주방문에 찹쌀과 멥쌀을 섞어서 술을 빚으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밑술을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발효를 위한 밑술은 고두밥, 죽, 범벅, 백설기떡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산가요록 주방문에는 두가지 방법이 나와 있다. 삼양주(세번 담근 술)와 이양주(두번 담근 술) 주방문이 각기 달랐다. 첫번째 기록(삼양주)은 1, 2, 3차 담금 때 모두 밑술과 덧술을 죽으로 하라고 돼있다. 다른 기록은 이양주로 하되, 1차는 죽, 2차는 고두밥으로 하라고 됐다. 우리는 이 두가지 방법을 섞었다. 삼양주로 하되, 1, 2차 밑술은 죽, 3차 덧술은 고두밥으로 했다.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가 숙성 중인 술 향을 맡고 있다. 세종대왕어주는 발효와 숙성에 100일 가량 보낸 뒤 완성된다. /박순욱 기자
    그런데, 죽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과는 다르다. 우리는 죽 하면 묽은 죽을 먼저 떠올리는데, 물의 양에 따라 죽이 될 수도 있고, 범벅(곡식가루를 된풀처럼 만든 것으로, 죽보다는 훨씬 물이 적은 형태)이 될 수도 있다. 범벅은 ‘된 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만드는 죽은 된 죽, 범벅에 가깝다. 당시 산가요록 주방문에는 범벅이란 표현은 없었다. 주방문에는 죽이라고 돼 있지만, 쌀과 함께 들어간 물 양을 감안해보니, ‘묽은 죽’이 아닌 ‘된 죽’, 즉 범벅이 아닐까 판단했다. 찹쌀과 멥쌀 합해서 쌀 함유량은 45% 정도 된다."

    누룩은 어떤 걸 썼나?

    "우리가 직접 빚는 밀누룩과 외부에서 사온 밀누룩을 블렌딩해서 쓴다. 산가요록 주방문에 쌀누룩이 아닌 밀누룩을 써라고 돼 있다. 그리고 1차 담금 때 밀가루가 약간 들어간다. 이것도 주방문에 따른 것이다. 밑술 만들 때 소량이지만 밀가루를 넣어 청량감을 나게 한 것이라 본다. 특히 기온이 높은 여름에 벽향주를 빚을 때 밀가루를 넣으라는 기록이 있다. 산가요록 주방문을 따라, 세종대왕어주 약주 1차 담금 때 밀가루를 소량 넣는 것이 다른 술과 차이점이기도 하다. 워낙 소량이라 함유량 표시는 안돼 있다."

    대상 수상 이후 판매는 크게 늘었나?

    "판매가 세배 정도 늘었다. 작년 11월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출품 당시는 석달 앞으로 다가온 설날 대목을 대비해서 생산량을 늘린 상태였다. 세종대왕어주는 최소한 3~4개월 전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생산량을 늘린 것이다. 그런데 이 술들이 발효가 끝나고 숙성단계쯤 들어갔을 때 대상 소식이 전해졌다.

    대상받은 직후 여기저기서 술 달라고 야단이 났다.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확한 판매수치는 알 수 없지만, 택배 주문과 매장 판매 등을 볼 때 세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 롯데백화점 서울 소공동 본점과 청주 현대백화점에 입점해 있는데, 대상 수상 이후 신라호텔 한식당을 비롯한 여러군데 고급 한식당에 새로 들어갔다."

    이날 장정수 대표 부부와의 인터뷰는 양조장 체험실에서 진행됐다. 시음, 판매공간으로도 쓰이는 곳이다. 인터뷰 도중 세종대왕어주 약주를 약간 맛을 봤다. 우선 색깔부터가 달랐다. 살짝 푸른 빛이 돌았다. 세종대왕어주의 모태가 된 ‘벽향주’의 ‘벽’자가 푸르다는 뜻이다.

    작년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고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 김주희 발효전문가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장희도가 제공
    벽향주는 원래 평양지방의 명주로 명성을 날렸던 술이다. 다른 술에 비해 빛깔이 맑고 밝은 게 특징이다. 세종대왕어주 약주도 그랬다. 한모금 맛을 봤다. 담백하면서도 누룩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느낌이었다. 누룩의 고약한 냄새를 뜻하는 누룩취는 없었지만, 누룩향이 다소 강해 ‘한약재를 넣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번째, 세번째 잔을 마셔도 누룩향은 여전히 약간 거슬렸다. 반면에, 알코올 도수 15도가 무색하게 목 넘김은 아주 부드럽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는 "신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뛰어난 술"이라고 평했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는 어디서 비롯되나?

