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여기 테슬라 주세요."

"태진아 주세요."

2019년 전국 식당과 술집에선 이런 말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테슬라는 맥주 '테라'와 소주 '참이슬'을 합친 말이고, 태진아는 테라와 소주 '진로이즈백'을 더한 신조어다. 공통점은 테라가 포함됐다는 것. 메가 히트 상품이 실종된 2019년 유통업계에서 하이트진로의 테라는 '대박 상품'으로 통한다. 지난 3월 출시 이후 279일 만에 약 4억5600만병(330mL 기준) 판매를 기록했다.

"겨울에 이렇게 바쁜 건 10년 만"

테라가 생산되고 있는 강원도 홍천 하이트진로 강원공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병 선별기'였다. 분당 650병의 속도로 하이트진로 병과 타사 병을 구분했다. 다른 업체의 제품은 이따금 눈에 띄었고, 대부분은 테라 병이었다. 공장 관계자는 "테라 출시 전에는 타사 병이 정말 많았는데, 테라가 나온 뒤 풍경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강원도 홍천의 하이트진로 강원공장에서 테라가 생산되는 모습. 공정별로 설치된 초고속 카메라와 함께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직원들이 불량을 잡아낸다. 한 공장 직원은 "테라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테라 생산 공정은 대부분 자동화돼 있었다. 생산 공정에 투입된 직원은 20명이 전부. 이들의 관리·감독하에 공장을 찾은 날에만 84만병의 테라가 생산됐다. 이준호 파트장은 "겨울철에 이렇게 바쁜 건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실제 테라는 출시 당시 목표였던 두 자릿수 점유율을 3개월 만에 달성했고, 11월에 이미 연 판매 목표의 약 2.5배 이상을 판매했다. 생산 공장 밖으로 나오자 108개의 탱크가 보였다. 공장 관계자는 "대부분 테라가 보관돼 있다"며 "성인 1명이 매일 5000mL씩 328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맛, 디자인에 입소문까지

눈만 돌리면 있는 편의점 어디를 가도 수많은 수입 맥주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테라가 성공한 비결은 뭘까. 하이트진로는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우선 '맛'이다. 테라는 기획 단계에서 자연주의, 친환경, 청정 등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호주 내에서도 깨끗한 공기와 풍부한 수자원에 더해 보리 생육에 최적의 일조량과 강수량으로 유명한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을 찾았다"고 말했다. '리얼 탄산 공법'도 사용했다. 통상 맥주는 상업용 탄산을 주입하는데, 테라는 발효 공정에서 나온 탄산을 따로 포집해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다. 유지훈 품질관리파트장은 "피부 이식으로 따지면 자가 피부만을 이식한 것과 비슷하다"며 "거품이 조밀하고 탄산이 오래 지속되는 건 리얼탄산 공법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성공 비법은 독특한 디자인이다. '청정 라거'라는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초록색을 브랜드 색깔로 정했다. 병 어깨 부분에는 토네이도 모양의 패턴을 적용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휘몰아치는 라거의 청량감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진 하이트진로가 기획했던 성공 비결이었다. 테라의 대박 행진에는 한 가지 비결이 더 있었다. 바로 '입소문'이다.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국내 폭탄주 문화에서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 '구름처럼(클라우드+처음처럼)' 등 폭탄주를 손쉽게 주문하는 신조어가 어김없이 생겼다. 테라 출시와 동시에 증권가 토론방에 누군가 '테슬라(테라+참이슬)'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 전기차 회사로 잘 알려진 단어라 확산 속도가 빨랐다는 평가다. '테슬라'는 서울 여의도와 강남에서 먼저 회자된 후,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퍼졌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우리가 만든 단어가 많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테슬라라는 단어가 히트를 쳤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경제 보복으로 일본 맥주 불매 운동이 일어난 것도 테라의 대박 행진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