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국가 채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상 처음으로 7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1~11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곳간이 크게 빈 이유는 정부가 씀씀이를 급속히 늘리는 반면, 세금은 덜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음에도 정부는 올해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을 역대 최고 수준인 62%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정책 전환 없이 돈 풀기에만 나섰다가 경기 부양 효과가 없으면, 또다시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쓸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 나랏빚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나랏빚 700조 돌파

기획재정부가 8일 발간한 '월간 재정 동향 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가 채무는 704조5000억원이었다. 전월 대비 6조원 증가한 것으로, 전년 말에 비해선 약 53조원 늘어난 규모이다. 국가 채무가 700조원을 넘어선 것은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국민 한 사람이 갚아야 할 나랏빚(국가 채무)은 1410만1322원에 달한다. 1인당 국가 채무는 2000년 237만원에서 2014년 1000만원을 넘은 뒤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기재부는 국채 발행으로 전월에 비해 국가 채무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를 떠받치기 위한 국채 발행이 결국 국가 채무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 채무는 과거부터 매년 늘어왔다. 문제는 속도다. 이명박 정부 시절(2008~ 2012년)에는 국가 채무가 5년 사이 297조9000억원에서 425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25조4400억원 늘어난 셈이다.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는 4년간 연평균 31조9750억원 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국가채무는 35조원 이상 늘어 600조원을 넘더니, 지난해에는 11월까지 전년(2018년)에 비해 무려 52조7000억원이 늘었다.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증가 추세다.

◇세금 수입은 3조 이상 줄어

빚만 쌓여가는 게 아니라 재정 건전성도 악화일로다.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지난해 1~11월 7조9000억원 적자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1~11월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적자 폭이다.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1~11월 45조6000억원 적자였다. 관리수지는 통합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지표다. 정부는 적자 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향후 전망은 어둡게 보고 있다. 한재용 기재부 재정건전성과장은 "세수도 증가하지만 재정 집행액도 증가할 전망이어서 정부의 재정수지는 당초 예상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는 이유는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까지 국세 수입은 276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조3000억원 줄었다. 총수입은 전년 동기보다 2조7000억원 늘어 435조4000억원이다. 같은 기간에 총 지출은 443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7조9000억원 증가했다.

◇정부는 돈 푸는 데 집중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올해 상반기 예산 조기 집행 목표를 역대 최고 수준인 62%로 설정하고 특히 국민 체감이 큰 일자리 사업은 1분기 안에 37%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예산에 60조원 국채 발행이 예정되어 있고 경기 불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어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 간다면 국가 재정 상황이 계속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