    "세종대왕어주에 들어가는 재료는 쌀, 누룩, 물뿐이다. 그런데도 과일향, 꽃향이 난다. 전체적으로 신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밀누룩으로 빚는 술들이, 온도관리가 잘 안되거나 등의 잘못 빚을 경우 신맛이 도드라진다. 밀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초기에 젖산발효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단맛은 쌀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전분질이 당분으로 바뀌고 또 알코올로 바뀌면서 생긴다.

    그런데, 신맛과 단맛의 조화는 온도관리와 발효관리에 달렸다. 신맛과 단맛, 그 중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서는 좋은 술이 될 수 없다. 밀누룩을 사용함에 따라 젖산발효에 의해 생기는 신맛이 도드라지지 않으려면 쌀이 갖고 있는 전분의 단맛이 거의 비슷한 힘을 가져야 한다. 이런 밸런스는 적절한 온도와 발효관리에서 나온다."

    벽향주는 임금에게 바치는 술인가?

    "벽향주가 어주는 아니다. 그런 기록은 없다. 다만, 세종대왕께 진상했음직한 술이라고 본 것이다. 왜냐면 어의가 지은 책에 레시피가 나와 있으니까. 산가요록에 보면 한번에 술 빚는 양이 엄청 많다. 쌀을 몇 말씩 사용해서 술을 빚어라고 돼 있다. 이걸 보면 일반 여념집에서 술 빚는 수준이 아니다. 가양주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산가요록의 저자인 전순의 어의는 의사이면서도 궁의 수랏간에도 자주 드나들 정도로 음식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벽향주와 세종대왕어주의 다른 점은?

    "조금 변형이라면 쌀의 양 정도가 아닐까 한다. 멥쌀과 찹쌀의 비율 정도가 약간 다를 것같다. 주방문에는 ‘어떤 쌀 몇말 쓰라, 또 어떤 쌀 몇말 쓰라’고 기록돼 있다. 지금의 레시피에서 ‘무엇을 몇그램 쓰라'고 하듯이. 주방문이 레시피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주방문을 따라 술을 빚어 집에서 가양주로 즐길거면 상관이 없는데, 판매까지 고려하면 결과물인 술의 맛까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주방문대로 했다고 끝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느 문헌을 보면 ‘벽향주는 향이 좋은데 맛이 다소 거칠다’는 기록이 있다. 왜냐면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달리, 저온에서 숙성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드는 약주(세종대왕어주)도 발효 직후에는 맛이 거칠지만 저온 장기숙성을 거치면서 맛이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저온숙성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옛날 벽향주와 세종대왕어주의 차이점이다. 그러고 보면 벽향주보다 지금의 세종대왕어주가 훨씬 맛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 벽향주 주방문을 거의 따라하면서도 현대의 기술(저온숙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어주는 탄산수를 사용하나?

    "초정 광천수라고 해서 다 탄산이 들어간 물은 아니다. 광천수는 지하에서 퍼올리는 용출수를 다 일컫는 말이다. 이곳 초정리 일대에는 탄산이 많이 섞인 광천수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탄산이 없는 일반 광천수도 나온다. 다른 지역 지하수와 다른 점은 이곳 초정 광천수에는 미네랄 성분이 많다는 점이다. 그건 탄산 성분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미네랄 성분이 많다. 세종대왕어주 만들 때는 1차 담금 때는 탄산이 들어간 물을 사용하고, 나머지 2, 3차 담금 때는 탄산이 없는 물을 쓴다."

    ‘세종대왕어주’ 약주와 탁주 선물세트.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도 있다. /박순욱 기자
    초정 지하수의 미네랄 성분이 술 빚는데 어떤 역할을 하나?

    "2012년도에 경기도가 주최한 ‘전국가양주주인선발대회'에 참가해서, 우리 부부가 탄산이 들어간 물과 탄산이 들어가지 않은 물로 각각 술을 빚어 출품했다. 나중에 결과를 보니, 탄산이 들어간 물로 빚은 술이 은상, 탄산이 없는 물로 빚은 술이 동상을 받았다. ‘만약 우리가 수상을 한다면 탄산이 들어간 물로 빚은 술이 상을 받을 것이다'고 예상했는데, 둘 다 상을 받았다. 본상 네개 중 우리 부부가 절반인 두개를 받은 셈이었다. 이 지역 물에 많은 미네랄 성분이 술 발효 초기에 효모를 형성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미네랄 성분이 누룩 속 효모의 활동을 왕성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발효가 잘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미네랄 성분이 많은 물은 술 발효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술맛에 순기능을 한다. 발효가 흐지부지되면 술맛이 제대로 날 수가 없다. 발효가 잘되면 술맛도 좋아진다.

