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산업 붕괴, 전기료 인상 뻔한데… 누구도 브레이크 못 거는 현실

입력 2019.11.08 03:13

[반환점 도는 文정부] [4] 국가경쟁력 훼손시키는 탈원전 정책

영화 판도라가 계기였나… 文대통령 취임 한달만에 탈원전 선언
정부 내부서도 "문제점 알지만, 대통령 목에 방울 달 사람 없어"
한전 사장 "정책비용 3조 증가, 지금 요금 안올리면 부담 더 커져"

문재인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대해 산업계와 정부 내에서도 속히 수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최신 원전을 없애고 값비싼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그 비용 부담은 결국 국민과 기업에 돌아간다"며 "탈원전을 신념처럼 밀어붙이고 있는 대통령에게 '폐기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누구도 대통령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상황 아니냐"고 한탄했다.

올 초 여당 중진인 송영길 의원이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여권 내에서 탈원전 정책 수정 목소리가 나왔지만, 청와대는 '원전 문제는 공론화위에서 정리된 것'이라며 일축했다. 이후 여당 내에서 탈원전 반대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탈핵(脫核)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탈핵(脫核)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정치권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의 진퇴 혹은 수정을 개인적 승패로 받아들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원전 건설을 재개하는 등 세계 흐름이 바뀌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조차도 해외에서는 원전 세일즈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탈원전 포기를 곧 현 정부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체코 순방 때 "한국은 현재 원전 24기를 운영 중이고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했다. 원전 수출을 위한 것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위험해서 안 하겠다는 원전을 해외에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하면 외국 정부가 그 말의 진정성을 어떻게 믿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탈원전 정책의 입안, 추진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조차 베일에 싸여 있다. 직간접적으로 탈원전 정책 수립에 관여한 인물로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문재인 대선캠프 정책특보), 김익중 동국대 의대 미생물학과 교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등이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이었던 국정기획위는 2017년 6월 탈원전 정책 수립에 관여한 인물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고만 했다. 다만, 김익중 교수는 2017년 한 강연에서 "문재인 캠프에 들어가서 탈원전 정책을 계속 제안했는데 (이 제안을) 싹 받아줬다. 이게 우리나라 정부 정책이 돼버렸다"고 밝혔었다.

탈원전에 따른 산업, 고용, 환경 손실 그래프

문 대통령이 원전 폭발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보고 공감한 게 탈원전의 배경이란 건 의심을 넘어 정설처럼 되고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정부의 대표 정책임에도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누가 어떤 검토를 거쳤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막무가내 밀실 행정이 통할 거라고 2년 반 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자 1970년대 이래 40여년간 원전 건설에 앞장섰던 관료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청와대에선 김상조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이, 산업부에선 백운규 장관, 이인호 차관, 박원주 에너지자원 실장이 탈원전 정책을 실행했다.

우리와 달리 탈원전을 추진하던 선진국은 오히려 원전 건설 재개나 탈원전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원전 비중을 75%에서 50%로 줄이겠다던 프랑스 정부는 최근 원전 6기 신설을 추진 중이고, 영국도 30여년 만에 원전 건설을 재개했다.. 원전 사고의 위험보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를 앞당기는 것을 더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탈원전으로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은 전기료 인상 요구를 노골화하고 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6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전의 정책비용(정부 정책에 따른 각종 전기료 할인 등)은 현 정부 들어 3년간 3조원 늘었다"고 했다. 이어 "정부 보조금 등을 한전이 대신 내주고 있는데 전기요금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이 요금을 지금 적게 내면 (나중에) 이자까지 더해 내야 한다"고 했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 4분기 1294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지난해 2080억원, 올 상반기 9285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것은 6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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