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차량공유,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전략적 거점을 만들었다. 규제 해소에 소극적인 정부와 정치권으로 인해 중요한 미래 신사업 투자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만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대차그룹은 14일(현지시각) 미국 LA시가 주최한 차세대 모빌리티 박람회인 LA 코모션에 참가해 미국내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법인 ‘모션 랩’을 설립하고 LA시와 미래 모빌리티 사업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현대차그룹과 LA시 관계자들이 14일(현지시각) 미국 LA에서 열린 ‘LA 코모션’ 행사에서 미래 모빌리티 사업 협력 계획을 발표하고 모션 랩 공유차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효 현대차 모빌리티사업1팀 상무, 김창희 현대 크래들 실리콘밸리 상무, 윤경림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사업부장, 니나 하치지안 LA 부시장, 마이크 오브라이언 HMA 부사장, 장수항 KMA 부사장

모션 랩은 이달부터 LA 도심의 주요 지하철역인 유니온역, 웨스트레이크역, 페르싱역, 7번가/메트로센터역 등의 인근 환승 주차장 네 곳을 거점으로 지하철역 기반의 차량공유 서비스를 LA 시민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또 LA 다운타운과 한인타운, 할리우드 지역에 최대 300대의 차량을 차고지 제한 없이 차를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는 카셰어링(Free-Floating)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다.

모션 랩의 이번 모빌리티 서비스는 LA시의 산하기관인 LA 메트로와 LA 교통국 등과의 협업으로 진행된다. LA시는 오는 2028년 열리는 LA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교통체증 해소와 시민 편의 증진을 위해 현대차의 모빌리티 서비스 실험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모션 랩에서 로보택시와 셔틀 공유, 다중 모빌리티 서비스, 개인화 모빌리티, 도심 항공운송 등 차세대 모빌리티 서비스와 관련된 다양한 실증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윤경림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부사장)은 "LA시와의 모빌리티 사업 협력을 통해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라며 "현대차그룹은 모션 랩 사업을 발판 삼아 모빌리티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케빈 클락 앱티브 CEO가 지난 9월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자율주행 S/W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 주도로 여러 미래 모빌리티 사업과 관련해 해외에서 투자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여러 차례 "미래에는 차를 소유가 아닌 공유를 하게 될 것"이라며 차량공유서비스와 자율주행차 등이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동남아시아 최대 카헤일링(호출형 차량공유서비스) 기업인 그랩에 2억7500만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인도의 1위 카헤일링업체 올라에도 3억달러를 투자했다. 미국의 모빌리티 플랫폼업체인 미고와 호주기업인 카넥스트도어에도 전략 투자를 단행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지난해 미국 오로라와 기술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으며 고성능 부품 확보를 위해 미국 메타웨이브와 이스라엘 옵시스 등에도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 9월에는 미국의 자율주행 기술업체 앱티브와의 합작법인 설립에 2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미래 신사업 관련 투자가 해외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택시업계를 비롯한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과 정부의 규제, 정치권의 무관심 등에 가로막혀 신기술의 실증이나 차량공유서비스 등을 제대로 할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2017년 국내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인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해 카풀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신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택시업계가 반발하자 결국 1년도 안돼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했다.

자율주행 부문 역시 국내에서는 규제로 인해 자유로운 연구개발이 어렵다. 국내 법규는 시험 과정에서의 각종 사고 예방 등을 위해 실외도로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 허가를 내주는데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모빌리티와 관련해 스타트업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도 어렵다. 최근 그룹의 혁신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외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나 협업을 확대하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눈을 해외로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번에 모션 랩을 출범하는 LA시의 경우 대중교통과 관련한 스타트업의 수가 뉴욕시의 2배 이상에 이를 정도로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환경이 활성화 돼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의 투자가 해외에서만 집중적으로 이뤄져 국내에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 해소에 소극적인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