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영혼을 팔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절실했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몽촌토성역 인근 본사에서 만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나도 창업자인데 번듯하게 증시에 상장해 종도 한번 치고 기념사진도 찍고, 그런 명예로운 순간을 누리고 싶은 욕심이 왜 없었겠느냐"며 처음으로 회사 매각 이유를 털어놨다. 그는 "지금 배달의민족(음식 배달 앱·이하 배민)이 잘나간다고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3년 뒤 냄비 속 개구리처럼 한국에 고립돼 서서히 생명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고도 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지난 26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그는 "배달의민족을 판 게 아니라 판을 키운 것"이라며 "딜리버리히어로와의 합병 후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소비자 1100만명이 매달 서너 번 배민에서 치킨, 짜장면 등을 시켜 먹는다. 연간 8조원어치 배달 음식이 이곳을 통한다. 그런 배민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팔렸다. DH는 배민의 가치를 40억달러(약 4조7000억원)로 평가했다. 2010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시작해 성공 신화를 쓴 한국의 대표 유니콘 기업이 독일 회사에 팔리자 네티즌들은 "배달의민족이 게르만 민족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절체절명 위기였다. (회사 매각으로) 내가 가져가는 돈은 한 푼도 없다"며 "소상공인이 우려하는 수수료 인상은 진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왜 배민을 팔았나.

"팔았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매각은 경영진이 바뀌고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지만 이건 다르다. 경영도 그대로고 구조조정도 없다. 오히려 독일과 우리가 합쳐 판을 키우는 합병이다. 배민의 투자자 지분(87%)은 독일 DH가 인수하지만 나를 포함한 경영진 지분(13%)은 4년 후 독일 본사 주식으로 교환한다. 당장 내가 가져가는 돈은 없다. 아시아 시장은 내가 맡고, 동유럽·중동·남미 등은 독일 DH가 맡는다. 규모로 보면 반씩 나눈 정도다."

―합친 이유는 뭔가.

"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배민이 절체절명 위기라고 판단했다. 2018년 영업이익이 500억원 정도 났을 때 '아,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경쟁자는 독일 DH의 한국 지사가 운영하는 요기요·배달통이었다. 그런데 그해 말 DH는 자국 음식 배달 사업을 네덜란드에 1조원에 팔더니, 그 돈을 한국에 쏟아부었다. 결국 작년엔 영업이익을 못 냈다. 한국에서 싸우다 보니 해외로 나가는 시점을 놓쳤고, 그사이 해외 여기저기엔 경쟁사 깃발이 꽂히고 있었다. 국내 최고 인터넷 기업 가운데 한국에서만 잘나가다가 망한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한국에서만 잘한다고 생존할 수 없다. 혼자서 끝까지 한국 시장을 막는 전쟁을 할 거냐, 덩치를 키워 밖으로 나가 세계시장을 먹느냐는 선택이었다."

―배민은 해외로 진출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중국, 일본 두 군데 나갔다가…. 많이 배웠다. 2~3년 뒤엔 해외 진출은커녕 한국 시장이 해외 자본 공세에 맞닥뜨릴 거다. 음식 배달 시장 잠재력에 대해 해외 자본이 눈뜨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미국 도어대시·우버이츠, 싱가포르의 그랩푸드에 투자해 북미와 아시아 시장을 먹고 있다. 한국에도 쿠팡에 투자했고 쿠팡이츠로 한발 들여놨다. 유럽 시장을 휩쓰는 네덜란드 테이크어웨이와 영국 저스트잇도 합병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3파전인데, 마지막 남은 해외 자본이 남아공 내스퍼스(시총 550조원인 중국 텐센트 지분 31%를 가진 대주주)가 대주주인 독일 DH였다. DH로선 한국에 수천억을 쏟아부어도 배민이 끄떡없자 아예 '배민에 아시아 시장 공략을 맡기자'는 역발상을 했다."

―독일 측이 아시아 시장을 맡겼는데.

"음식 배달은 '푸드 이커머스'로 진화할 것이다. 단순히 치킨 배달이 아닌 검색(구글·네이버)과 이커머스(아마존)에 이은 다음 세대가 푸드 이커머스다. 이커머스는 사륜(四輪·네 바퀴) 배달이지만 푸드이커머스는 이륜 배달이다. 이커머스는 특정 시간대 주문 집중이 덜하지만, 배달은 식사 시간대 주문이 폭주한다. 배민은 주말에 분당 처리 요청 수(rpm·request per minute)가 평균 3000~5000인데, 150배가 일시적으로 몰려도 처리한다. 한꺼번에 최다 47만건 처리한 적도 있다. 4년 안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두 배 성장하는 게 목표다."

―배민식(式) 마케팅이 먹힐까.

"배고플 때 '배민'을 떠올리게 하는 게 우리 브랜드 전략이다. 할인 쿠폰을 주거나, 싸다는 선전은 일차원이라, 소비자는 혹했다가 금방 잊는다. 아시아 지역별로 소비자 습관과 생활 방식을 세세히 파악해 전략을 펼 생각이다. 예컨대 베트남에선 대상을 20대 여성으로, 그것도 호찌민시의 명동·종로 같은 1·3군 지역에 한정해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신 깊게 들어간다. 필요에 따라 돈으로 밀어붙여야 할 땐 무식하게 밀어붙일 거다."

―일본 시장도 들어가나.

"실패의 쓴맛을 본 일본이지만 다시 들어간다. 뭐랄까, 설렌다고 말해도 되나. 그때와 지금의 우린 다르다. 일본에서 철수하면서도 법인은 살려놨고, 매년 2~3번 일본 시장을 계속 조사했다."

―4조원 넘는 기업 가치가 화제다.

"(최근 매각된) 아시아나항공의 2배라더라. 근데 미국이나 중국을 봐라. 인터넷 기반 회사가 시총 상위권을 휩쓴다. 유독 한국은 인터넷 기업 가치를 낮게 본다. 합병 발표 후, 독일 DH의 주가가 크게 뛰었다. 독일 주식 투자자들은 좋은 가격에 샀다고 본 것이다."

―이젠 샐러리맨 경영자가 됐다.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았다. 자식한테 물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김 대표는 중학생·초등학생 딸 둘에 돌 지난 아들 하나를 뒀다.) 회사가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나 역시 오너라기보단, 회사에 충성하는 조직원 중 하나다. 창업은 했지만 내가 회사를 지배할 순 없다. 창업자가 꼭 1대 주주라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3~4년 전 투자받을 때 이미 최대 주주가 아니었다. 회사는 창업자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렸다."

―시장에서 '배민다움'을 성공 비결로 꼽는다.

"배민다움은 일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카페처럼 시끌벅적한 장소라야 한다. 직원은 모두 동등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선 나를 포함해 똑같이 줄 선다. 하지만 의사 결정은 의사 결정자가 내리고 그 후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규율이 중요하다. 자율주행차를 자유주행차로 부르지 않는 이유를 아나. (마음대로 가는) 자유주행차를 탔다간 다 죽는다. 신호를 지키는 차, 그게 자율주행차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