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길 막혔는데 전세 수요는 폭발… 연쇄 '전세 대란' 불보듯

입력 2019.12.19 03:07

[12·16 대책 후폭풍]

양도세 감면 실거주 요건 강화… 집주인들 전세 준 집에 돌아오고
서울 새 아파트 공급도 급감, 전세매물 구하기 점점 어려워져
자녀교육 때문에 이사 가려도 9억 넘는 집 있으면 전세대출 안돼

서울 마포구에 아파트 한 채(77㎡)를 보유 중인 직장인 김모(45)씨는 지난 16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보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최근 실거래가가 8억5000만원 수준인 아파트를 2억9000만원에 전세 내주고 여기에 대출을 합쳐 내년 2월 목동에 있는 7억8000만원짜리 전세로 이사하려고 계약까지 마쳤는데, 자칫하면 전세 자금 대출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12·16 대책에서는 9억원 넘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1주택자라도 전세 자금 대출 보증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김씨는 "대출을 신청할 내년 1월에 시세가 9억원을 넘으면 대출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전세 잔금을 못 내 계약금을 날리거나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년 말 서울 강북 지역 아파트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둔 30대 직장인 이모씨도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에 1주택자들도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는 장기 보유 특별 공제 혜택을 많이 받으려면, 그 집에 오래 거주해야 하는 요건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전세 시장에 불똥 튄 12·16 대책

정부가 지난 16일 과열된 집값을 잡기 위해 꺼내 든 초강수 부동산 대책의 불똥이 전세 시장으로 튀고 있다. 갭 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봉쇄하기 위해 전세 자금 대출까지 옥죄면서 임대료 마련 계획에 차질이 생긴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는 매매·전세 대출을 옥죄었고 집주인들의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며 보유세 부담도 늘렸다. 이로 인해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집 공급은 더욱 부족해지고 안 그래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전세 가격이 더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승폭 커지는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 그래프
/그래픽=김성규

이미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지난 7월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최근 상승 폭이 더 커지고 있다. 1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직전 일주일보다 0.14% 올라, 2015년 12월 셋째 주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지난 11월 자사고·특목고 등의 폐지와 정시 확대 발표 이후 학군 인기 지역인 강남구와 양천구 등에서는 전세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양천구 목동5단지 등에서는 지난 두 달 사이 전세 가격이 최고 5000여만원 올랐다.

전세 시장이 안정되려면 기본적으로 공급이 늘어나야 하는데, 공급은 도리어 제한되고 수요만 늘어나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미 서울 전세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데, 정부 정책 때문에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KB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 수급 지수는 150.7로, 2017년 6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이 지수는 100을 넘어설수록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전셋집 공급 감소로 전세가 상승 우려

12·16 대책에서는 1가구 1주택자의 장기 보유 특별 공제 거주 기간 요건이 추가되고, 조정 대상 지역 내 등록 임대주택도 양도세를 면제받기 위한 2년 실거주 요건이 생겼다. 집주인들로서는 세금 혜택을 보기 위해 전세를 내주던 집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인기 지역 전셋집 매물이 시장에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입지 좋은 지역의 집이 소유자 처지에서 살기 좋기 때문에 양질 전세 물량이 먼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향후 입주 아파트가 줄면서 전세 물량 감소도 예정돼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4만2012가구인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21년에는 2만1939가구로 줄어들 예정이다. 전세 공급 측면에서 보면 신규 입주가 줄고 기존 물량도 잠기는 '이중 족쇄'가 채워지는 셈이다.

반면 전세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택 담보대출 규제로 구매력이 줄어든 잠재 매수자들이 당분간 임차 시장에 머물면서, 학군·교통 등이 우수한 지역이나 신축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전세 가격이 국지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율 인상, 공시가격 현실화로 보유세가 늘어난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세금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40대 장모씨는 "최근 집주인이 종부세가 너무 많이 나왔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며 전세금 2000만원을 올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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