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원기왕성 미국 경제, 기진맥진 한국 경제

입력 2019.12.03 06:00

한국은행이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0%로 낮췄다. 올 초엔 2.6% 성장을 예상했다가 세 차례나 전망치를 내렸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대부분 2%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4분기에도 10월 생산·투자·소비가 모두 감소세를 나타내는 등 전망이 밝지 않다.

미국은 3분기 성장률이 연율 기준으로 2.1%를 기록했다. 지난 10월말에 나온 속보치와 시장 전망치 1.9%를 뛰어넘었다. 분기별 성장률은 1분기 3.1%에서 2분기 2.0%로 크게 떨어졌다가 3분기에 소폭 반등했다. 미국 경제가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2.3% 안팎으로 전망되고 있다.

작년에도 미국은 성장률 2.9%로 한국(2.7%)보다 높았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미국에 뒤지는 것은 1950년대에 한은이 국민계정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한국이 부진한 탓도 있지만 미국이 너무 잘 나가고 있는 측면이 크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2배나 더 큰 나라가 이런 성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요즘 세계 경제에서 눈에 띄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경기 둔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만 홀로 원기왕성한 모습이다. 몇몇 다른 선진국들도 경제 우등생 평가를 받고 있지만 경제 규모와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의 성과에 견줄 수 있는 나라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트위터와 연설을 통해 수시로 경제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얼마전 유엔 총회에서도 자신의 친성장 경제정책 덕분에 실업률이 50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고, 지난 3년간 일자리가 600만개나 늘어났다고 큰소리쳤다.

실제 미국 경제는 올해 많은 신기록을 쏟아냈다. 경기확장 국면이 11년째로 접어들며 사상 최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110개월 연속 고용이 증가하고, 120개월 이상 증시 활황 국면이 이어진 것 역시 사상 최장이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인구의 실업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엔 추수감사절과 블랙 프라이데이 이틀간 온라인 매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기확장과 고용증가, 증시활황 흐름은 모두 오바마 정부 때 시작됐다. 미국 경제의 신기록 행진에서 최소한 절반의 공(功)은 오바마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자화자찬은 명백한 허풍이고 과장이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박한 편이다. 보호주의·무역전쟁의 칼춤과 예측불허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다. 실제 무역전쟁은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기업투자가 2분기 연속 감소한 게 그 방증(傍證)이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은 백악관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트럼프 정부의 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 확대가 경제에 활력을 더한 것은 분명하다. 재정적자 팽창 등 후유증이 우려되지만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띄우는 효과가 컸다. 지금까지는 보호주의 등의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더 주목할 부분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오바마 정부와 거의 정반대인데도 경제 성장 흐름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경제를 끌고가는 주된 동력이 정부가 아닌 민간 부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혁신 생태계와 기업가 정신이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본 토대이고 저력이다.

민간 부문의 활력 덕분에 미국 경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회복 탄력성이 강하다. 금융위기 직후 1.1%까지 떨어졌던 잠재성장률이 최근 2%대로 회복되며 위기 직전 수준을 넘어선 것은 그 덕분이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뒤집어져도 미국 경제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경제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여전히 관치의 그늘이 짙다. 민간 부문의 역량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정부 정책 변화 등 외부 충격을 흡수·완화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경제 기초체력이 부실해 대외환경 변화에 쉽게 흔들린다. 대통령과 정부의 경제 철학과 정책 노선이 미국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재인 정부는 반시장·반기업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기업 역할을 강조하고 혁신성장을 주장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다. 소득주도성장의 무모한 실험에다 시민단체와 민노총의 등쌀까지 겹쳐 기업들은 녹다운 상태다. 경기 하락 기간이 2년을 넘으면서 일부 반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V자 회복은 언감생심 기대하기 힘들다. 더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미국이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전문가들이 수없이 경제 악화 우려를 제기했지만 거의 다 빗나갔다. 한국에선 전문가들의 경고 그대로 경제가 추락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정부의 재정 ‘대방출’에 기대 근근이 버티고 있다. 민간 부문의 역량 부족이라는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한계와 운동권 정부의 독선이 만들어낸 불행이고 비극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