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교육 10살부터 ④

"수익율만 믿다 낭패"… 교육 부재가 만든 노인빈곤

"수익율만 믿다 낭패"… 교육 부재가 만든 노인빈곤

입력 2020.01.09 06:00

3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희망퇴직한 김정남(47·서울 영등포구)씨는 퇴직금 3억원을 주식과 펀드에 투자했다가 약 절반을 잃었다. 평소 금융에 관심이 없었던 김씨는 주식 투자를 오래 한 직장 후배의 조언을 듣고 5000만원을 투자했다. 투자 초반 수익을 얻은 그는 이후 1억원을 여러 주식에 분산투자했다. 지인이 투자한다는 펀드 상품에도 투자했다.

이후 주식과 펀드 모두 수익률이 반토막 났다. 주식과 펀드는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은행보다 훨씬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대규모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김씨는 “그동안 주택담보대출 상환만 신경 쓰다 보니 재테크는 전혀 하지 못했다”며 “갑자기 목돈이 생겨 어떻게 할지 몰라 지인 말만 믿고 투자했다. 자녀 교육비와 노후자금으로 써야할 퇴직금을 절반이나 날렸다”라고 했다.

/2019년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우리, 하나 은행 파생결합상품인 DLF·DLS 상품 피해에 대한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 및 호소문 발표'에서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융교육 부재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를 악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퇴세대들이 뒤늦게 평생 해보지 않은 재테크를 하다가 목돈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고령층 개인회생·파산 신청자가 급증한 것도 이런 은퇴세대들의 투자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젊은 시절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노후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은퇴할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융문맹으로 자라난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지 못한다. 노인 빈곤층 증가는 한국 경제의 큰 위험 요인이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교육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교육대상을 확대하고 이에 맞춰 교육내용도 대폭 손질해야 한다”며 “고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고, 직장인과 은퇴자를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들은 소위 ‘대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상품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원금 손실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잘나가는 상품에 몰려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투자자들은 금융사 불완전판매의 표적이 된다.

고령층의 경우 이런 유혹에 더 취약하다. 최근 불완전판매로 논란이 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역시 고령 투자자가 많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DLF 가입자 가운데 60~70대가 70%에 달했다. 60대 이상이 48.4%(1462명, 3464억원)이며, 70대 이상이 21.3%(643명,1747억원)였다. 동양 기업어음(CP) 사태나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피해자도 대부분이 60~70대였다.

일러스트= 정다운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식투자도 계속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말 결산 상장법인 2216곳의 주식투자자(개인실질 주주 기준·중복주주 제외)는 총 555만6000명이었다. 60세 이상 주식투자자는 2008년 말 46만4000명에서 2018년 말 114만3000명으로 146.4% 늘었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보통 20~30대에는 종잣돈 마련을 위해 안정적인 투자를, 40~50대에는 공격적인 투자를, 60세 이상에는 다시 안정적인 투자를 권한다”며 “고령층의 공격적인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금융지식이 부족해 수익률만 보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뒤늦게 고위험상품에 투자하다 보니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소중한 노후자금을 날리는 안타까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법원에 개인·프리 워크아웃(채무조정)을 신청한 60세 이상 고령층은 5451명으로 4년 전(2911명)보다 87%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파산 신청자는 22% 줄었으나, 60대 이상에서는 2% 늘었다.

빈곤층으로 내몰린 노년층은 불법 사금융을 찾는 악순환을 겪는다. 금감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성인 5000명을 심층 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2018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성인 인구(4100만명)의 1%인 41만여명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이 41.1%로 가장 많았다. 이는 2017년(26.8%)에 비해 14.3%포인트 급증한 수치다.

/그래픽=정다운

한국의 노인 상대빈곤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2.2%다. OECD 평균(13.5%)의 3배에 달한다. 정부와 언론에서 노후 준비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 금융소비자들은 시큰둥하다.

금융위원회가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 운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가입자 10명 중 9명은 퇴직연금 가입 초기에만 상품 운용방식을 결정하고 이후에는 변경 없이 방치하고 있었다. 노후·은퇴대비 재무계획에 대해서는 성인 중 ‘자신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31.1%로 ‘자신 있다’(16.3%)는 응답자를 크게 웃돌았다.

노년층의 금융문맹은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할 노후대비 자금에 손실을 입히고, 결국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인빈곤율이 완화되지 않을 경우 향후 빈곤한 고령층이 전체 인구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소비가 감소하고 안정적인 내수 기반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높은 노인 빈곤율은 노동생산성 하락과 구조적 소비 둔화 등을 유발해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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