    술 만들 때 밑술과 덧술을 분리하는 것은 누룩 양을 줄일려는데 있다. 한번만에 술을 만드는 경우(단양주)와 두번, 세번 나누어 술을 담그는 것(이양주, 삼양주)은 누룩 사용량이 다르다. 단양주는 누룩을 한번만 사용하기 때문에 한번에 많은 양의 누룩을 사용한다. 그런데 누룩의 고약한 냄새인 누룩취는 옛날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에서 술을 빚을 때는 삼양주나 오양주로 술을 빚어 누룩취를 최대한 없앴다.

    술을 만드는 것은 누룩 속의 효모다. 담금을 여러번 하는 것은 효모 배양 때문이다. 탄산수가 술 발효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담금 초기에 효모 증식력이 좋다는 뜻이다. 이 지역 물인 초정약수에 많이 들어 있는 미네랄 성분이 효모의 증식을 왕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네랄성분 덕분에 발효 과정에서 효모 배양이 잘 되니까 결국 술 발효가 잘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종합영양제 먹듯이 효모가 미네랄을 먹고 쑥쑥 큰다는 얘기다.

    밑술이 잘못돼 효모 배양이 잘 안되면 효모가 아닌 공기 중의 다른 미생물들이 쌀의 전분을 먹을 수 있어 술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 밀누룩을 사용한데 따른 젖산발효의 신맛이 술 오염을 초기에 막아주고 그 다음에는 미네랄성분이 효모증식을 활발하게 해 알코올이 생기면서 오염을 막는 효과가 있는데, 그런 역할 중심에 미네랄이 있다. 술이 오염되지 않기 때문에 술에 다른 잡맛이 안생긴다. 결국 미네랄 성분이 많은 이 지역 물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언제부터 빚었나?

    "술을 처음 빚은 것은 2011년 귀농 한참 전이다. 병원행정 일을 오래 했다. 의료법인을 운영했다. 서울에서 두번째 생긴 재활병원을 운영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틈틈히 술을 빚었다. 고향인 청주에는 지금도 가양주문화가 있어 술 빚는 일반인들이 적지 않은데, 우리도 자연스럽게 고향문화에 휩쓸려 술 빚기가 일상사가 됐다. 살던 아파트에서 술 빚었다. 취미로 인터넷 뒤져 술 관련 문헌에 나와있는 레시피를 찾아 술을 담곤 했다. 나중에는 우리 부부 둘다 전통주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양조 공부를 했다.

    2011년도에 병원을 접고 고향인 청주로 내려왔는데, 그 2년전부터 귀농 준비를 해왔다. 재활병원 근처인 구로구청 인근에 오피스텔을 얻어 술 빚는 양조장을 만들어 계속 고향인 청주와 서울에서 술을 빚으면서 완성도를 높여갔다.

    장희도가는 술빚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장희도가 제공
    청주에 올 때마다 지하수 100리터, 청주지역 쌀 40kg를 서울로 가져와서 술을 빚었다. 서울엔 양조장과 거의 비슷한 시설을 만들어놓았다. 매주 월요일마다 똑같은 술을 빚었다. 약주와 탁주를 빚었다. 6개월동안 똑같은 술을 만들었다. 한달에 두 가마니 양의 쌀로 술을 빚었다. 전통주가 공산품이 아니니까 만들 때마다 결과물이 똑같을 수가 없다. ‘어느정도 술의 품질이 안정화되면 청주로 내려가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귀촌해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리 잡았느냐'고 한다. 우리 부부 둘다 얼렁뚱땅 하는 성격들이 아니라서 나름 철저히 사전준비를 한 것이다.

    꾸지뽕나무 뿌리로 술 만들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원성을 산 일화도 있다. 꾸지뽕 뿌리를 캐다가 시골에서 잘 말려 서울로 가져와 술을 담갔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화장실 냄새가 난다’고 난리가 났다. 발효 도중에 꾸지뽕 술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 것이다. ‘뽕’이 ‘똥’하고 어감이 비슷한 이유를 그때 알았다. 그런데 이 술을 냉장고에 두달 정도 넣어두었다가 맛을 보니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저온숙성의 효과를 그때 알게 됐다. 그래서 술 숙성고로 사용하려고 곧바로 김치냉장고를 샀다."

    세종대왕어주 상표 등록에 문제 없었나?

    "2014년에 이름을 세종대왕어주로 새로 정했는데, 상표 등록에 거의 3년이 걸렸다. 2016년에야 그 이름을 쓸 수 있었다. 이씨문중에서 문제를 삼았다. ‘왜 세종대왕을 술 이름에 굳이 쓰느냐? 세종대왕 이름을 욕보여선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세종대왕의 어의를 지낸 이가 지은 책에 나온 주방문 그대로 술을 빚었고, 또 양조장이 있는 초정리는 세종대왕이 넉달 이상 요양하면서 지낸 곳’이란 부분을 적극 설명해, 결국 승락을 얻었다.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요양하면서 남긴 언행이 잘 나와있는 문헌에도 술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이 이곳에 기거하는 동안 지역 주민들을 불러 이 지역에서 빚은 술과 고기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그 술이 세종대왕어주의 모태가 된 벽향주라는 기록은 없지만 세종대왕과 술이 전혀 상관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세종대왕께 진상해도 손색이 없는 술이란 의미로 세종대왕어주라고 이름지었다.

