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I, 기술규제 정책연구 컨퍼런스 "기업이 방치하는 규제완화 줄여야"
"규제강화, 기업 비용증가만 초래할 수도...정책홍보 강화해야 목표 달성"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공무원의 보신주의, 소극행정에 막혀 규제 완화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산업현장에 대한 이해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일 서울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에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주최로 열린 ‘기술규제 정책연구 컨퍼런스’에서 송치웅 STEPI 부원장은 "타다, 카카오 등 ICT 기업의 신기술이 전 사회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장애에 부딪히고 있다"며 "오히려 우스갯소리로 국회가 쉬니까 타다 등의 신기술 서비스가 더 잘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종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정부가 추진한 규제 강화, 규제 완화 사례 양쪽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 교수는 대표적인 규제 강화 사례로 ‘화학물질 정보 등록 규제강화’가 산업 현장에 초래한 비용 문제를 꼽았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1톤 이상의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등록 요구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화학 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부가 규제를 통해 얻고자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43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규제 제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56%였지만 대응 준비가 잘 되어있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며 "정부가 등록 과정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협의체 구성 자체가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새로운 규제에 의한 기업 운영비용 증가도 문제다. 국내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규제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세부적이어서 관련 담당자가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전담 부서를 따로 편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감당이 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사실상 일일이 새로운 규제 시스템에 대응하기 어렵고, 전문 컨설팅 업체에 외주를 줘야 하는데 이또한 비용이 너무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정부가 규제를 풀어도 실효성 없이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종연 교수는 전자의무기록(EMR) 보관 규제 완화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지난 2016년 정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제16조 개정으로 의료기관 외의 장소에서 EMR을 관리·보존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허용했다. 사실상 의료정보의 클라우드화를 허용해 병원의 EMR 관리 비용 절감과 보안성 향상, 추후 첨단 빅데이터 기술에 적용 가능한 발판을 제공하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2년 전에 비해 의료기관의 EMR 외부저장 비율은 늘었지만 클라우드 EMR과는 대부분 무관했다"며 "설문 조사 결과 규제완화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이 클라우드 EMR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욱 서울대 교수는 "올해를 돌이켜보면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 차원의 쇄신, 타다 사태로 대표되는 ICT 플랫폼과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 등은 모두 기술 규제와 직접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며 "특히 AI가 신사업 발전을 촉진하고 있는 현상황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산업 환경을 제대로 반영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