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실례지만 '계속' 혼자 있겠습니다

입력 2019.12.13 07:00 | 수정 2019.12.13 08:57

김지수 디지털편집국 문화전문기자
2년 전 겨울, ‘실례지만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라는 칼럼을 썼다. 시작은 이렇다. ‘시끌벅적한 tvN 예능 ‘강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던 나영석 PD는 잠시 짬이 나자 밖으로 나갔다. ‘잠시 혼자 있겠다'며.’ 그 모습을 보고 무릎을 쳤다. 나영석 예능의 핵심은 ‘함께 있음'과 ‘혼자 있음'의 균형이다.

인간 생물을 낯선 여행지에 부려놓고 그 자급자족의 반응을 따뜻하게 관찰해온 이 ‘예능 천재'는, ‘삼시 세끼'나 ‘윤식당'의 극적 편집을 통해 ‘함께 있는 기쁨’이 커지려면 반드시 홀로 있는 ‘격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곤 했다.

칼럼은 과도한 스마트폰 연결 사회에서 ‘은둔의 시간’을 예찬한 작가 마이클 해리스의 책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에서 시작해, 하버드 출신의 스타트업 기업가들이 만든 도심 속 오두막 ‘겟어웨이’, 혼자 놀기의 달인인 최재천 교수와 소설가 김훈의 생산적 고립을 지나,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에서 경험했던 2박 3일간의 나 홀로 수도 생활을 전하며 끝을 맺었다.

경험해보니 ‘혼자 있음’은 뻑뻑해진 관계의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영혼의 공기청정기였다. 황홀한 침묵을 배경으로 수도원의 서가에서 읽은 몇 권의 책과 새벽에 깨어 홀로 묵상하던 한 덩어리로서 육체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짧더라도 주기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면 확실히 기운이 살아나고, 인식이 날카로워지고, 창조성이 깊어진다. 결정적으로 혼자 있고 난 뒤, 우리는 타인에게 더 나은 동료가 될 수 있다.

혼자 사회가 도래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고 한 파스칼의 팡세가 출간된 지 딱 350년이 되는 해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고 세상은 계속 변해갔다. 마침내 ‘혼자'의 세계는 급속도로 진화되어 이제는 ‘실례지만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가 아니라 ‘실례지만 계속 혼자 있겠습니다'의 세상이 도래했다. 바야흐로 ‘혼자들'의 시대다.

‘강식당'과 ‘윤식당'을 만들던 나영석PD는 지금 tvN에서 ‘라끼남(라면 끼리는 남자)’을 만들고 있다. 등장인물은 강호동 한 사람. 강호동은 이수근도 은지원도 없이 혼자서 지리산을 오른다. 생애 최고의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서. 다들 알겠지만, 같이 먹을 때도 맛있지만 혼자 먹어도 맛있다.

MBC 김태호PD도 유재석과 ‘놀면 뭐 하니?’라는 1인용 무한도전 프로젝트를 실험 중이다. 유재석은 트로트에 도전했고, ‘송가인을 넘보며’ 1인 크리에이터로 도약 중이다.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KBS ‘아침마당'에 이어 SBS ‘영재발굴단'에도 초대돼 본의아니게 지상파 대통합을 이뤄냈다. 홀로 가벼워진 유재석은 더 가뿐하게 장르와 경계를 초월 중이다.

어울려보면 안다. 같이 잘 놀던 사람은 혼자서도 잘 놀며, 혼자서 잘 놀던 사람은 타인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아 여럿이도 잘 논다. 말하자면 지금의 혼자는 히끼꼬모리나 왕따가 아니라, 나와 남의 경계를 알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눈치 빠른 개인이다.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안정된 애착의 소유자다.

그들에게 혼밥, 혼영, 혼행, 혼술, 혼일은 궁상이 아니라 효율이자 미학이다.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은 좋은 음식 먹을 때, 멋진 풍경을 볼 때… 그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더 깊게 느낄 줄 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재능은 생존의 힘이며, 그 경험은 소셜미디어의 사진과 글로 더 공감을 얻는다. ‘1인'이라는 단위는 ‘연결'이라는 엔진을 장착하면서 무한대가 된다. 혼자 느끼되 같이 느끼는 ‘인터스텔라'의 풍경이다.

김태호PD와 함께 시작한 1인용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거듭난 유재석. 홀로 가벼워진 유재석의 예능 인생은 예측불허로 다이내믹하다.
그뿐인가. 혼자 있음으로 자기만의 콘텐츠와 에너지가 비축된 개인은,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열광할 준비도 되어 있다. 좋은 브랜드, 좋은 콘텐츠, 매력적인 인간에 대한 변별력 있는 열광이다. 그것이 극성팬이 ‘빠순이'가 아니라 BTS의 오늘을 만든 파워풀한 ‘아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면 훈련된 소비자이자 기동력 있는 생산자이며, 예민한 시민인 그 ‘혼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빅데이터 분석기업 다음소프트의 생활관측소가 펴낸 책 ‘2020트렌드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효율이 보장되면 인간은 매력을 원한다. 삶의 효율은 충분히 높아졌고 이제 매력의 질을 논할 때가 되었다. 매력의 질을 올리는 것은 시스템이 담보하는 빠름과 간편이 아닌 스타일이 풍기는 감수성과 철학이다.’

정답처럼 요즘 독자들은 인공지능의 큐레이션보다 독립서점 주인장의 초이스에 더 열광한다. 교보 문고 알고리즘보다 믿을만한 인간이 쓴 손글씨에서 ‘더 나은 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셀린의 디렉터인 피비 파일로가 그만두자 소비자들이 올드셀린 계정을 만들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팬들은 셀린이라는 브랜드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보여주던 피비 파일로라는 개인에 열광했던 것.

그리하여 이 ‘혼자들'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것이 상품이든 조직이든 콘텐츠든, 무엇이든 간에 그 중심에 ‘균형 잡힌 좋은 인간’을 놓는 것이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를 쓴 대니얼 코일도 디즈니 픽사, 구글 같은 창의적 조직의 집단 지성은 무엇이든 발언할 수 있도록 존중 받은 ‘잠재력 강한 개인’으로 부터 나온다고 했다. 강해지려면 혼자 있으라. 혼자 있으면서 함께 있으라. 요행인지 우연인지 나는 올해 4월부터 문화전문기자로 혼자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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