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엔 들고 일본행… '롯데껌'으로 시작, 115조 기업 일군 巨人

입력 2020.01.20 03:10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별세]
롯데 창업주 신격호, 韓·日서 롯데 신화 쓰고 떠나다

- 어릴 적 꿈은 문학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서 기업 명칭
- 외교행낭에 자금 숨겨와 한국 투자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투자 요청… 롯데호텔에 1억5000만달러 들여
- 재계의 애도
"한일 경제교류 힘써준 辛명예회장, 그의 타계는 큰 아픔과 손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42년 단돈 83엔(약 870원)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78년 만에 자산 115조원, 매출 90조원, 세계 20여국에서 직원 18만명을 거느리는 글로벌 기업 '롯데'를 일궜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우리 산업이 중화학공업과 전자, 자동차 등 대규모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할 때, 국민 실생활과 직결되는 유통과 식품, 관광 등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2015년 5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불시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30년 숙원 123층 롯데월드타워 -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2015년 5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불시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2016년 12월 완공된 123층(555m)짜리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이 30년 동안 추진한 숙원 사업이었다. /조선일보DB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꽃피워

1942년 스물한 살 신격호는 울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로 떠나는 배에 홀로 올랐다. 1921년 10월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에서 평범한 농민 집안 5남 5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공부하고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겠다"며 일본행을 선택했다. 한국에 첫 배우자 노순화(1951년 사망)씨와 태중(胎中)의 첫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남겨둔 채였다.

신 명예회장은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와세다대 야간부 화학과를 다녔다. 본격적인 사업은 1948년 직원 10명과 시작한 껌 공장이었다. 회사 이름 '롯데'는 어릴 적 꿈이 문학도였던 그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 '샤를로테'에서 따 지었다. 1952년 일본 유력 가문의 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재혼해 동주·동빈 형제를 낳았다.

한국 진출은 그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키운 꿈이었다. 한국 사업은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시작했다. 변변한 산업 시설과 자본이 없던 시절, 박 대통령은 성공한 재일 동포 사업가였던 고인에게 한국 투자를 요청했다. 그렇게 1967년 서울 영등포에 세운 롯데제과가 한국 롯데의 뿌리가 됐다.

신격호 연보 외
고인은 호텔업에 진출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다. 1973년 박 전 대통령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신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8층 호텔을 신축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일본에선 "롯데가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빼돌린다"는 시선이 팽배해 있었다. 결국 자금을 여러 법인으로 쪼개서 들여와야 했다. 외교 행낭에 몰래 자금을 숨겨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의 지분 구조가 복잡해진 데는 이런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6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1979년 롯데호텔을 완공했다.

"평생 한국 국적 유지하며 한·일 사업"

신 명예회장 사업의 출발은 일본이었지만, 꽃은 한국에서 피웠다. 고인은 평생 양국을 오가며 사업했으나, 한국 국적을 버린 적이 없다. "한국 롯데에서 얻은 이익은 한국에 재투자하는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관광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며 1989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를 만들었다. 2016년 완공한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이 30년 동안 추진한 숙원 사업이었다. 롯데 관계자는 "고인은 한국에서 번 돈을 모두 한국에 재투자한다는 사실이 일본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했다"며 "그럼에도 한·일 양쪽에서 늘 찬사와 의심을 함께 받으며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려운 가운데 양국 경제 교류에 힘써준 신 명예회장의 타계는 큰 아픔과 손실"이라며 "그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기업인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애도했다.

말년엔 아들 간 분쟁에 휘말려 '시련'

80대 후반까지도 왕성히 활동한 고인도 말년엔 시련을 겪었다. 신 명예회장은 아흔 살이 되던 2011년 초 차남인 신동빈 당시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자신은 총괄회장이 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2013년 12월 서울 소공동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기력이 급속히 쇠진했다고 한다. 고인은 2015년 불거진 동주·동빈 형제 간 경영권 갈등에 휘말렸다. 또 배임 등 혐의로 3년 실형을 선고받는 과정에서 휠체어를 탄 채 재판정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는 '거인(巨人)'이라는 말을 좋아해, 야구단 이름도 '롯데 자이언츠(giants· 거인)'로 지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제 그 자신이 거인이 돼 무대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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