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올해 예비엔진 19대→30대로 늘려
1대당 300억원…올해 3300억원 이상 지출한 셈
"신규 기종을 20대 이상 들일 때 가능한 계획"

최근 엔진 결함 문제가 잇따라 발생한 아시아나항공(020560)이 올해에만 예비엔진 11대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나가 보유한 예비엔진 30개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한다. 지난해 보유분 대비 50% 이상 늘린 것으로, 새 비행기 도입 대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예비 엔진 확보에 나선 이유를 놓고 항공업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 항공은 지난해 20개 수준이었던 예비 엔진을 올해 30개 수준으로 늘렸다. 엔진은 항공기 부품 가운데 가장 고가에 속한다. 엔진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교체하는 비상 용도로 보관하기 때문에 통상 항공기 보유 대수 대비 일정 비율로 갖춰놓는다.

항공업계가 아시아나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것은, 뚜렷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항공기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예비 엔진 보유 물량을 늘릴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엔진을 한 해에 대량 구매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예비엔진 11대를 한 해에 도입하는 건 신규 기종을 20대 이상 들일 때나 납득 가능한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18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미국 LA로 향하려던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항공기가 그을린 모습.

항공사는 새로운 기종을 도입할 때 일반적으로 엔진 별로 10% 안팎의 예비엔진을 마련해놓는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항공기 86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올해 도입한 기체는 에어버스 A321NEO(네오)와 A350 등 5대다. 이 경우 예비 엔진을 한 개 정도 더 갖춰두는 게 항공사 관행에 맞는 셈이다. 국내 항공사들의 올해 예비 엔진 신규 도입 규모는 한두 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에 대해 ‘항공기 안전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예비엔진 30대 중 11대를 올해 도입했다"며 "올해 신규 기재를 여러 대 도입하면서 새로운 엔진을 들여왔으며, 안전 강화 차원에서 정비 투자를 늘린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제작된 지 20년이 지난 경년 항공기가 전체 항공기의 23%에 달하는 입장에서 안전에 대한 고객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기자재 투자를 늘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아시아나의 재무 상황이 예비 엔진 대량 구매에 나설 만큼 여유롭지 않은 데다, 매각 절차를 밟는 상황에서 이익을 대폭 깎는 조치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항공기 엔진은 1개당 300억원이 넘는 고가 기자재다. 11기를 들여오면서 일부는 리스 방식을 쓰긴 했지만, 사실상 올해 3300억원이 넘는 돈을 예비엔진 구매에만 쓴 셈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7조1800억원의 매출을 거둬 2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 상반기에는 3조4700억원 매출에 1170억원 영업손실을 입었다. 통상 5년 정도인 감가상각 기간에 맞춰 3300억원을 정액법(감가상각 연수에 균등하게 나누어 비용을 처리하는 방법)을 적용할 경우, 올해 추가 비용 지출은 600억원이다. 엔진을 대량으로 구매하면서 손실 폭을 키운 셈이다.

게다가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앞두고 부채비율을 낮출 필요가 컸다. 아시아나의 자산은 11조원인데, 부채가 9조6000억원에 달한다. 자기자본은 1조4000억원에 불과하다. HDC현대산업개발(294870)과 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서면서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 31.05%에 대해 3000억원대 초반으로 가격을 매긴 데에는 이러한 재무적인 리스크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예비 엔진 도입이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는 점도 의문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항공기 부품·정비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한 관계자는 "정비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우선순위는 연식이 오래된 항공기 정비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고가인 엔진을 한꺼번에 들이는 것은 예산이 넉넉한 상황에서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해에 10대가 넘는 엔진을 구비하는 것은 새로 생긴 항공사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했다.

한편 아시아나의 조치가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 저비용항공사(LCC) 관계자는 "엔진 결함 문제가 계속 언급되는 데 대한 대응 차원일 것"이라며 "안전성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예비엔진 보유 대수를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엔진 문제가 계속 부각될 경우, 매각 가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3000억원을 지출해서라도 운항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까지도 영국 롤스로이스사가 제조한 엔진에서 발생한 결함으로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지난달 9일 아시아나 OZ751편(에어버스 A350) 여객기가 인천공항에서 싱가포르 향하던 중 오른쪽 엔진(롤스로이스의 트렌트XWB)이 꺼져 가까운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아시아나는 엔진에 연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18일에는 인천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려던 OZ202편(A380)의 롤스로이스 트렌트900 엔진에 불이 나 대체기를 투입했다. 아시아나는 현재 해당 여객기에 예비엔진을 달아 운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