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분노… "내집 마련 사다리, 정부가 아예 불살라버려"

조선일보
  • 채성진 기자
    입력 2019.12.18 03:17

    [12·16 대책 후폭풍]

    40·50대에 청약가점 밀려 청약 포기했는데… 대출규제 직격탄
    "집 살 수도, 갈아탈 수도 없게 됐다" "개천에 눌러앉으란 얘기"

    17일 직장인 이모(34)씨는 "어제 정부 부동산 대책을 듣고 내 집 마련 계획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전셋집에 사는 이씨는 "청약 가점도 낮아 분양에 당첨될 가능성도 낮은 데다 대출까지 막히면 전세살이를 벗어나긴 정말 힘들 것"이라고 했다. 남편과 두 딸 등 4인 가족인 이씨는 그동안 동대문구 L아파트 등의 청약에 나섰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는 "4인 가족이 살려면 그래도 30평대 아파트는 필요한데, 그런 아파트는 대부분 10억원이 넘어가 나로서는 대출 없이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서울 양평동에 전용면적 84㎡(33평형)짜리 아파트를 마련한 직장인 이모(31)씨는 "'첫 집이 끝 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주택담보대출 3억원을 받아 7억2000만원에 산 집이다. '마이 홈' 대열에 합류했지만 "딱 여기까지인가 싶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지만 매달 대출금 250만원에 아이 돌보미 비용과 생활비를 내고 나면 100만원 저축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대출이 막히면 더 큰 집으로 갈아타는 것은 생각조차 어렵다고 했다.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30대들이 들끓고 있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고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높이겠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실제로는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이른바 실수요자들인 30대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인생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 시가 9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비율을 더 강화하고,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아예 주택 구입용 담보대출을 금지했다. 당장 "손발이 묶였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부동산 관련 세금이 늘어 월급쟁이 살림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 10월 아파트 연령대별 매입 비율 그래프
    /그래픽=김성규

    청약 시장에서도 밀려난 30대들은 "탈출구가 안 보인다" "인생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고 하소연 중이다. 분양가 상한제 여파로 공급 감소를 우려한 수요가 대거 몰리면서 최근 청약 경쟁률은 수백 대 1까지 치솟았다. 당첨 점수는 60~70점에 달한다. 3인 가족 30대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가점(52점)으론 엄두를 낼 수 없다. 위기감에 휩싸인 30대 '청포자(청약 포기자)'들은 대출을 지렛대 삼아 내 집 마련 전략으로 선회했다. 지난 7월부터는 40·50대를 제치고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입했지만, 앞으로 대출 통로가 꽁꽁 막히면서 '패닉'에 빠졌다. 보유세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대기업 차장 최모(35)씨는 "월급 받아 사는 외벌이 1주택자들에겐 몇십만원도 큰돈"이라고 했다.

    "사다리 놔준다더니, 불살라버렸다"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와 카페에는 울분을 토로하는 30대의 게시 글과 댓글이 잇따랐다. "정부가 계층 간 사다리를 놔준다더니 불살라버렸다" "어설프게 돈 있으면 서울 변두리나 가란 얘기냐" 같은 비난이 많았다. "신분 상승 꿈꾸지 말고 '개천'에 눌러앉으라는 것" 같은 자조적인 얘기도 나왔다. 최근 조국 사태 등에 불만이 컸던 이들은 "학교도 직업도 모두 실력이 아닌 음서(蔭敍) 제도인 나라. 이젠 부동산마저…"라며 씁쓸해했다. 한 30대 직장인은 "주말마다 '임장(현장 답사)' 갔는데,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싶다"고 했다.

    정부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초고가' 아파트로 규정한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실수요자가 자기 소득 수준에 맞춰 살고 싶은 집을 사려는 게 죄가 되냐"는 비판이다. '괜찮은 아파트 한 채'를 갖겠다는 꿈을 매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 전체 아파트 125만1791가구 중 15.7%(19만6201가구)가 대출을 아예 못 받는 15억원 이상이다. 강남 3구인 강남(70.9%)·서초(67.4%)·송파(46.7%) 지역 비율이 높지만, 용산(36.8%)과 마포(6%) 상당수 아파트도 15억원을 넘는다. 대출 규모가 줄어드는 9억원 초과 서울 아파트는 전체의 36.6%(45만8778가구)다.

    이 때문에 이번 대출 규제가 전형적 '총선용 정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9억원 이상이 고가 주택이라는 데 반발 여론이 생기자 15억원 초과 주택을 '초고가 주택'으로 새롭게 지정해 서민들에게 '부자를 때리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심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