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라는데 생활물가는 高高…무상정책이 야기한 '저물가 착시'

입력 2019.12.02 14:43 | 수정 2019.12.02 15:12

4개월만에 상승 전환에도 0%대 저물가 지속
식비·교통비 등 올라 체감물가는 ‘고공행진’
무상정책, 저물가·디플레 심리 일으킬 수도

50대 주부 김 모씨는 김장을 하기 위해 최근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허탈감에 빠졌다. 각종 신문과 TV 뉴스 등에서는 저물가를 걱정하는 뉴스가 도배됐지만, 배추와 무 가격은 지난달보다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4인 가구 기준 김장 비용을 뽑아보니 30만원 이상으로 작년보다 10% 이상 올랐다. 게다가 빵, 과자 등 자녀들의 간식거리 가격도 오르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와 택시, 시내버스 요금 등도 오르고 있어 김 씨는 장을 보는 것도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올해 내내 0%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고 있지만, 실생활에 밀접한 체감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와 지표상 물가 통계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각종 무상 복지 정책 등으로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이 줄었다고 홍보하지만, 전문가들은 재정 투입에 의존한 인위적인 물가 하락이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민간 부문의 물가 상승 압력이 공공부문 물가하락으로 상쇄되면서 체감물가는 높은데 0%대 저물가가 지속되는 ‘물가 착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장철 마트 풍경./연합뉴스
◇0% 저물가에도 생활 물가 고공행진…"물가 괴리 심각"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달보다 0.2% 상승하며 7월 이후 넉 달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0%대에 머물러 있다. 경기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 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은 11월 기준으로는 1999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0.5%에 불과했다.

그러나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을 위해 조사하는 460개 품목 중에서는 280개가 상승했고, 146개 품목은 하락했다. 34개 품목은 보합을 나타냈다. 상승한 품목이 가격 하락 품목의 두 배에 이르렀다. 실제 국민 경제활동에서는 가격 하락보다는 상승으로 인한 충격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가격 상승·하락폭이 큰 주요 40개 품목을 분석하면 이같은 추세를 보다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가격 상승폭이 큰 20개 품목 중에는 어묵(9.5%), 빵(4.6%), 스낵과자(4.4%), 삼각김밥(6.0%) 등 가공식품이 가장 많이 포함됐고, 대리운전 이용료(3.6%), 시험응시료(5.0%) 등 개인서비스도 3개 품목이 들어가 있었다. 열무(93.7%), 무(67.4%), 배추(56.6%) 등 김장 물가에 직결되는 채소류도 3개나 포함됐다. 가격 부담이 크지 않지만 일상 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품목들의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이다.

반면 가격 하락폭이 컸던 20대 품목에는 대형승용차(-2.4%), SUV 등 다목적승용차(-2.4%), TV(-6.3%) 등 내구재가 가장 많이 포함됐다. 자동차용 LPG(-11.3%), 경유(-4.1%), 휘발유(-4.2%) 등 석유류도 3개 품목이 포함됐고 학교급식비(-57.9%), 고등학교납입비(-36.2%) 등 공공서비스도 다수 포함됐다. 의류 중에서는 남자학생복(-47.5%), 여자학생복(-44.8%) 등 공공서비스 성격이 강한 품목들의 하락폭이 컸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통계과장은 "개별 품목수로 보면 가격이 오른 품목이 월등하게 많았지만, 농산물과 공공서비스 등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 가중치가 높은 품목 중심으로 가격이 많이 하락하면서 전체적으로 물가 상승폭이 제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민경
◇‘무상 복지’로 가계 부담 경감?…전문가들 "일회성 정책"

통계청은 올해 들어 0%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는 배경으로 석유류와 농축산물 가격 하락을 주원인으로 지목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무상 복지정책의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고교 무상 교육은 고등학교 납입비 하락으로 이어지고, 문재인 케어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이 진료비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급식비, 남녀 학생복, 교과서, 보육시설 보육비 하락 등이 정부정책 효과로 분류된다. 전·월세 가격 하락도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 효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정책효과로 인한 물가 하락을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낮추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로 포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일회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정부의 무상 교육·보육 정책과 문재인 케어 등 재정을 투입해서 서비스 등의 가격을 낮춘 것이 물가 수준을 인위적으로 낮출 수 있지만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각종 무상 보육·교육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물가 부담을 낮추려고 하겠지만, 실상 체감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먹거리, 서비스 등 민간부문"이라면서 "각종 개인서비스 가격 등은 고용 제도 등이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가격 상승세를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고, 오히려 낮은 공공 서비스 가격으로 인한 착시로 디플레 심리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 자체에 정부가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 등 각종 소비 촉진행사에도 자동차, TV 등 내구재 소비가 전혀 살아나지 않을 정도로 수요가 위축된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0.2%는 아직도 상당히 유의해야 하는 낮은 수준이다. 마이너스가 아니라고 안심할 수 없다"면서 "소비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생필품 가격은 오르는데, 경기는 계속 악화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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