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세의 새 결혼 트렌드, ‘사내연애’

입력 2019.11.17 06:00

SK·롯데·한화 등 결혼적령기 3세 있는 주요 그룹에서 연이어
여성 사회진출 확대, 경영수업 방식 변화, 혼인연령·자녀 수 등 인구학적 변화 등 원인

1980~1990년대생 재계 3세들의 결혼에서 ‘사내연애’라는 방식이 새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집단의 오너 일가는 다른 대기업집단 오너 일가나 고위 공무원·정치인·법조인 자녀들에게서 혼처(婚處)를 찾았었다. 그런데 80~90년대생인 3세들에게서 회사 안에서 배우자를 찾은 뒤 결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여성 사회진출 확대, 후계 승계를 위한 경영수업 방식 변화, 혼인 연령·자녀 수 등 인구학적 변화가 어우러진 결과라 앞으로 사내연애를 통한 결혼 사례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36) 한화큐셀 전무는 10월 초 기업인 집안 출신이 아닌 정 모씨와 유럽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 전무와 정씨는 지난 2010년 두 사람이 한화그룹에 입사하면서 연을 맺게 돼 교제하게 됐다. 사귄 지 10년 만에 결혼에 성공한 셈이다. 정씨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으며, 김 전무보다 2살 어리다. 범한화가에서는 지난 2017년 김호연 빙그레(005180)회장의 장남 김동환 빙그레 차장(36)이 빙그레 식품연구소에서 일했던 가 모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었다.

(왼쪽부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최태원 SK그룹 회장 장녀 최윤정,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신유열(일본명 시게미쓰 사토시),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사장./조선일보DB
지난 2017년에는 최태원 SK(034730)회장의 장녀 최윤정(30)씨가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만난 4살 연상 윤 모씨와 결혼했다. 윤씨는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했으며 부친은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교제 당시 베인앤컴퍼니에서 선남선녀 커플로 꼽혔다. 앞서 조동혁 한솔 명예회장의 장녀 조연주(40) 한솔케미칼(014680)부사장은 지난 2013년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재직 시절 만난 남편과 결혼했다.

롯데의 신유열씨(33)도 노무라증권 재직 시절 배우자인 시게미쓰 아야씨(결혼 전 이름 사토 아야·佐藤絢)를 만나 지난 2015년 결혼했다. 두 사람은 2008~2013년 노무라증권에 함께 근무했으며, 각각 노무라증권을 퇴직한 뒤 2013년 8월 약혼했다. 재계에 따르면 시게미쓰 아야씨의 아버지는 병원을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몇 년간 재계 서열 10위 안에 있는 대기업집단에서 후계 승계가 유력하고, 결혼 적령기에 있는 3세 3명(최윤정·신유열·김동관)이 모두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대기업집단 오너 일가는 또 다른 대기업집단 오너 일가(재계)나 관계·정계·법조계 집안과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난 2017년 인맥정보회사 리더스네트워크가 창업주 10명에서 파생된 대기업집단 오너 일가 310명의 배우자를 분석한 결과 30.3%(94명)가 다른 대기업집단 오너집안과, 14.8%(46명)가 고위 관료 집안과, 4.5%(14명)이 정치인 집안과 각각 결혼했다. 당시 리더스네트워크는 고위 법조인, 대학 총장 집안 출신 배우자를 집계하지 않았지만 이들을 포함하면 이른바 ‘사회지도층’ 집안과의 결혼 비율이 더 높아질 거라는 게 당시 재계의 관측이었다. 리더스네트워크는 "이들이 재계 등 사회지도층 집안을 결혼 상대로 선호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사업 영향력을 높이거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혼맥만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장남 김동환 빙그레 차장(뒷줄 왼쪽)이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조선DB
변화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대기업, 컨설팅회사, 투자은행(IB) 등에서 일하는 여성이 증가한 것이다. 대기업집단 3세 여성이 경영에 참가하기 위해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회사에서 배우자감을 찾을 확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컨설팅회사나 IB가 대기업집단 오너 3세 경영 수업의 장(場)이 되었다는 것이다. 컨설팅회사는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데다, 그 과정에서 단기간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IB도 비슷한 장점이 있다. 자신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지만, 제3의 회사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또 컨설팅회사나 IB의 경우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 집안 배경이 나쁘지 않으며,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고용한다. 괜찮은 배우자감을 만나기 좋은 환경이다.

결혼 적령기가 늦춰지고, 50~60년대생 오너 2세의 자녀 수가 이전 세대보다 줄어드는 등의 인구학적인 변화도 사내연애를 통한 결혼이 증가한 배경으로 꼽힌다. 먼저 결혼 적령기가 늦춰지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던 과거보다 사회 생활 과정에서 배우자를 찾는 비율이 늘어났다. 전통 문화의 영향력이 강했던 창업주 세대와 달리 오너 2세들이 일반적으로 2~3명 정도의 자녀를 낳은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집단 오너 일가에서 혼처를 찾기에는 절대적인 후보자 ‘풀(pool)’이 줄어든 데다, 하나 또는 둘 정도의 대기업집단과 사돈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 사돈 집안 기업의 리스크가 그대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른 대기업집단이나 정관계 인사 자녀와 결혼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연애 결혼’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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