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별세] "큰일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어록으로 본 경영철학

조선비즈
  • 안상희 기자
    입력 2020.01.19 19:31 | 수정 2020.01.19 19:47

    "롯데와 거래하는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아야"
    "잘 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한다"
    "된다. 내가 꼭 이루겠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그가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이끌어낸 데는 자신 있는 업종을 선택해 동종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분야를 넘보지 않는 보수적인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생전 그의 말을 통해 경영철학을 짚어봤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롯데그룹 제공
    ◇ "롯데와 거래하는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아야"

    신 명예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는 기업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며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게 된다"고 말해왔다. 이같은 경영 원칙은 1990년대 후반 롯데가 IMF 사태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잘 모르는 사업에도 손 대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은 "잘 하지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롯데의 신규 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하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주위에서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업체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건의할 때 신 명예회장은 "무슨 소리냐,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며 일축했다.

    ◇ 모르는 사업은 안해… "우리의 전공분야를 해야"

    일본에서 사업을 먼저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조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게 꿈이었다. 그는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명예회장은 인사말에서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며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1973년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호텔롯데는 그의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신 명예회장은 이 사업에 경부고속도로 거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국제 수준의 호텔이나 관광 상품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며 관광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롯데호텔은 1988년 올림픽 당시 나라가 국제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데 일조한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젊은시절 모습(왼쪽)과 1989년 7월 12일 롯데월드 개관식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 /롯데그룹 제공
    ◇ "큰일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1983년 한 인터뷰에서 "껌은 23개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 1만5000종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 1만5000가지 제품의 특성과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가격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84년에는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서울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했다. 당시 롯데 임직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잠실에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된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며 소신을 밀어 붙였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잠실 롯데백화점을 기획하면서 "평창면옥에서 답을 찾으라" 지시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신세계나 미도파 매장의 3배 크기인 이 백화점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직원에게 신 명예회장은 "점심시간이면 평창면옥에서 5000~60000짜리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유는 단 하나.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라며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이후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했다.

    이 밖에도 신 명예회장은 백화점을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며, 선진국 수준의 백화점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017년 5월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118층 ‘스카이 데크’ 전망대를 찾아 주변 조망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휠체어 뒤쪽은 신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다. /롯데그룹
    ◇ "된다. 내가 꼭 이루겠다"

    2017년 롯데가 완공한 롯데월드 타워는 신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롯데월드타워는 신 총괄회장이 관광보국(觀光報國)을 내세워 대한민국 랜드마크 건설을 목표로 시작했다. 그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건축물을 조국에 남기고 싶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롯데는 1982년 해당 사업 추진 및 운영 주체로 ‘롯데물산’을 설립하고, 1988년 1월에는 서울시로부터 사업 이행에 필요한 부지8만 6000여㎡를 매입했다.

    하지만 롯데월드타워 프로젝트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건축허가까지 24년이 걸렸고 서울공항 비행 안전성 문제로 여론 반대도 심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특혜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초고층 사업은 천문학적 규모 자금이 소요되지만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신 명예회장은 "된다. 내가 꼭 이루겠다"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신 명예회장은 책임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된다. 한국 기업인은 과감하긴 한데 무모하게 보일 때도 있다"며 신중한 경영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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