    정작 상표등록을 하니 반발한 곳은 경기도 여주였다. 여주는 초정리 이상으로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쌀을 비롯해 곳곳에 세종대왕 이름을 붙여왔다. 그런데 술 이름에 세종대왕 이름을 청주에 선점당한 것이다.

    가끔씩 시음회에 나가면 당연히 이 술이 여주 술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다. 시음회장에서 ‘우리 고향 술 마셔봐야지'하고 시음하는 사람들 고향을 물어보면 다들 여주라고 한다. 그런데 이 술이 여주가 아닌 청주 술이라고 하면 깜짝 놀란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여주(세종대왕과 소현왕후 합장릉인 영릉이 여주시 능서면에 있다)는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고 나서 간 곳이고, 청주는 살아계실 때 넉달 이상 기거하신 곳'이라고."

    작년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은 직후 행사장에서 시음행사를 열고 있다. /장희도가 제공
    저온숙성이 술맛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술은 와인과 마찬가지로 저온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향들이 많다. 마지막 술 여과를 하면 그날이 가장 맛이 없다. 왜냐면 숙성을 더해감에 따라 맛과 향이 점점 좋아지기 때문이다. 숙성되면서 올라오는 아로마 향들이 많다. 그게 과일향, 꽃향도 있다. 쌀 재료에서 비롯되는 1차 향들도 있지만 저온숙성 과정을 통해 발효 때는 없던 2차 향들이 새로 생겨난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는 발효 초기부터 시작해서 발효 끝날 때까지의 발효 온도관리 덕분이고, 여러 향들이 올라오는 것, 그리고 맛의 부드러움은 저온숙성 효과로 본다.

    맥주 양조인들도 최근 숙성에 눈뜬 분들이 많더라. 맥주는 매우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는 술이다. 발효는 5일이면 끝난다. 탄산 첨가해서 2차 발효하면 사실상 공정이 끝난다. 그런데 요즘 수제맥주 양조하는 사람들은 전통주에서 숙성을 배워서 맥주 숙성을 길게 하기 시작했다. 숙성을 거치면 맛과 향이 깊어지면서 동시에 부드러워진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홉에서 생기는 쌉싸르한 향 내는데 집중했는데, 최근에는 장기숙성을 통한 2차 향들을 내는데도 신경쓰는 수제맥주 업체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발효 때의 온도관리와 저온 숙성이 술맛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장희도가 양조장 입구에 나붙은 대통령상 수상 축하 현수막. 지역주민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박순욱 기자
    약주, 탁주 외에 천연양조식초도 생산하고 있다.

    "지인이 술로 만든 식초를 선물했는데, 맛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식초를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는 술과 식초는 한 공간에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술과 식초에 필요한 미생물이 공기 중에 섞이다 보면 술이 식초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따뜻한 날씨에 술을 잘못 빚으면 술이 되지 않고 식초가 돼버린다. 식초를 만드는 초산균이 공기 중에 있다가 알코올을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초산균은 식초에 꼭 필요하지만 알코올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알코올이 핵심인 술 양조장과 한 공간에서 식초를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공간을 완전 분리했다. 지금도 식초 공장은 별도로 있다."

    품평회 출품은 이번이 처음?

    "2012년도인가 2013년도에 처음으로 술품평회에 술을 보냈다. 그 당시는 충청북도에서 1차로 걸러서 거기서 합격한 술들만 서울 본선에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예선 탈락이었다. 충격이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 다음부턴 술을 출품하지 않았다.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작년에는 여기저기서 하도 출품하라고 아우성을 쳐서 마지못해 출품했는데, 덜컥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양조장 경영에 가장 큰 애로사항은?

    "술의 재료인 쌀을 많이 쓰는데, 특히 찹쌀을 많이 쓴다. 그런데 쌀값이 비싸다. 이건 전통주 업계 전체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그 때문에 술 가격이 비싸다. 소비자들은 ‘술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들 하는데, 술의 핵심 재료인 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주업체에서는 판매가격과 대비해,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만약, 우리가 지금보다 싸게 쌀을 살 수 있다면, 당연히 술 가격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청주시 담당자하고도 얘기를 하고 있는데, 충북에서 전통주 양조장에 대해 쌀 구입비를 어느 정도 지원해주면 좋겠다. 일부 다른 지역에서는 쌀값을 일정 부분 보전해주고 있다고도 하는데, 아직 충북지역은 그런 혜택이 없는게 아쉽다. 쌀 구입비용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술값을 내릴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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