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별세] '원칙' 경영 강조한 전직 '호랑이선생님'…재계 큰 어른 떠났다(종합)

조선비즈
  • 연선옥 기자
    입력 2019.12.14 14:20

    25년간 회장으로 그룹 이끌고 국내 처음 無故 승계
    석유파동 극복하고 금성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

    LG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발판을 마련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이 1969년 12월 31일 62세로 타계하면서 LG그룹 2대 회장에 올라 25년 동안 그룹을 이끌었다. LG그룹은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1950년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 이사로 입사해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기술입국(技術立國)’을 강조하며 ‘원칙’을 최고의 경영가치로 삼아 그룹을 이끌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 등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선진 경영을 위한 혁신을 통해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고 우리나라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냈고,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했다.

    구인회 창업회장 흉상 앞에 선 고 구자경 명예회장./LG그룹 제공
    ◇직접 가마솥에 불 지켜 크림 만들며 현장 배워

    진주사범학교를 마친 구 명예회장은 학교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지냈지만, 1950년 부친의 부름으로 교편을 놓고 기업인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입사 후 럭키크림 생산을 담당했다.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었고, 제품을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가기도 했다. 배달 과정에서 뚜껑이 깨지는 일이 자주 생기자 플라스틱 크림통 뚜껑을 개발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집 뜰에 있는 가마솥에 베이클라이트나 요소수지 등의 원료를 녹이면서 직접 실험하기도 했다.

    당시 플라스틱 가공 경험은 훗날 금성사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구 명예회장은 플라스틱 가공에 핵심인 자체 금형 기술 확보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때 축적된 금형 역량을 바탕으로 라디오, 선풍기, 모터 등 전자제품의 금형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구 명예회장은 십수 년 공장 생활을 하며 ‘공장 지킴이’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구인회 창업회장은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수 없는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를 게 없다"며 현장 수업을 고집했다.

    구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려면 뛰어난 기술자가 많아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 지식과 지혜를 결합해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구 명예회장의 지론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회장 재임 동안 설립된 연구소는 70여개에 이른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제품 국산화를 통해 산업 고도화를 선도할 것이고, 부단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업 활동의 질적인 선진화를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990년 구 명예회장(가운데)이 금성사 고객서비스센터를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는 모습./LG그룹 제공
    구 명예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 덕분에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많은 가전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국내 최초 민간기업 상장·해외 공장 짓고 합작 경영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질적 성장을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구 명예회장은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 기업을 공개했다. 당시 기업공개는 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부 임원들 역시 기업공개를 반대했다. 하지만 구 명예회장은 기업공개가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수 단계라는 믿음을 꺾지 않았다.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 설립을 주도하고 글로벌 기업과 합작 경영을 추진한 것도 구 명예회장이었다. 금성사는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州)의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는데 이는 국내 기업이 최초로 설립한 해외 생산기지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한국 기업이 미국 사회에서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고,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은 성공적인 해외 진출 케이스로 헌츠빌 공장을 연구했다.

    구 명예회장은 독일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선진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빠르게 습득했고, LG는 세계 중앙으로 활동 무대를 확장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합작 사례는 1966년 시작한 호남정유와 미국 칼텍스와 합작이다. 양사는 상생과 조화를 통해 한치의 잡음 없이 합작경영을 이어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계열사 사장들이 ‘자율과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LG의 ‘컨센서스(Consensus) 문화’를 싹 틔웠고 ‘고객 중심 경영’을 표방했다. 구 명예회장이 주창한 ‘자율과 책임경영’은 고객과 사업을 잘 아는 전문경영인이 권한을 갖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파격적인 경영 개념이었다.

    1999년 LG화학 여수공장을 방문해 시설을 살피고 있는 구 명예회장./LG그룹 제공
    구 명예회장은 평생을 두고 인재 확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해 인재를 육성했다. 그룹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인재 양성기관 ‘LG인화원’을 설립하며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백년대계를 다지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말했다.

    ◇"경영혁신 끝 없다…권위주의 멀리하라" 당부

    구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였다.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은퇴 후 구 명예회장은 자연인으로서 여생을 보냈다.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분야에도 열의를 쏟았다. 부친이 1969년 설립한 LG연암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젊은 교수들이 해외에서 견문을 넓히고 연구에 매진하도록 해외연구 지원 사업을 펼쳤다.

    구 명예회장의 가치관과 경험은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이 2018년 5월 20일 숙환으로 별세할 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1995년 회장직을 승계할 때 구 명예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혁신은 끝이 없다. 자율경영의 기반 위에서 경영혁신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그룹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를 형성해 합의에 따라 일을 추진하라. 권위주의를 멀리 하라"고 당부했다.

    슬하에 장남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두었다. 부인 고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했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동동구리무부터 家電·화학까지… '럭키 신화' 만들다 신은진 기자
    어린 학생들 멀미약까지 챙겨주던… 무섭지만 따뜻했던 호랑이 선생님 신은진 기자
    [구자경 별세] 장례 이틀째 이재용·허창수 등 재계 추모행렬(종합) 이재은 기자
    故구자경 회장 장례 이틀째, 허창수 GS회장 등 조문행렬 이재은 기자
    허창수 “구자경 회장, 한국 산업화 기틀 만든 기업가" 애도 이재은 기자
    범LG家 '비공개 가족장'… 손자 구광모 회장 빈소 지켜 안소영 기자
    [구자경 별세] 재계 애도..."고인의 기업가 정신 이어받겠다" 박현익 기자
    [구자경 별세] '비공개 가족장'…오후 5시부터 조문 박현익 기자
    [구자경 별세] "사람이 곧 사업" "혁신 종착역 없다" 울림 주는 故 구자경 어록 연선옥 기자
    [구자경 별세] 대한민국 이끈 재계 1·2세대, 역사 속으로 안소영 기자
    [구자경 별세] 사진으로 보는 94년 생애 이재은 기자
    "흥하는 곳 인재 많고, 쇠하는 곳 인원 많다" 故구자경 말말말 연선옥 기자
    [구자경 별세] 농업전문 연암대 설립...은퇴 후 버섯 재배 등 농사에 열중 이재은 기자
    글로벌 LG그룹 도약시킨 故 구자경 명예회장 연선옥 기자
    [구자경 별세] '강토소국 기술대국' 강조, 매출 260억→30조로 증가, 글로벌 LG 도약시켜 연선옥 기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별세...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이윤정 기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별세… 향년 94세 이윤정 기자
    옛 친구 삼성-LG… 故구자경 회장 빈소 찾은 이재용 부회장 이재은 기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